"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고 하죠. 우리는 15년간 2000번이나 찍은 끝에 신약 개발이라는 거대한 나무를 넘어뜨렸습니다."

지난달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신약(新藥) 승인을 받은 항생제 '시벡스트로' 개발 주역인 동아ST(옛 동아제약 전문의약품 부문) 박찬일(朴贊一·59) 사장은 "2000종의 새로운 물질을 일일이 만든 뒤 시험해서 실패하고, 또 시험해서 실패하고, 딱 하나가 성공한 것"이라고 말했다. 신약 후보물질 하나를 만드는 데 3개월이 걸리니 2000종을 실험하는 데 들어간 시간은 총 6000개월, 무려 500년에 달한다. 실제로는 여러 후보물질을 동시에 만들어 시험했기 때문에 기간이 단축됐다.

우리나라 제약사가 미 FDA 승인을 받은 것은 이번 시벡스트로와 2003년 LG생명과학의 항생제 '팩티브' 단 두 개뿐이다. 그나마 팩티브는 미국 시장 출시가 늦어지는 바람에 별다른 수익을 거두지 못했고, 시장성 있는 제품으로는 이번이 처음으로 평가된다. 박 사장은 "신약은 제약사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같다"고 말했다.

미 FDA 신약 승인을 받은 수퍼 박테리아 항생제‘시벡스트로’개발 주역들. 왼쪽부터 동아ST 개발지원팀 김인겸 과장, 해외개발팀장 장은주 부장, 박찬일 사장, 신약연구1팀장 임원빈 이사, 해외개발팀 조소라 과장. 박 사장이 들고 있는 것이 미국에서 한 알에 약 30만원으로 가격이 책정된‘시벡스트로’다. 일반 항생제는 비싸야 몇 천원대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신약 하나를 개발하는 데 평균 10년에 1조원 이상을 투입한다. 오랜 시간과 돈을 투자하지만 성공만 하면 연간 수조~수십조원의 매출을 독점적으로 올릴 수 있다. 미국 화이자는 시벡스트로의 경쟁 제품인 '자이복스' 하나로 연간 1조3000억원 이상 매출을 올린다.

하지만 신약을 개발해 선진국에서 허가를 받기란 매우 어렵다. 약효가 월등한 물질을 개발하더라도 부작용이 나타나기 일쑤다. 이 때문에 전 세계 수천 개의 제약사가 있지만 지난해 미국과 유럽에서 허가를 받은 신약은 20여개에 불과했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근대적 제약산업이 시작된 지 100년이 넘었지만, 국내 제약사들은 신약 개발에 도전하기보다 외국 신약을 그대로 들여오거나 특허가 만료되면 복제약을 만들어 판매하는 '안방 장사'에만 머물러왔다. 그러다 보니 국내 1위 제약사도 아직 연 매출이 1조원이 되지 않는다. 글로벌 제약사가 신약 하나로 벌어들이는 매출조차 되지 않는 것이다.

박찬일 사장은 "이대로는 국내 제약산업이 영영 외국 업체들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보고 신약 개발에 나섰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대 약대 출신으로 1980년 동아제약에 입사해 영업직, 신약 개발, 임상시험, 기술 이전 업무를 두루 경험했다. 세계 제약시장의 1%에 불과한 우리나라에서 선진국에 진입할 신약을 개발하려면 새로운 전략이 필요했다.

"평생 먹는 혈압약과 달리 항생제는 길어야 1~2주 정도 처방합니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시장이 작다고 꺼리는 분야인데, 우리는 그 틈새시장을 노렸죠." 동아ST는 기존 항생제로는 듣지 않는, 이른바 '수퍼 박테리아'를 치료할 신약을 목표로 잡았다. 수퍼 박테리아는 유럽과 미국에서 매년 각각 2만5000명, 1만9000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제대로 된 신약이 나오면 충분히 시장성이 있었다.

신약 개발 과정은 천당과 지옥 오가기를 반복하는 것이었다.

연구 3년 만인 2002년 신약 후보물질 하나를 개발했는데, 당시 세계시장을 휩쓸고 있던 미국 화이자의 항생제 '자이복스'보다 약효(藥效)가 16배나 높게 나왔다. 연구진은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그해 말 해외에 의뢰한 동물실험에서 마치 독(毒)에 중독된 것 같은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나타났다. 동아ST의 임원빈 신약연구1팀장(이사)은 "그 결과를 통보받고는 눈앞이 캄캄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정도까지 와서 포기하기는 너무 아까우니 "1년만 더, 1년만 더…" 하는 식으로 연장해왔다고 한다.

연구진은 처음 개발했던 물질에 수백 가지 물질을 붙였다 떼기를 반복하며 독성을 없애기 위해 노력했다. 마침내 2004년 독성이 없는 새로운 항생제를 개발했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알약을 먹지 못하는 환자를 위해서는 주사제로도 개발해야 했다. 약이 주사액에 잘 녹게 만드는 데 2년의 시간이 더 걸렸다. 그사이 15명의 연구진 중 절반이 정년으로 회사를 떠났고, 새 연구원들이 들어왔다.

마지막 고비는 임상시험. 국내에는 임상시험을 할 만한 환자가 부족했다. 1000억원 이상 들어가는 해외 임상시험 비용도 문제였다. 동아ST는 2007년 미국의 트라이어스(현 큐비스트)라는 항생제 전문 업체와 손을 잡았다. 이 회사에 기술을 이전해 미국과 유럽에서 공동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하기로 한 것이다. 이후 6년에 걸쳐 3단계로 진행된 임상시험에서 약효가 탁월하면서 독성이 없는 신약으로 인정을 받았다. 내년에는 유럽 신약 허가도 기대하고 있다.

신약의 미국 시판 가격은 한 알에 295달러(약 29만8000원)로 책정됐다. 시장 1위 제품인 화이자의 자이복스보다 두 배 비싸다. 약효가 좋아서 자이복스의 절반 용량만 복용해도 되기 때문이다. 동아ST는 이 신약 하나로 2028년까지 4000억원대의 기술료 수입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한다. 시장 전망도 밝다. 수퍼 박테리아 치료용 항생제 시장은 2011년 2조7000억원에서 2019년 3조5000억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