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에서 제2의 독일이 탄생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한국 담당 보좌관을 지낸 수미 테리 컬럼비아대 동아시아연구소 선임 연구원은 외교 전문지 포린어페어스 7~8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통일된 한국은 7500만명의 인구를 발판으로 소비·산업대국으로 발돋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테리 연구위원은 통일 한국의 성장 잠재력을 에너지 부문의 시너지(상승효과)에서 찾았다. 그는 "남한은 전세계에서 가장 앞선 산업국가지만 에너지 자원의 97%를 수입하는 에너지 빈국(貧國)"이라며 "반면 북한은 석탄과 우라늄, 마그네사이트(마그네슘의 원료), 희토류까지 무려 6조 달러(약 6100조원)의 개발되지 않은 자원을 가진 나라"라고 비교했다. 그는 "이 자원들이 남한의 첨단기술과 만난다면 전 세계 경제에도 활력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극동지역 가스관을 한국까지 연결하는 사업이 분단에 막혀 추진되지 못하고 있다. 에너지원의 97%를 수입하는 한국은 미래 성장동력 확보는 물론, 안보차원에서도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이 필요하다. 사진은 시베리아에 놓인 석유기업 로즈네프트의 송유관.

◇기술대국 南과 자원부국 北은 완벽한 조화

한국광물자원공사에 따르면 현재 북한에는 국토의 약 80%에 걸쳐 광범위하게 자원이 분포돼 있다. 유용 광물만 200여종. 매장량 기준으로 세계 순위를 따지면 마그네사이트가 3위, 흑연이 4위, 금 6위, 아연 7위다. 철과 동, 몰리브덴, 흑연, 인회석, 무연탄도 경제성이 높은 광물로 분류된다. 하지만 북한은 전력이 부족하고 장비가 낡아 개발에 소극적이다. 신규광산 개척이 더디고 채굴도 어렵다.

이에 비해 남한은 자원이 없어 에너지 자원을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남한에 필요한 에너지 광물의 50%만 북한에서 조달해도 연간 124억 달러의 수입대체 효과가 생긴다고 현대경제연구원은 분석했다.

한상완 현대경제연구원 산업연구본부장은 "남한의 광물자원이 거의 고갈된 상태에서 북한은 산업 발전에 필요한 기초 산업 원료 광물의 비축기지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륙과 연결, 경제영토 중·러 넘어 유럽까지

휴전선이 사라지면서 얻는 이익은 단순히 북한의 에너지 자원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의 경제영토가 북한을 넘어 중국과 몽골, 러시아,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연결된다는 점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시베리아 지역의 가스관이 북한 땅을 지나 남한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된다. 안정적인 에너지 자원 확보와 비용절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일이 가능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지난해 11월 박근혜 대통령과 만나 시베리아 철도 활성화 사업과 가스관 건설에 한국의 참여를 요청했다.

대륙 규모의 광역전력망을 뜻하는 '수퍼그리드'도 현실로 다가온다. 이미 북유럽과 남유럽, 남부 아프리카 등지에선 각각 북해의 해상풍력과 사하라 사막의 태양열, 콩고의 수력 등을 이용한 수퍼그리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한국전력은 동북아 수퍼그리드가 구현될 경우 발전소 신규 증설의 대체효과는 물론, 국가 간 전력요금 차이를 이용해 새로운 수익을 창출할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중요해진 에너지 안보

동북아 국가 간 관심사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에너지 협력 문제가 하루아침에 해결되기는 어렵다. 하지만 경제성장이 한계에 다다른 현 상황만 놓고 보면 에너지와 안보를 다지는 것만큼 시급한 일이 없다. 업계에선 현실적인 한계에 매몰될 것이 아니라 러시아처럼 우리도 조금씩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러시아는 최근 에너지와 정치·경제적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기 위해 북한과 유대를 강화하고 있다. 영국 가디언지는 이달 초 이 문제를 분석한 기사에서 "서방세계의 규제에 대응하고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의 에너지 시장 확보를 위해 북한을 활용하고 있다"고 적었다.

전문가들은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라는 공통분모를 최대한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김상협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는 "전력문제만 놓고 보면 우리는 섬이나 다름없고 북한은 심각한 전력난, 일본은 후쿠시마 사태 해결이라는 과제가 있다"며 "서로 필요한 점을 보완할 수 있는 부분부터 묶어 해법을 찾을 수 있는 외교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