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전문가들은 전력난 등 한국의 고질적인 에너지 문제의 원인으로 섬처럼 고립된 지리적 문제를 꼽는다. 북한에 가로 막혀 전력망이나 가스관 같은 에너지 설비가 대륙과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한국은 자체 생산한 전력으로 산업용과 주택용 전력수요를 모두 감당해야 한다. 하지만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한국이 자체 생산한 전력으로만 전체 전력 수요를 충당하는 것은 쉽지 않다.

블룸버그뉴스

◇2035년 전력수요 지금의 2배

전력수요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올해초 발표한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 전력소비량이 연평균 2.5%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2011년 전력소비량은 3910만TOE(석유환산톤)였지만, 2035년에는 7020만TOE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전력소비량이 지금의 두배 가까이 늘어나는 셈이다. 그나마 이는 여러 조건이 맞아 떨어져야 가능한 낙관적인 전망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2035년까지 전체 에너지원에서 차지하는 전력비중을 27%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 목표"라며 "이를 위해서는 에너지 가격체계를 바꾸고 고효율 기기를 보급해 전력소비량을 최대한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빠르게 늘어나는 전력수요에 맞게 공급을 늘리다보니 에너지 문제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정부의 에너지 기본계획을 맞추기 위해서는 앞으로 원전을 5~6기 추가 건설해야 한다. 하지만 시민단체와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현재 운영 중인 원전도 폐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사용후핵연료 처리방안을 포함해 원전 문제는 박근혜 정부 후반기 최대 이슈 중 하나가 될 전망이다. 이밖에도 밀양 송전탑 건설 갈등,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문제 등 에너지 문제와 관련된 사회적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통일되면 원전 필요 없어질수도"

에너지 전문가들은 통일이 한국의 에너지 포트폴리오를 대대적으로 바꿀 수 있는 기회라고 보고 있다. 원전과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한국의 에너지 포트폴리오를 개편해 사회적 갈등도 함께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원전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좁은 국토에서 많은 전력을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통일이 이뤄지면 원전에 매달릴 이유가 없어진다. 러시아, 중국, 몽골 등 에너지·자원 부국에서 생산된 전력을 북한을 거쳐 직접 가져올 수 있는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김남일 에너지경제연구원 에너지정책연구본부장은 "단적으로 말해서 통일이 되면 원전을 국내에 둘 필요가 없다"면서 "러시아의 수력발전, 몽골의 풍력발전 등에서 생산된 전력을 국내로 바로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효율이 떨어져 활성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신재생에너지 발전도 새로운 전기를 맞을 수 있다.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은 부지가 넓을수록 발전효율이 높아진다. 유럽이나 중국, 미국 같이 땅이 넓은 나라에서 신재생에너지 산업이 먼저 발전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국은 현재 좁은 국토 때문에 대규모 신재생에너지 발전시설을 설치할 공간을 찾기 어렵지만, 통일이 되면 유라시아 대륙에서 대규모 발전이 가능해진다.

◇남북 에너지 협력은 지속해야

정부에서도 러시아, 중앙아시아 등과 에너지·자원 분야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작년 11월 서울에서 열린 한·러 정상회담에서는 러시아 아무르주의 부레야 수력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국내로 끌어오는 방안 등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통일이 되면 이 같은 방안은 더욱 탄력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미리 북한 에너지 시설이나 통합방안에 대한 정부 차원의 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 한 에너지 분야 전문가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북한과의 에너지 협력 사업이 진행되지만, 남북관계가 얼어붙으면 에너지 협력 사업도 중단되고 만다"며 "에너지 분야는 남북 모두에게 중요한 문제인만큼 정치적인 상황과 상관없이 협력과 교류를 이어갈 수 있게 정부가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