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오산에 있는 LG화학 리더십 센터에서 최근 입사한 신입사원들이 생각과 시야를 키우기 위해 퍼즐을 함께 맞추는 교육을 받고 있다. LG화학은 올해 상반기 신입사원 공채에서 250명 전원(全員)을 이공계 출신 대학 졸업생으로 채웠다.

지난달 상반기 공채를 마감한 LG화학. 이 회사의 입사자 250명 중 인문계 출신은 한 명도 없고 전원이 이공계(理工系) 출신 대졸자(大卒者)였다. 여태 이공계 출신자 비율이 80%대였음을 감안하면 '이공계 쏠림' 현상이 한층 강력해진 것이다. LG화학 관계자는 "전체 합격자 가운데 절반 정도가 연구개발(R&D) 인력이었고 칭화대(淸華大) 등 중국 주요 대학에서 10여 명의 이공계 인력을 따로 뽑았다"고 말했다.

현대·기아차는 올 상반기부터 아예 인문계 대졸 공개채용 제도를 없애고 대신 필요시 뽑는 상시(常時)채용을 도입했다. 선발할 인문계 신입사원 수는 적은데, 최소 300~40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할 정도로 너무 많은 지원자가 몰려 회사 업무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에서였다.

◇2년 전 70%대, 지금은 90%가 이공계 졸업생

최근 대기업 신입사원 모집·채용 과정에서 '이공계 합격자 증가'와 '인문계 출신 구직난(求職難)'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22일 본지 취재 결과, 올해 삼성그룹 18개 계열사의 상반기 대졸 공개채용 합격자(4000여 명) 중 80% 이상이 이공계 출신으로 확인됐다. 삼성전자는 85%, 삼성중공업은 90% 정도다. 삼성물산 상사(商社) 부문 합격자에 이공계는 10~20%로 과거 한자릿수 비율에서 급증했다. 상사 부문도 자원개발이나 철강·에너지 분야 인력 수요가 많아져 이공계 전공자에게 더 유리해졌기 때문이다.

아직 상반기 공채가 진행 중인 LGSK그룹 역시 이공계를 각각 80%, 70% 이상 뽑을 예정이다. SK하이닉스의 경우, 이공계 비율이 90% 중반에 이른다. LG전자·LG디스플레이·LG화학 3개사의 대졸 신입사원 중 이공계 비중은 2011년 70% 중반에서 2012년 70% 후반, 작년 말에는 80%를 넘었다.

대기업마다 이공계를 한층 선호하는 이유는 사업 구조가 중화학공업 중심이며, 중화학 관련 회사들이 취업 시장의 주류(主流)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기업마다 '기술개발 전쟁'을 벌이며 관련 연구개발 엔지니어 인력을 대대적으로 뽑는 흐름도 한몫한다. 이공계 인력을 교육시켜 마케팅 분야를 맡길 수는 있어도 인문계 출신 마케팅 인력을 R&D로 전환하는 것은 힘들다는 애로도 있다.

◇SW 배우는 인문·사회계 大卒者

그래선지 요즘 대학 캠퍼스 주변에서는 "'전기화' 출신이면 취업에 문제 없다"는 말이 나돈다. '전기화'는 전자전기·기계·화공과를 말한다. 인터넷 등 온라인상에서는 "취업은 했니?"란 질문을 받은 대학 졸업생이 "문과인데요"라고 답하자, 아무 말 없이 안아주는 자조적인 사진(일명 짤방)이 떠돌기도 했다.

상당수 기업이 우수 이공계 인재 입도선매(立稻先賣)에 나서는 것도 문·이과 졸업생 취업 양극화를 부채질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이달 19일 경북 구미 사업장에서 한상범 사장 등 주요 경영진이 경북대·부산대·전북대·전남대 등 지역 대표 국립대 이공계 학생·교수 400여 명을 초청, 채용설명회 성격의 행사를 열었다. 삼성전자는 14개 이공계 대학과 산학협력을 맺고 '삼성 탤런트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LG화학도 'R&D 석·박사 산학 장학생' 프로그램을 이수하면 과장급으로 뽑는다.

서울대 인터넷 커뮤니티인 '스누라이프'에 이공계 복수 전공 문의가 늘어나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삼성그룹은 작년 상반기 채용부터 신문방송학 등 인문계 대졸 신입사원을 뽑아 6개월간 960시간의 소프트웨어(SW) 교육을 하고 SW 전문가로 배치하는 '삼성 컨버전스 소프트웨어 아카데미(SCSA)'를 운영 중이다. SCSA 1기 졸업생 188명은 작년 12월 수료식을 마치고 삼성전자 소비자가전(CE) 부문과 IT모바일(IM) 부문 등에 배치됐다. 이달 20일에는 200명의 2기 수료생이 졸업했다. 1기 수료생인 김지수(경희대 언론정보학부 졸업)씨는 "직접 경험해보니 SW 프로그래밍 언어도 문법이 다른 하나의 언어일 뿐"이라며 "오히려 언어에 대한 이해가 높은 문과생들에게 유리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재계의 한 인사 담당 임원은 "현대 기업의 필수 생존술인 '기술'을 모르고선 대기업 취직 생각을 아예 접어야 한다"며 "취업 준비생들은 이런 흐름에 미리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