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금융가에 스웨덴 은행 '한델스방켄(Handelsbanken)' 배우기 열풍이 불고 있다. 이건호 국민은행장이 대학 강연에서 국내 은행들이 따라야 할 롤 모델로 이 은행을 거론한 데 이어, 이순우 우리은행장은 지난 5월 중순 아예 엘리트 직원 5명을 스웨덴에 급파했다. 직접 가서 보고 '성공 비결'을 캐오라는 특별 임무를 준 것이다.

스웨덴 1등 은행 ‘한델스방켄’의 스톡홀름 본사. 지점장이 지점 운영에 관한 전권(全權)을 갖고, 지점을 자기 사업체처럼 운영하는 비즈니스 모델로, 비슷한 규모의 국내 은행들보다 5배 정도 높은 수익을 내고 있다.

은행 수장들이 왜 한델스방켄을 주목한 걸까. 국내 은행과 스웨덴 은행들의 영업 환경은 비슷한데, 스웨덴 은행들이 국내 은행보다 월등한 수익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스웨덴은 우리나라처럼 수출 대기업 위주의 경제구조하에서 4대 은행(한델스방켄, SEB, 스웨드뱅크, 노르디아)이 과점 체제를 이루며 경쟁하고 있다. 그런데 은행의 경영 성적표는 하늘과 땅 차이다. 지난해 국내 은행들의 평균 ROE(자기자본 대비 순이익률)가 2.82%에 불과한 데 반해, 한델스방켄은 13.9%를 기록했다. 본지는 우리은행 견문단이 스웨덴을 다녀와 작성한 보고서를 입수했다. 보고서의 결론은 "매우 훌륭한 비즈니스 모델인데 한국엔 적용할 수 없다"였다. 왜 이런 결론이 나왔을까. 보고서 분석 내용을 보면 역설적으로 국내 은행들의 '한심한 수준'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한델스방켄의 성공 비결 5가지

우리은행 견문단이 분석한 한델스방켄의 성공 비결은 크게 5가지였다. 첫째는 '분권화'. 한델스방켄은 지점장을 'King' 혹은 'Queen'이라고 부르면서 목표 설정, 예산 등 전권을 준다. 심지어 직원을 뽑고 급여를 결정하는 것도 지점장이 하고, 지점마다 별도 홈페이지를 갖고 있으며 문 열고 닫는 시간도 지점장이 알아서 결정한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지역마다 있는 고객을 가장 잘 아는 것은 해당 지점의 직원들이고, 이들이 지역 주민과 밀착해 자율 영업을 하니 실적이 좋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한델스방켄 직원들은 전권을 갖고 책임을 지는 지점장의 강력한 지도하에 수익 극대화라는 명확한 목표 의식을 갖고 관계형 영업에 집중한다.

둘째는 단순한 경영 목표의 공유이다. '업계 평균 이상의 ROE' 하나의 목표만 일관되게 추구해 왔기 때문에, 모든 직원이 무엇을 위해 뭘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

셋째는 독특한 인센티브 제도였다. 한델스방켄은 말단 직원부터 행장까지 동일한 금액의 성과급을 받는다. 업계 평균 ROE를 넘어선 초과 이익 3분의 1을 균등 배분하는 것이다. 이때 바로 현금으로 주지 않고 '옥토고넨(Oktogonen)'이란 펀드에 적립한다. 이 펀드는 100% 자사주를 구입하는 데 돈을 사용하며, 각 직원은 60세가 넘어서야 자신의 몫을 찾아갈 수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각 직원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성과급으로 같은 주식을 받고 이를 60세까지 보유하면서, 저절로 동료의식과 로열티를 갖게 된다"고 말했다.

넷째가 안정된 지배 구조이다. 옥토고넨 펀드가 계속 자사주를 구입하면서 이 펀드의 한델스방켄은 10.3%의 지분율로 1대 주주에 올라 있다. 그래서 외부 입김에서 자유롭다. 다섯째가 비용 효율성이다. 예산권을 가진 지점장들은 자기 지점의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비용 관리에 집중한다.

'신뢰 기반' 없는 한국에선 적용할 수 없는 모델

그런데 보고서의 결론이 허망했다. '참 좋은 은행이지만, 우리가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는 모델'이라는 것이었다. 가장 큰 걸림돌은 '분권화'였다. 요즘 국내 은행가에선 도쿄지점 횡령, 개인 신용정보 유출, 국민주택 채권 위조, 금융상품 불완전 판매 등 온갖 금융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 금융 사고들은 일부 지점 혹은 직원들이 중앙의 통제가 느슨한 틈을 타 벌인 일이란 공통점을 갖고 있다. 금융계 관계자는 "지점 위주의 지역 밀착형 영업이 성공하려면 밑바탕에 신뢰가 깔려 있어야 하는데 한국 금융계엔 이런 신뢰가 전혀 형성돼 있지 않다"며 "섣불리 지점에 전권을 줬다가는 대형 사고가 빈발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현실은 후진적인 감독 행태를 불러와 '금융 사고→감독·규제 강화→전문성·경쟁력 저하'라는 악순환을 초래하고 있다.

예컨대 은행들은 자산가들의 자산운용을 도와주는 PB 사업 등에서 지역 밀착형 영업을 시도한 바 있다. 각 지역의 부자들을 상대하는 PB(프라이빗 뱅커)를 오랜 기간 특정 지점·지역에 상주시켜 장기적인 관계를 맺게 함으로써 실적을 높이는 것이다. 그러나 금융감독 당국이 사고 발생을 우려해 한 지점에 2년 이상 상주시키지 말라는 지도를 하면서 전문 영역에서마저 한델스방켄식 영업은 불가능한 상태이다.

금융계 관계자는 "한델스방켄을 따라 하지 못하는 것은 신뢰 같은 기본이 안 돼 있기 때문"이라며 "우리의 금융 현실이 부끄럽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