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작년 9월 스마트 시대의 야심작 '갤럭시 기어'를 출시했다. 당시 회사가 겨냥한 소비층은 대기업 임원, 언론사 기자, 증권사 애널리스트, 택배 기사 등 바쁜 샐러리맨들이었다. 업무상 전화·이메일·문자메시지를 한순간이라도 놓치면 안 되는 직업군(群)을 마케팅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막상 제품을 출시하니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손목에 차고 있는 갤럭시 기어의 스피커에서 상대방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흘러나오는 바람에 비밀이 많은 대기업 임원들은 외면해 버렸다. 또 손목을 입에 가까이 대는 통화 방식이 택배기사에겐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반면 달리기를 즐기는 '운동광(狂)'들이 환호했다. 갤럭시 기어를 차고 달리며 통화도 하고 음악도 듣는 사용자들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이로 인해 갤럭시 기어의 제품 전략도 수정됐다. 삼성 관계자는 "최근 출시한 기어2나 기어핏에서는 심박 센서를 이용한 심박 측정, 만보계 등 헬스케어 기능을 대폭 강화했다"고 말했다.

빗맞은 타구가 장타(長打)

시장과 소비자의 반응은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른다. 야심 차게 기획한 상품이 애초 계획과는 달리 '예상치 못한 소비자'의 열광으로 대박을 내는 경우도 생긴다. 엄밀히 따지면 '타깃 마케팅'의 실패이지만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 수익을 낸 '시장의 재발견'이기도 하다.

이마트는 2011년 10월, 32인치 크기의 고화질(HD) 발광다이오드(LED) TV인 '반값 TV'를 출시했다가 뜻밖의 소비자 집단을 발견했다. 이마트의 반값 TV 타깃층은 신혼부부와 1인 가구였다. 반값TV는 당시 출시 사흘 만에 5000대가 팔렸다. 하지만 열광층은 따로 있었다.

이주희 이마트 상무는 "각지의 '모텔·멀티방 운영자'들이 싹쓸이하다시피 물건을 가져갔다"고 말했다. 저가TV를 원하는 새로운 수요층이 나타난 것이다. 지금까지 이마트 반값TV는 모두 7만1000대가 팔렸다. 특히 업소용으로 적합한 '42인치 반값TV'는 제작된 2만대가 모두 완판(完販)됐다.

지난해 등장한 또 하나의 의외(意外)는 태블릿PC를 구입하는 50~60대들이다. 이마트가 1만여명의 고객 구매 데이터(빅데이터) 분석으로 태블릿PC 매출을 살펴본 결과, 작년 판매량의 30%는 50~60대가 구입했다. 30대(31%), 40대(29%)와 대등한 점유율을 차지하며 핵심 고객층으로 올라선 것이다. 2012년에 비해서도 50~60대 매출이 5배 이상 늘어났다. 노은정 고객분석팀장은 "처음에는 선물용으로 생각했지만 분석을 해보니 노안(老眼)에 고생하는 어르신들의 수요가 많았다"면서 "스마트폰 글씨가 보이지 않는 50~60대가 태블릿PC를 찾았다"고 말했다.

아모레퍼시픽이 최근 출시한 남자 전용 화장 파운데이션인 '아이오페 맨 에어쿠션'도 비슷한 사례다. 골프장이나 등산을 갈 때 선크림 대신 자기 부인의 에어쿠션을 바르는 중년 남성들이 의외로 많다는 점에 착안해 남성용 제품을 출시했다. 이회복 아모레퍼시픽 상무는 "올 1분기 남성용 에어쿠션 매출이 작년 선크림 매출의 3배를 넘어섰다"며 "패션에 민감한 젊은 남성뿐만 아니라 중년 남성들이 피부에 신경쓴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말했다.

의도치 않은 대박… 業種 바꾼 기업도

해외에서도 이런 마케팅 사례는 많다. 여준상 동국대 교수(경영학)에 따르면 미국의 맥주 제조사인 밀러브루잉 컴퍼니는 1970년대 중반 다이어트에 민감한 20대 여성을 대상으로 저열량 맥주 '밀러 라이트'를 출시했지만 정작 주 소비자층은 매일 맥주를 마시는 블루칼라 계층 남성이었다.

매일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체중이 불어나는 것을 걱정해 저열량 맥주를 찾는다는 것이다. 미국의 세제(洗劑) 기업 처치 앤 드와이트(Church & Dwight)의 주방·욕실 청소용 세제 '암앤해머'는 원래 제빵용 파우더로 개발됐다. 하지만 이 제품의 강력한 세척ㆍ탈취 효과가 알려지면서 용도가 바뀌었다.

마케팅 전문가들은 '의도하지 않은 대박'에 얼마나 빠르고 유연하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마케팅의 승패가 갈린다고 말한다. 기업이 상품을 출시하기 전에는 나이·성별·소득 수준·직업 등으로 소비자 집단을 잘게 쪼개 타깃 마케팅을 하지만, 실제 결과는 당초 목표와 벗어나기 일쑤라는 것이다. 따라서 초기 마케팅 결과를 빠르게 분석해 제품 생산에 반영하는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장대련 연세대 교수(경영학)는 "시장은 생물과 같기 때문에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며 "기업이 시장 상황을 끊임없이 모니터링하면서 보다 정확한 타깃을 찾아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