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의 한계

케빈 퐁 지음│이충호 옮김│어크로스│344쪽│1만6000원

"1995년 5월, 세명의 수련의사들이 노르웨이 북부 나르비크에서 가까운 숄렌 산맥에서 활강 코스를 벗어나 스키를 타고 있었다. 북극의 여름과 백야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아름다운 저녁이었고, 스키도 무척 즐거웠다. 하지만 수련의 중 한명인 안나가 예기치 못하게 중심을 잃었다. 안나는 누운 자세로 미끄러져 가다가 얼음 구멍을 통해 물속으로 빠지고 말았고 옷이 물에 젖으면서 안나를 얼음 밑으로 더 깊이 끌어당겼다. 두 구조팀이 급파됐다. 하지만 간단한 장비로는 두꺼운 얼음 구멍을 깨긴 어려웠다. 안나는 물에 빠진 지 80분이 지나서야 물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심장 박동이 멎은 순간부터 자발적인 혈액순환과 호흡을 회복할 수 있는 시점까지의 시간을 '다운타임(downtime)'이라고 한다. 그 사이에 인간의 몸은 죽음의 과정이 진행된다. 그에 앞서 '크래시(crash)'도 찾아온다. 생리적 기능이 갑작스럽게 고장이 나거나 작동이 중단되는 것이다. 병원의 의사는 이 '크래시 콜'을 받고 허겁지겁 환자에게 뛰어가지만, 매년 심장마비가 일어나는 수만명 중에서 극소수만 살아서 병원을 나간다.

이 책의 저자 '케빈 퐁'은 극한 상황의 생리학을 연구하는 의학박사다. 그가 쓴 책 '생존의 한계'에는 그가 마주했던 수많은 응급 환자들의 사례가 긴박하면서도 흥미진진하게 녹아있다. 케빈 퐁은 의학과 천체물리학, 공학 학위를 받았고 마취와 집중 치료 의학 전문의다. 나사(NASA) 의학 연구원이자 영국에서 TV 메디컬 다큐멘터리 진행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1999년, 얼음 물속에 빠져 두 시간 동안 심장이 얼어 멈췄던 환자를 의료진들은 결국 다시 살려냈다. 그 생존의 비밀은 ‘체온 저하’였다. 낮아진 체온이 오히려 심장과 뇌를 온전하게 보존했기 때문이다. 이 저체온 기법을 이제는 심장 수술에 활용하고 있다.”

최근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급성 심장정지로 수술을 받고 나서 '저체온' 치료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고령의 인체에 수술 후 부담을 덜 해주는 치료법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이 치료법은 과거 얼음 물속에 빠졌던 환자를 살려내며 최근까지 널리 쓰이게 됐다.

이 책은 저체온의 생리학뿐만 아닐, 호흡의 비밀, 심장 수술, 응급의학과 외상치료, 집중 치료와 생명유지 장치, 화상과 피부이식, 항공우주의학, 노화 등에 대해 폭넓게 다룬다. 저자가 실제로 겪었던 다양한 응급 상황과 함께 극적인 의학사들도 생생히 담겨 있다. 그가 실제로 환자를 맞닥뜨리고 치료를 고민하고 환자를 실제 회복시키는 과정들이 꽤 흥미진진하다. 알아두면 유익한 의학지식들도 덤으로 얻을 수 있다. 무엇보다 인체의 신비와 생명의 위대함 등에 대해 다시금 경이로움을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