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항로(北極航路)가 새로운 '해상(海上) 실크로드'로 각광받고 있다. 북극항로와 북극해 개발 참여는 박근혜 정부가 지난해 2월 밝힌 140개 국정과제 중 하나다. 이에 따라 해양수산부는 지난 2월 동북아시아와 유럽을 태평양과 북극항로를 통해 연계하는 신(新)해상물류계획을 발표했다. 현대글로비스는 지난해 9~10월 북극항로 시험 운항에 성공했고, 올해 여름에는 첫 상업 운항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해양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라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항로 개발이 진행되면서 새로운 문제점이 하나둘씩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해양수산개발원 황진회 박사는 "북극항로의 가능성을 확인했지만 안전성·경제성 측면에서 여전히 검토가 필요한 부분이 많다"면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이 지적한 난제(難題)를 정리한다.

암초① 3~4개월, 짧은 해빙기(解氷期)

4만4000t의 나프타를 싣고 작년 9월 17일 러시아 우스트루가(Ust-Luga)항을 출발한 현대글로비스의 스테나 폴라리스호(6만5000t급)는 10월 21일 전남 광양항에 도착했다. 국내 선사(船社)로는 처음으로 북극항로 시험 운항에 성공한 것.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남방항로(2만2196㎞)를 이용했다면 45일이 걸렸을 1만5524㎞ 여정을 35일로 단축했다. 그러나 시험 운항 당시 스테나 폴라리스호는 집채만 한 유빙(流氷)을 숱하게 만났다. 러시아 쇄빙선 뒤를 따라가야 했다. 현재 북극해 운항이 가능한 기간은 1년에 3~4개월 남짓이다. 상업 운항이 가능하려면 연간 최소 100일 이상 정기선(定期船)이 다닐 수 있어야 한다는 기준에 아슬아슬하게 부합한다. 전문가들은 온난화가 지금 추세로 계속 진행된다면 2020년 이후에야 본격적인 상업 운행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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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초② 수심 12m, 얕은 바닷길

최근 아시아와 미주, 유럽을 오가는 항로에는 1만TEU급 이상 대형 선박들이 투입된다. 1만8000TEU급 이상 초대형 선박도 많다. 이런 배들이 안전하게 다니려면 최소 20m 이상 수심이 확보돼야 한다. 하지만 북극항로에서 빙산 등 얼음을 피해가다 보면 수심이 10m 남짓한 구간을 종종 만나게 된다. 매티슨(Matison)·빌키츠키(Vilkitsky) 해협 주변이나 섬과 섬 사이 구간의 수심은 12~13m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2500TEU급이 넘는 선박은 운항이 어렵다. 항만 수심도 얕아 대형 선박은 접안(接岸)이 불가능하다. 또 대규모 정박 시설과 화물 처리 장비를 갖춘 항만은 러시아 북서부의 무르만스크나 아르한겔스크 등을 포함해 몇 군데밖에 없다.

암초③ 컨테이너는 외면, 벌크 화물 위주로

일반 컨테이너 화주(貨主)들은 북극항로 이용에 아직 소극적이다. 혹독한 기후 탓에 적재된 화물이 변형될 가능성이 크고, 사고 발생 위험도 높기 때문이다. 적기 공급 생산방식(Just In Time)에 따라 일년 내내 이뤄져야 하는 컨테이너 운송에서 몇 달 동안만 열리는 북극항로는 경제성을 떨어뜨리는 걸림돌이 된다. 화주를 찾지 못해 일부 구간을 빈 배로 운항하는 경우도 잦을 수밖에 없다. 반면 수송 조건이 까다롭지 않은 벌크(bulk) 화물에 대한 수요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벌크 화물은 석탄·곡물·광석 등 포장을 하지 않고 그대로 싣는 화물이다. 실제로 2012년 북극항로를 경유한 선박 33척 중 28척이 벌크 화물선이나 유조선이었다. 극지에서 개발한 가스를 수송하는 쇄빙 LNG선은 이르면 2016년부터 북극항로에 본격 투입될 것으로 전망된다.

암초④ 쇄빙선·아이스 파일럿 사용료 높아

북극항로에서 얼음을 깨는 쇄빙선(碎氷船)과 얼음이 많은 지역을 피해가도록 안내하는 아이스 파일럿(Ice Pilot)은 필수다. 쇄빙선과 아이스 파일럿은 러시아 현지에서 조달해야 하지만 사용료 부담이 만만치 않다. 선박의 내빙(耐氷) 능력을 갖추는 데도 비용이 든다. 한국해양대 김길수 교수(해사수송과학부)는 "1㎝ 두께 철판을 사용하는 일반 선박과 달리 북극항로를 운항하는 선박은 얼음과 부딪치는 선체 부분에 4㎝ 두께의 강재(鋼材)를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온난화로 빙하가 녹으면서 생긴 뱃길… 亞·유럽 잇는 최단거리 항로]

☞북극항로(North Pole Route)

지구 온난화로 북극 지방의 빙하가 녹으면서 생긴 뱃길.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최단거리 항로다. 시베리아 북부 해안을 따라 대서양~태평양을 잇는 북동항로(Northeast Passage)와 캐나다 북부 해안을 따라 대서양~태평양을 잇는 북서항로(Northwest Passage) 두 가지가 있다. 한국과 관련이 있는 것은 북동항로다.

북극항로를 이용하면 수에즈운하를 이용하는 기존 항로보다 시간은 10일 이상, 거리는 7000㎞ 이상 단축된다. 향후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해상 화물의 70%가 이 루트를 이용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80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선박이 북극항로를 이용해 도쿄~로테르담 구간을 운항할 경우 수송 원가가 수에즈운하를 통과하는 남방항로에 비해 15~20% 절감될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북극항로 운항을 단순한 바닷길 개척에 그치지 않고 자원 개발을 통해 경제 영토를 확장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