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오미(小米)'. 중국어로 '좁쌀'이란 뜻의 이 스마트폰 제조업체는 올 1분기 중국에서 970만대 넘게 스마트폰을 팔았다. 현지 시장점유율은 10%, 순위로는 3위다. 샤오미 위로는 세계 스마트폰 판매 1위 삼성전자와 레노버밖에 없다. 지난해부터 중국 1위 이동통신 사업자 차이나모바일에 처음으로 아이폰을 공급한 애플조차 샤오미에 밀려 4위에 그쳤다. 중국 현지의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 휴대전화 제조업체 ZTE도 모두 샤오미보다 점유율이 낮았다.

샤오미는 신생 벤처 기업이다. 첫 스마트폰 '미(mi)'를 내어놓은 것은 2011년 8월. 하지만 이 회사는 중국에서 애플을 제치고 삼성전자와 레노버를 위협할 정도로 괄목상대했다. 샤오미가 잘 나가는 건 '안방'인 중국만의 일이 아니다. 캐널리스가 집계한 세계 스마트폰 판매 순위에서도 샤오미는 대만의 HTC를 제치고 10위에 올랐다. 또 다른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 집계로는 글로벌 시장점유율이 3.9%로 LG전자(4.3%)의 턱밑까지 쫓아왔다. 여기에 화웨이·레노버·쿨패드·ZTE 등 기존 제조업체까지 합치면 중국 기업의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20%를 넘어섰다. 중국 스마트폰이 자국 시장의 급성장을 바탕으로 삼성·LG 등 한국 제품을 넘어설 수 있다는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질주하는 중국 스마트폰의 힘

중국 스마트폰이 부상할 것이라는 관측은 2~3년 전부터 제기돼 왔다. 중국 시장이 워낙 큰 데다 자국 제품을 선호하는 '애국 소비' 행태 때문에 중국 기업들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 스마트폰 시장은 2012년부터 단일 국가로서는 세계 최대 시장이 됐다. 2013년 시장 규모는 약 3억대로, 세계 시장의 30%를 차지했다. 이미 성숙기에 접어들기 시작한 미국·서유럽 등 선진국 시장과 달리 아직도 성장 잠재력이 크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중국 기업들은 자국에서 규모를 키운 후 동남아 등 신흥 시장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중국 스마트폰 기업이 급부상할 수 있었던 주요 배경에는 '기술의 일반화'란 트렌드가 있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이에 필요한 제조기술 역시 특별할 것 없이 흔해졌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스마트폰을 만드는 데 필요한 기술에는 기업 간 격차가 있었다. 삼성전자의 AMOLED(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 방식 화면 표시장치나 애플의 소프트웨어가 대표적인 예다. 이들은 자사(自社)만이 가진 첨단 기술을 활용해 다른 기업 제품과 수준 차이를 벌렸다. 이를 바탕으로 두 회사는 전 세계 시장 점유율 1·2위에 올라섰다.

중국 3위의 스마트폰 업체 샤오미의 휴고 바라 부사장이 신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샤오미·화웨이·레노버·쿨패드·ZTE 등 중국 스마트폰 업체의 1분기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합하면 20%를 넘는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전 세계 제조업체가 거의 똑같은 부품으로 스마트폰을 만든다. 애플과 삼성전자가 쓰는 카메라 부품을 중국 업체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달 초 중국의 신생 제조업체 '원플러스(OnePlus)'는 첫 스마트폰 '원(One)'을 공개했다. 스마트폰의 두뇌 격인 응용프로세서(AP)는 삼성전자 갤럭시S5와 같은 모델을, 카메라는 소니가 만든 부품을 쓴다. 화면표시장치는 LG전자 G프로2와 동급 제품이다. 하지만 가격은 299달러(약 30만원·저장용량 16GB 기준)다. 여태껏 나온 프리미엄급 스마트폰 중에는 가장 싼 가격이다. 이 제품은 미국의 IT 전문매체 엔가젯 평가에서 100점 만점에 90점을 받았다. 삼성전자의 어떤 스마트폰보다 높은 점수였다. 싼 가격이 매력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가격·기동성으로 글로벌 경쟁력 갖춰

전문가들은 "중국 스마트폰 기업의 약진(躍進)을 싼 가격 덕분만으로 보는 것은 실수"라고 말한다. 단순히 싼 가격이 인기의 비결이라면 레노버·화웨이·ZTE 등 이미 규모의 경제를 이룬 대기업이 더 빠르게 성장해야 한다. 실제로는 신생 업체들이 앞서고 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롱테일 경제학'의 저자이자 무인비행기(drone) 제조업체 3D로보틱스 최고경영자(CEO)인 크리스 앤더슨은 샤오미를 가리켜 "전 세계에서 오픈 이노베이션(개방적 혁신)을 가장 잘하는 기업"이라고 평가했다. 샤오미가 제조업 중심으로 성장한 다른 중국 기업들과는 아예 차별화된 문화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샤오미는 애초에 소프트웨어부터 시작한 기업이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를 고친 '미우아이(MIUI)'라는 개조 OS를 배포하는 것에서 시작해 하드웨어까지 자체적으로 만들 정도로 성장했다. 창업자 겸 CEO인 레이쥔(雷軍)은 20년 넘게 소프트웨어(SW) 분야에 몸담은 베테랑이다. 기업 문화 역시 소프트웨어가 우선이다. 샤오미는 일주일에 한 번씩 주요 소프트웨어를 고친다. 홈페이지나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를 통해 고객 반응을 듣고 매주 목요일마다 기능을 향상시킨다. 분기에 1번씩 운영체제를 업데이트 하는 애플이나, 한 달에 한 번꼴로 하는 삼성전자보다 기민하게 움직이는 것이다.

원플러스는 소프트웨어를 통째로 미국 실리콘밸리 전문 기업에 맡겼다. 이 회사 스마트폰의 핵심 소프트웨어는 미국의 사이어노젠(Cyanogen)에서 만든다. 사이어노젠은 소프트웨어 개발자 스티브 콘딕(Kondik)이 만든 회사다. 콘딕은 안드로이드 OS 개조 능력을 인정받아 한때 삼성전자에 스카우트됐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삼성 갤럭시S 시리즈 개발에 투입됐던 콘딕이 개발한 소프트웨어가 이제는 중국 스마트폰에도 들어가는 것이다.

한국업체 점유율 잠식 우려

중국 스마트폰의 위협은 한국 기업들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온 것일까. 전문가들은 "이미 선두에 올라선 삼성전자에는 큰 걱정거리가 아닐 수 있다"면서도 "세계시장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지지 못한 LG전자와 팬택에는 위협적"이라고 분석했다. 컨설팅업체 올리버와이만의 신우석 이사는 "삼성전자는 갤럭시S5를 전 세계 125개국에서 동시 출시할 수 있을 정도로 제품 공급망 관리 능력이 탁월하다"며 "10년 넘게 전 세계 이동통신사·유통업체·부품업체와 신뢰를 쌓아왔기에 가능한 것으로, 이제 막 세계시장에 뛰어든 중국 기업들이 따라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태명 성균관대 교수(소프트웨어학과)는 "중국의 제품 제조 기술력은 한국 기업을 거의 다 따라왔다"며 "국내 기업들이 제조업 중심 사고 체계에 매달려 있으면 머지않아 중국 기업들에 붙잡힐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