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 리(Kevin Lee) 명지대 토론지도 석사과정 교수


 
2010년 11월 서울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의 한 장면. 한 공식행사 자리에서 연단의 오바마 대통령이 "이번 행사를 한국에서 주최한 것을 감안, 한국 기자에게 질문권을 주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분위기는 썰렁. 재차 질문을 독려했지만 역시 침묵은 계속되었다. 그러자 중국계 기자가 "전체 아시아를 대신해서 질문하겠다"고 나섰다. 한국 기자들로서는 궁지에 몰린 것.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 기자에게 먼저 기회를 주고 싶다"며 여러차례 질문자를 찾았다. 하지만 역시 질문에 나선 한국 기자는 없었다.

왜 이런 장면이 나왔을까? 미국 대통령이라면 기자들도 쉽게 만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미국 대통령이 "한국 기자에게 기회를 주겠다"고 했는데도 이 귀중한 기회를 낚아채는 기자가 없었다. 그 자리에서만이었을까? 한국의 중고등학교가 고요함으로 가득 차있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학 교수들은 "학생들이 질문을 안 해 곤혹스럽다"고 사석에서 털어놓는다. 회사의 사장은 회의 석상에서 혼자 이야기한다. 왜 이렇게 한국은 소통의 동맥경화에 빠졌을까? 여러 사람 앞에서는 나서지 않는 문화를 원인으로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근본 원인을 무엇인가를 외워서 답을 찾아내는 교육만 받았던 까닭이라고 진단한다. 다르게 말하면 무엇인가 의문을 갖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즈니스 디베이트에서 교차 조사(Cross Examination)는 바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방안이 된다. 교차 조사는, 상대방의 기조발언을 듣고 이에 대해 3분 동안 질문하는 것이다. 비즈니스 디베이트에는 이런 순서가 구조적으로 마련되어있다. 이런 기회가 있는데도 아무 말 안하거나, 엉뚱한 질문을 하거나, 질문을 빙자한 자기 연설을 하는 사람들은 감점 대상이다. 반대로, 상대방 논리가 가진 문제점을 예리하게 지적하는 사람들은 돋보인다. 이런 과정을 여러 차례 겪어본 사람들은 두가지 점에서 태도가 바뀐다. (1) 내가 무슨 말을 할 때 상대방의 지적을 미리 감안하여 가급적 완벽한 논리구조로 말하려고 한다. (2) 상대방의 말을 들을 때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비판적으로 듣는다.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들을 우리는 '비판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지난 연재 4회분에서 우리는 에 대한 논리의 집을 다음과 같이 설계했다.

이상과 같은 논리구조의 발언을 들었을 때 어떤 교차조사가 가능할까? 예시를 들어본다.

(1) 흡연으로 인해 건강에 손실이 많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음주, 불규칙한 식생활, 꾸준히 운동하지 않는 것도 건강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고용할 때 고려하지는 않습니다. 왜 흡연 여부만 고용시 감안하자는 것입니까?
(2) 첫번째 주장의 근거로 하루 10개피를 흡연하면 50분이 소모되고, 이로 인해 업무 효율이 저하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근로기준법에 의하면 근로자들은 업무 중 주기적으로 휴식을 하기로 되어있습니다. 이 휴식시간에 담배를 피운다고 하면, 이로 인해 업무 효율이 저하된다고 할 수 있을까요?
(3) 최근 흡연이 사회문제화 되면서 흡연 공간을 제한하고, 또 흡연 후 손을 씻고 입을 헹구는 등의 에티켓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흡연으로 인한 2차 피해가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흡연을 이유로 회사에 고용을 하지 않는다면 흡연자에게 지나친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닙니까?

자기 주장만 하면서 살아온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들으면 당황한다. 이런 질문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질문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 말을 듣고 이해하여 외우는 공부만 해온 사람들은 질문을 하지 못한다. 그런데 반대로, 이런 교차조사를 주기적으로 훈련한 사람들은 다르게 사고한다. 자기 주장이 늘 맞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문제제기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를 감안해서 더 완벽한 논리를 제공하려 한다. 다른 사람의 주장을 그저 듣는 것이 아니라, 과연 저 말이 맞는 말인지 이리저리 궁리하면서 듣는다. 비판적 사고가 시작되는 것이다.

비즈니스 디베이트를 처음 접한 사람들은 교차조사 시간에 입이 떨어지질 않는다. 이런 요구를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오바마의 재촉에도 침묵했던 한국 기자들이 이런 상황이었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 중에는 이런 하소연을 하는 사람이 있다. "저는 다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면 이해는 하겠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거기에서 질문을 뽑아내죠?"

내 답은 이렇다. "그거,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꾸준한 비즈니스 디베이트 훈련으로 되는 것입니다. 이를 전제한다면 몇가지 요령이 있기는 합니다." 그러면서 나는 연재 4회분에서도 보여줬던 논리의 집을 다시 보여준다. 자, 생각해보자. 아래와 같이 견고해보이는 논리의 집을 흔들어 부수는 것이 교차조사의 목표다. 어떻게 하면 될까?

(1) 지붕 자체를 공격하는 방법이다. 과제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과제라는 점을 지적한다.
(2) 이 집을 지탱하고 있는 기둥 하나를 뽑아버리는 방법이다. 그러면 집이 허물어질 것이다. 그러니까 논거의 기둥 하나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초보자들은 주로 이상과 같은 두가지 방법을 구사한다. 왜냐하면 아직 초보자에게는 상대방의 입장과 그 논거만 귀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아직은 근거가 들리지 않는다. 이어 중급자 정도가 되면 다음과 같은 방법을 구사한다.
(3) 이 집을 지탱하고 있는 기둥을 받치고 있는 주춧돌을 제거한다. 그러면 역시 집이 허물어질 것이다. 그러니까, 논거를 뒷받침해주는 근거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비즈니스 디베이트 숙련자가 되면 이제는 귀가 트인다. 정확히 말하면 머리가 트인다. 이들은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 눈에 보이지 않는 사고과정까지 예리하게 살핀다. 어려운 말로 하면 '논증 과정'까지 따진다. 아래와 같은 방법이다.
(4) 이 집을 지탱하고 있는 지붕, 기둥, 주춧돌의 접합 부분을 공격한다. 즉, 지붕, 기둥, 주춧돌 자체가 아니라, 이들 사이의 연결고리가 적절한지를 살핀다. 과연 기둥은 지붕을 지탱하는데 적절한지, 과연 주춧돌은 제대로 기둥을 뒷받침하고 있는지 지적한다. 어렵게 말하면 논증 과정이 적절했는지를 따진다.

만약 한두번의 비즈니스 디베이트로 숙련자의 수준에 오른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런 기적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처음에는 상대방의 주장 자체가 들리지 않는다. 멀쩡하게 드라마를 시청하던 귀가 토론 석상, 회의 석상에는 먹통이 되어버리는 경우다. 그 다음에는 주장의 뼈대까지는 들린다. 하지만 그 논리구조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바로바로 생각하지 못한다. 이런 단계까지를 뛰어넘어야 상대방의 말을 재빨리 이해하고, 거기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바로바로 생각해낸다.

쉽지 않은 과정이다. 하지만 도달 가능한 목표다. 이런 것을 초중고 시절이나 대학 시절에 훈련받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한탄만 하고 있지 말자. 한탄만 하면 평생 이렇게 산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훈련하면 곧 이런 귀를 갖게 된다. 그리고 그 능력은 평생 간다. 그러니 미룰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