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모바일게임 춘추천국시대다. 어제 출시된 게임이 오늘 매출 순위 1위에 오르기도 하고, 일주일만에 또다른 게임에 왕좌를 내주기도 한다. 어지럽게 요동치는 순위 속에서 벤처캐피탈리스트들은 어떻게 투자할만한 게임을 골라낼까.

어쩌면 게임, 특히 모바일 게임 투자는 도박에 가까운 일이라 할 수 있다. ‘애니팡’처럼 일찌감치 시장을 선점해 국민 게임으로 자리잡는다면 모를까, 수많은 게임이 뜨고 지는 지금 ‘흥할 게임’과 ‘망할 게임’을 미리 골라내기는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벤처캐피탈업계 관계자들은 “모바일게임 투자는 중간이 없다”고 말한다. 게임이 출시돼 인기를 끌면 매출이 순식간에 급증하기 때문에 흐름을 보고 중간에 투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초기에 가능성만 보고 과감히 투자하든가, 혹은 이미 스타가 된 게임에 후발 투자를 하든가 둘 중 한가지밖에 없다. 소프트뱅크벤처스가 선데이토즈(애니팡 개발사)에 투자해 12배 이상의 차익을 거둔 것이 증권업계에선 널리 회자됐는데, 사실 모바일게임은 이만큼 대박을 치든지 아님 아예 원금을 잃든지 둘 중의 하나라는 것이 벤처캐피탈 심사역들의 설명이다.

◆ 모바일게임 초기투자, 3~5년 뒤 내다보고 결정

초기투자에는 당연히 적은 비용이 들어간다. 최근 모바일게임에 많이 투자하고 있는 안강벤처투자의 경우 초기 투자 때는 대체로 10억원 이내의 자금을 출자해 지분을 사들이고 있다. 소프트뱅크벤처스도 선데이토즈에 15억원만 투자했었다. 모바일 게임 투자에는 다른 업종 투자때와는 다른 것이 또 하나 있는데, 바로 IPO(상장)를 내다보고 지분을 매입하진 않는다는 점이다.

윤정현 안강벤처투자 상무는 이렇게 말했다. “모바일게임은 라이프사이클이 굉장히 짧아서 미래를 내다보기가 어려워요. 온라인게임은 ‘중박’을 쳐도 상장을 시도할 수 있지만, 모바일게임은 정말 큰 대박을 쳐야만 상장까지 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애초에 IPO를 기대하고 지분 투자를 하지는 못해요.”

안강벤처투자는 지난 2012년 8월부터 120억원 규모의 모바일게임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중소기업청이 48억원을, 안강벤처투자가 15억원을 투자했다. 이 외에 액토즈소프트 등 민간자본이 투입됐다. 안강벤처투자는 이 펀드 모금액 중 90억원을 갖고 7개 개발사에 투자했으며, 남은 30억원으로 2~3개 개발사에 추가로 투자할 계획이다.

펀드를 운용하는 8년 안에 개발사들이 이익을 낸다면, 그 수익은 수시로 투자 비율대로 배당된다. 수익률이 기준수익률(IRR)인 7%를 넘길 경우 안강벤처투자는 초과 수익의 20%를 추가로 받게 된다.

윤정현 안강벤처투자 상무

엑시트(투자금 회수)를 한 회사가 있느냐고 묻자, 윤 상무는 처음 투자했던 가치온소프트에서 60%의 수익을 냈다고 답했다. 가치온소프트는 PC게임 ‘화이트데이’를 모바일 버전으로 옮겨온 게임을 출시할 예정이며, 퍼블리싱 계약을 마친 상태라고 윤 상무는 전했다.

“잘 안될 것 같은 회사는 아직 없습니다. 투자한 지 1년밖에 안 됐잖아요. 초기투자는 짧게는 3년, 길게는 5년을 내다보고 합니다. 작은 회사의 지분을 초창기에 인수해 대주주의 자금을 유동화할 수 있도록 하고 그 회사가 한단계 도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죠. 지분은 향후 계속 보유할 수도 있고, 아니면 중간에 리스크 관리를 위해 다시 매각할 수도 있습니다.”

◆ “직접 2시간 이상 해봐서 안 질리는 게임만 투자”

윤 상무가 고위험ㆍ고수익의 모바일게임 투자에 뛰어들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공인회계사 출신으로, 2001년부터 2007년까지 삼일회계법인에서 근무하며 중소 벤처기업들에 대한 투자를 유치하고 인수합병(M&A) 등을 컨설팅했다. NHN(현 NAVER), 엠파스, 메가스터디와 메디포스트 등이 당시 윤 상무의 팀을 거쳐갔다.

윤 상무는 “컨설팅을 하다보니 성공하는 기업보다 실패하는 회사가 더 많다는 것을 알았다”면서 “이들 업체를 옆에서 지켜보며 쌓은 간접 경험을 토대로, 언젠가 내가 직접 투자한다면 초기 기업들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2007년 삼일회계법인을 퇴사한 그는 옛 동료들, 그리고 현재 대표이사와 함께 지금의 안강벤처투자를 설립했다. 회계법인에서 친분을 쌓은 고객과의 인연으로 강원도지자체를 2대주주로 영입하기도 했다.

윤 상무는 자신을 “원래 게임을 즐기던 유저”라고 소개했다. 회사를 설립하기 전부터 게임 콘텐츠의 힘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경험을 토대로 모바일게임에 직접 투자하게 됐다는 것. 한때는 온라인 게임 ‘리니지’에서 수백만원짜리 게임 아이템을 샀을 정도로 열성적인 게임 마니아였다.

“지금도 모바일게임을 꾸준히 하고 있어요. 한달에 최소 30만원정도 투자해 아이템도 삽니다. 대신, 투자하는 데 있어 균형적인 시각을 갖기 위해 특정 장르의 게임에 심취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윤 상무의 기본적인 투자 원칙은 ‘2시간 룰’이다. 2시간 이상 해봐서 유료 아이템을 결제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 게임에는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역으로 말하면 2시간 안에 질리거나 흥미가 떨어지는 게임에는 투자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게임이 일단 2시간 룰을 통과하고 나면 해당 개발사 대표이사와 임원진, 그리고 개발자의 개발 경력 등을 총체적으로 검토해 투자를 결정한다.

윤 상무는 최근 플린트에서 개발하고 게임빌에서 퍼블리싱한 역할수행게임(RPG) ‘별이되어라’에 푹 빠졌다. 사실 이 개발사는 지난해 윤 상무가 투자를 검토하다 포기한 회사였다. 안강벤처투자에서 투자하지 않기로 한 뒤 플린트는 별이되어라를 출시해 대박을 터뜨렸다. 증권 업계 관계자들은 이 게임의 일 매출이 1억원이 넘을 것으로 분석한다.

“모바일게임이 카카오톡이라는 플랫폼을 만나며 과거에 비해 많이 대중화됐지만, 여전히 미드코어 장르 이상의 복잡한 게임은 과거 게임을 즐기던 ‘오덕후(한 분야에 지나칠 정도로 열중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일본어 ‘오타쿠’를 한국식으로 표현한 단어)’들이나 즐길 수 있는 영역이에요. 이 게임들은 충성고객층이 두터워서 고객 1명 당 객단가(ARPU)도 다른 장르의 게임에 비해 굉장히 높습니다. 그만큼 비싼 유료 아이템을 결제하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죠.”

윤 상무는 투자 업무를 잘 해내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일관성을 갖고 투자해야만 결실을 얻을 수 있다는 것.

안강벤처투자는 올 상반기 안에 300억~400억원 규모의 게임 전문 투자 펀드를 결성할 계획이다. 이 펀드를 통해서는 초기투자 뿐 아니라 이미 성장한 기업에 대한 투자도 병행할 예정이다.

윤 상무는 “이미 어느 정도 성장 궤도에 오른 기업이라도 M&A를 목적으로 지분을 팔거나 대주주의 지분을 일부 매각하려는 사례가 있다”면서 “창업투자사들은 M&A를 할 때 재무적 투자자로서 공동 투자하는 형태로 회사 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향후 개발사가 해외 시장에 진출해 수익을 내거나 상장을 한다면, 그때 지분을 높은 가격에 되팔아 이익을 남길 수 있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