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기 중 국내 은행들이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최악 실적을 기록했다. 은행들은 초(超)저금리 상황, 수익 대부분을 국내 시장에 의존하는 내수 산업이라는 걸 실적 부진 이유로 대지만, 미국 웰스파고(Wells Fargo) 은행의 성공 사례를 보면 국내 은행들의 변명은 별로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웰스파고 은행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중국 공상 은행, 미국 JP모건체이스 같은 공룡들을 제치고 글로벌 은행 가운데 시가총액 1위(2613억달러)를 달리고 있다. 웰스파고 은행의 자산 규모는 1582조원으로 국내 18개 은행의 75%에 불과하지만, 1분기 순익은 6조원으로 국내 은행 18곳이 거둔 순익(1조3000억원)의 5배에 이른다. 웰스파고 은행의 미국 시장 의존도(수익 기준)는 99%로 국내 은행들의 국내 수익 의존도(95.7%)보다 더 높다. 저금리로 따지면 미국은 지난 6년간 거의 제로(0) 금리로 웰스파고 은행의 영업 환경은 국내 은행보다 더 척박하다. 국내 은행들이 세계 1위 웰스파고에서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일까.

◇맞춤형 고객 관리로 고객 1인당 6개 이상 금융 상품 판매

웰스파고 은행의 가장 큰 성공 비결은 한 고객에게 은행의 여러 상품을 파는 교차 판매(cross selling)가 활발하다는 점이다. 웰스파고 은행은 고객 1인당 금융 상품을 평균 6개 파는데, 이는 미국 은행 평균(3개)의 2배 수준이다.

교차 판매가 왕성한 비결은 고객 관리를 잘하기 때문이다. 웰스파고 은행에서 수석 부행장을 지냈던 손성원 캘리포니아주립대 석좌교수는 "창구 직원들이 고객과 밀착한 상담을 통해 '3년 뒤 학자금 대출이 필요하다' 같은 미래의 서비스 수요 정보를 세세하게 뽑아내고, 이런 정보를 다른 부서들과 공유해 전략적으로 상품을 팔고 있다"고 했다. 다양한 금융 상품의 교차 판매가 활기를 띠면서 은행 전체 수익 중 비(非)이자 수익 비중이 48.9%(국내 은행은 10.5%·2013년 기준)에 이른다. 손 교수는 "한국의 금융 당국이 미국처럼 수수료 규제를 완화하고 은행이 수수료 수입을 늘리도록 독려하면 국내 은행들도 비이자 수익을 늘릴 수 있다"고 말했다.

웰스파고는 직원들의 교육·훈련도 고객과 관계를 얼마나 잘 설정하느냐에 초점을 두고 있다. 예컨대 신입 직원이 고객과 상담할 때 선배 직원이 옆에서 대화를 제대로 진행했는지 지켜보고 문제점을 지적하는 훈련을 하고, 하루에 30명 이상씩 고객과 통화해 새로운 정보를 얻었는지 등이 직원 인사 평가 항목에 들어 있다. 국내 은행에는 이러한 교육·훈련 문화가 없다. 한 시중은행의 부행장은 "외환 위기 이후 국내 은행들은 고객에게 정말 필요한 상품인지 제대로 따져보지 않고 키코나 신탁 상품을 무차별 판매해 문제를 일으켰다"고 말했다.

◇일요일에도 영업… 고객 3분 이상 기다리게 한 직원은 벌점

웰스파고 은행의 전 지점은 토요일에 열고, 일부 지점은 일요일에도 문을 연다. 고객의 가게 영업시간에 맞춰 잔돈 교환 업무 같은 재무 서비스를 제공한다. 창구를 방문하는 손님을 3분 이상 대기시킬 경우, 직원의 실적 평가 점수가 깎인다.

웰스파고 은행은 미국 소비자 만족도 조사(ACSI) 은행 부문에서 2009년부터 3년간 1위를 차지했다. 손상호 금융연구원 박사는 "국내 은행들이 지금보다 훨씬 차별화되고 창의적인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경쟁자가 모두 하는 것은 안해

웰스파고 은행의 또 다른 강점은 '쏠림 현상'에 휘둘리지 않고 뚝심 있게 자기 색깔을 유지한다는 점이다. 웰스파고 은행의 대주주인 투자자 워런 버핏은 "웰스파고 은행이 잘되는 이유는 다른 은행이 모두 하는 것을 안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웰스파고는 고수익을 포기하면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 상품을 판매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은행 모기지 시장점유율이 2003년 11.9%에서 2006년 10.2%로 떨어졌지만, 이 덕분에 글로벌 금융 위기를 피할 수 있었다. 위기를 피한 웰스파고 은행은 와코비아 은행을 인수해 덩치를 두 배 이상 키웠다.

반면 국내 은행들은 돈이 된다면 모두 뛰어드는 바람에 '같이 흥하고, 망하는' 길을 답습해 왔다.

웰스파고 은행에선 기업 철학을 잘 이해하는 내부 승진자가 CEO직을 맡는 전통이 있다. 지난 15년간 웰스파고 은행 회장을 맡은 딕 코바세비치와 존 스텀프가 그런 경우다. 이런 기업 지배 구조는 전략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조직원의 충성도를 높이는 긍정적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손성원 교수는 "국내 은행이 '주인이 없어 은행이 어렵다'고 하지만, 웰스파고는 기관투자자들이 지분을 가진 주인 없는 은행"이라면서 "서무, 비서에게도 스톡옵션을 주는 등 모든 직원이 은행의 주인이란 철학을 심어주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