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로보틱스 제공

미국 샌프란시스코 북쪽 소노마 밸리에서 포도농장을 운영하는 라이언 쿤데씨는 100만원짜리 무인기(drone·드론)을 날려 포도 작황을 수시로 확인한다. 이 작은 항공기엔 땅위의 포도밭에서 나오는 근적외선을 측정하는 작은 센서가 달려 있다. 근적외선은 가시광선의 빨간색 바깥에 있는 파장 770~5000나노미터(㎚·10억분의 1m)인 빛이다. 식물은 태양 빛을 받으면 근적외선을 반사하는데 건강한 식물은 근적외선을 많이 반사하고, 죽은 식물은 근적외선을 조금 반사한다. 드론에는 차량용 내비게이션 장치와 같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와 자동항법장치가 달려 있어 미리 정해진 위치로 스스로 날아가 정확히 포도밭의 근적외선을 찍어온다. 농장주인 쿤데씨는 이런 방식으로 수집된 근적외선 지도로 포도나무들의 건강상태를 확인한다.

이처럼 SF영화 같은 현실이 이미 일상에서 펼쳐지고 있다. 아이디어와 기술력, 도전정신으로 뭉친 기업들이 지금까지 상상으로만 존재하던 새로운 사업들을 만들어내는 덕분이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가 펴내는 과학기술 전문잡지인 ‘테크놀로지 리뷰(Technology Review)’는 올해 기술 발전에서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 10가지 기술을 발표했다. 이들 기술에는 농업용 드론을 비롯해 사생활과 정보보안이 가장 확실한 울트라 프라이빗 스마트폰, 종전 3D프린터보다 더 미세한 영역을 출력하는 마이크로급 3D프린팅, 유연성과 균형감각이 훨씬 뛰어난 민첩성(Agile) 로봇 등이 포함됐다. 이들 기술 개발에는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소니, IBM, 혼다 등 기존 글로벌 기업들과 함께 신생 벤처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한국 기업은 이번에 포함되지 못했다.

◆ 드론 조종하는 농부들, NSA도 못뚫는 스마트폰

테크놀로지 리뷰는 이번에 선정된 기술이 수년간 기술 발전을 통해 문제 해결에서 종전과는 완전히 다른 창의적인 방식을 가져다 줬다고 평가했다.

여러 사람의 아이디어를 통해 아이디어를 얻고 꾸준히 개선을 해온 3D 로보틱스를 비롯해 일본야마하, 미국 프리시즌호크사 등은 1000달러짜리 농업용 무인기 개발에 가장 앞서 있다. 개인 취미 활동가용이 아닌 한 통상 최소 3000~1만달러에 이르는 상업용 무인기를 손에 잡히는 가격인 1000달러 미만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기술로 평가된다. 방대한 농장을 소유한 농업회사뿐 아니라 보통 농부들도 손쉽게 무인기를 구입해 병해충과 농업용수 관리, 작황관리를 할 수 있어 시장의 성장가능성도 높다.

드론 가격이 크게 내려간 것은 항공기 주요 부품인 가속계와 자이로스코프 등을 작게 만드는 마이크로전자기계시스템(MEMS)과 함께 드론의 두뇌인 마이크로세서, 먼거리까지 드론을 날려보내는 디지털 무선 송수신 장치가 작고 가벼워지고, 전기를 덜 쓰게 됐기 때문이다. 2050년 지구 인구가 96억명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앞으로 농업 분야에서 드론의 활약은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일반 스마트폰 시장 트렌드는 점차 개인정보를 최소화하는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미국의 암호전문가 한스 짐머만과 사일런트 서클사가 공동으로 개발한 블랙폰(Black phone)은 미정보기관에서 일하던 에드워드 스노든이 미국가안보국(NSA)가 미국민과 해외국민의 스마트폰과 웹사이트 사용 내역을 감시해왔다는 것을 폭로하면서 탄생했다. 그동안 극도의 보안 프로그램이 들어가는 스마트폰은 일부 보안 관계 담당자나 고위 관료만이 사용해왔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스마트폰의 내용을 훔쳐보지 못하게 하는 수십가지 기술이 포함된 이 폰 가격은 고작 629달러에 불과하다.

암호전문가들은 삼성전자를 포함해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를 쓰는 제조사들과 정부 기관들은 휴대폰을 통해 좀더 많은 정보를 수집하기를 원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일반인들도 이에 대응해 자기 정보를 안전하게 지키고 통신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좀더 많은 보안기술을 요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사무실 바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생산적 환경을 만드는 모바일 협업(Mobile Collaboration)기술도 이번에 선정됐다. 구글은 이미 클라우드 기반의 업무 서비스를 내놨고 뉴욕에 자리한 재무서비스 벤처회사 아티베스트 홀딩스는 MS프로그램 대신 큅(Quip)이라는 다자간 문서 협업 앱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박스(Box)와 드롭(Dropbox), 퀵오피스(Quickoffice)도 데스크톱과 노트북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 투명한 뇌·신경 모방한 컴퓨터 칩 등 바이오 융합 기술이 뜬다

독일 율리히 연구소

독일 율리히 연구소와 캐나다 몬트리올 신경학연구소는 지난해 입체(3D) 뇌 세밀 지도를 공개했다.

800억개의 신경세포를 망라한 이 뇌 지도는 머리카락 굵기보다 작은 20마이크로미터(㎛)부분까지 나타낸다. 종전까지 신경과학자들은 자기공명영상(MRI)장치가 촬영한 1㎜ 크기의 부위까지만 볼 수 있었다. 과학자들은 그동안 보지 못했던 뇌의 정밀구조를 볼 수 있어 파킨슨병 등 중추신경계 질환 연구와 치료에 큰 진전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뇌의 신경조직을 간편하게 볼 수 있는 뇌를 투명하게 만드는 기술도 나왔다.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칼 다이서로스 교수가 개발한 이 기술은 인공DNA인 하이드로겔이라는 말랑말랑한 물질로 뇌의 지방을 대체해 투명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IBM과 퀄컴 등 글로벌 IT기업이 관심을 쏟고 있는 뇌연구도 뽑혔다. ‘신경망 칩(Neuromorphic chips)’은 인간의 두뇌 신경망을 닮은 칩을 만드는 인공지능 프로젝트다. 현재 칩 기술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의 사고 방식을 닮은 칩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사람의 두뇌처럼 소리나 빛에 민첩하게 반응하는 칩을 만들어 현재의 컴퓨터 성능을 향상시키는 기술이다.

무선칩 전문회사 퀄컴은 최근 이 기술을 응용해 사람의 지시를 받지 않고 스스로 움직이는 파이오니어 로봇을 시연했다. 이 로봇은 사전에 계획된 동작이 프로그램된 컴퓨터보다 반응속도가 훨씬 바른 것이 특징이다. IBM과 HRL랩사 역시 미국방고등연구계획청에서 100만달러의 연구비를 지원받아 이와 같은 칩 개발에 나서고 있다. 이들 연구소가 참여한 제로스 프로그램은 최초로 상용화된 신경망 칩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정 유전자 염기서열을 인식해 자르는 ‘유전자 가위(CRISPR)’를 포함해 유전체를 의도적으로 자르고 붙이고 고치는 게놈 에디팅(Genome editing·유전체 편집 또는 유전체 교정)기술도 획기적인 기술로 이번에 선정됐다.

중국과 미국의 과학자들은 복잡하고 유전학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뇌 질환 연구의 획기적인 진전을 위해 의도적으로 유전체를 편집한 영장류를 만들고 있다. 중국 위난 키연구소는 지난해 유전자 가위로 유전자 특정 부위를 잘라낸 수정란을 대리모 역할을 하는 원숭이에 넣어 쌍둥이 원숭이를 태어나게 했다. 이 기술은 향후 피가 멈추지 않는 희귀질환인 혈우병처럼 염기서열 순서가 뒤집히거나 중복, 또는 삭제된 유전자를 잘라내는 방식으로 돌연변이를 치료하는 방식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물건을 프린터로 찍어내는 3D 프린터 기술도 진화하고 있다. 살아있는 세포에서부터 반도체 칩까지 점차 작은 품목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 연구진은 이처럼 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m) 크기의 제품을 찍어내는 잉크와 기계 개발에 나섰고, 프린스턴대 연구진은 3D프린터로 찍어낸 얇은 조직과 전자소자를 이용해 인공 귀를 개발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진들도 3D프린터를 이용해 망막세포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 가상과 현실 벽 넘고, 사람보다 민첩한 로봇 시대 온다

보스턴 다이내믹스

실제와 가상현실 기술을 결합한 증강현실 기술은 최근 HMD(Head Mounted Display)을 중심으로 기술 개발이 활발하다. 지금까지 개발된 HMD 중에서는 헤드셋 형태의 오큘러스 리프트(Oculus Rift)가 가장 앞섰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이 업체는 2012년 아이디어 전문 엔젤투자 사이트인 킥스타터를 통해 1시간만에 25만달러의 투자를 받으며 주목을 받았고 단 이틀만에 100만달러를 돌파하면서 주목을 받기도 했다. HMD방식은 무겁고 시야가 좁은 것이 한계이지만 업계는 머지않아 엔터테인먼트와 통신, 일반산업계에 광범위하게 보급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엔 엔비디아에서 헤드셋 형태의 이 제품보다 훨씬 가볍고 장시간 사용해도 불편하지 않은 선글라스 형태의 HMD 제품을 개발하고 있고, 일본 소니와 미국의 부직스(Vuzix)도 3D 안경 기술과 결합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사고 현장에서 사람처럼 민첩하고 발빠르게 행동하는 민첩한 로봇 기술도 활발히 개발되고 있다. 혼다가 만든 이족로봇인 아시모와 카이스트(KAIST)에서 만든 휴보는 두발로 걷는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지만 재난현장처럼 빠른 대응이 필요한 환경에서 민첩하지 못해 활용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구글에 인수된 미국의 로봇벤처인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소프트웨어 기술을 활용해 울퉁불퉁한 지형에서도 활동할 수 있는 균형 감각과 민첩성이 뛰어난 아틀라스 로봇을 만들었다.

이밖에 마지막으로 엑셀 에너지(Xcel Energy)와 GE, 미국립대기연구센터가 주도하는 스마트 풍력 및 태양광 발전 기술도 10가지 기술에 포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