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충남 당진 현대제철 특수강 공장 건설 현장. 서울 여의도 면적의 절반 규모인 250만㎡(약 75만5000평) 부지에서 덤프트럭과 굴착기가 분주히 오가고 있다. 현대제철이 지난 8일 엔진과 변속기 등 자동차 부품용 특수강 시장 진출을 위해 공사를 시작한 현장이다. 터 파기 공사가 한창이지만 내년 10월부터는 자동차 부품용 특수강 봉강 60만t, 특수강 선재 40만t이 매년 생산된다.

포스코가 주도하던 철강 업계에 변화 바람이 거세다. 현대제철이 작년 9월 연산(年産) 400만t 규모 제3고로를 가동하면서 현대제철의 조강 능력은 연 2317만t으로 늘어 포스코(총 4257만t)의 절반을 웃돈다.

이달 21일 낮 충남 당진의 현대제철 공장에서 열연(熱延) 강판 제품이 만들어지고 있다. 작년 9월 현대제철이 제3고로를 가동해 생산량을 늘리면서 포스코 중심의 국내 철강 독점 구조가 흔들리고 있다.

쇳물을 굳혀 만든 슬래브에서 뽑아내는 기본 제품인 열연 제품과 자동차 등에 쓰이는 냉연 제품 생산 능력은 포스코의 3분의 1, 조선용으로 주로 들어가는 후판(厚板)은 포스코의 절반에 육박한다. 현대제철의 약진으로 수십 년간 굳어져 온 포스코 중심의 철강 독과점 구조가 흔들리고 있다.

특수강 진출 등 공격 경영

이미 자동차용 강판 시장에선 현대제철이 포스코를 압도한다. 2010년부터 이뤄진 고로 가동과 현대기아차의 급성장이 맞물려 자동차용 강판 시장 성장은 현대제철 몫이 됐다. 포스코가 현대기아차에 현재 납품하는 물량은 고로 가동 전인 2009년과 비슷한 수준(연 80만~100만t)이지만, 현대제철은 같은 기간 연 200만t에서 450만~500만t으로 급증했다. 산업연구원 김주한 박사는 "포스코로선 국내 시장을 확대하지 못하고 해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조선용 후판 시장도 마찬가지다. 최근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조선업계 빅(big)3를 잇따라 방문하자 조선업계에선 '현대제철 효과'라는 분석이 쏟아졌다. 포스코와 동국제강의 양강 구도가 견고한 시장에 현대제철 제품이 들어와 생긴 '변화'라는 것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2009년 국내 후판 생산 능력은 포스코 65, 동국제강 35였다면, 이제는 포스코 50, 동국 25, 현대 25 정도로 달라졌다"며 "수입 확대까지 감안하면 경쟁이 훨씬 치열해졌다"고 말했다.

현대제철 당진 공장 연구소 앞 부지에 건설 중인 특수강 공장은 철강 생태계 변화의 핵심으로 꼽힌다. 지금까지 국내 자동차용 특수강 시장은 전기로(電氣爐)만 있는 세아베스틸(옛 기아특수강)을 중심으로 포스코특수강 등 국내 몇몇 업체와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대제철 3고로에서 나온 쇳물을 사용해 특수강을 만들 수 있어 수입 물량 대부분을 대체할 수 있을 것"(유현기 현대제철 과장)이라는 전망이다. 지난해 국내 총수요(317만t) 가운데 65만t을 수입한 자동차 핵심 부품 소재인 특수강 봉강이 대표적이다.

공급 과잉 우려는 여전

현대제철의 이런 상승세는 현대차라는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가 뒤를 받쳐주는 덕분이 크다. 이채호 동부증권 연구원은 "세계 철강 업계가 불황인 상황에서 확실한 계열사 수요를 갖고 있는 게 현대제철의 큰 경쟁력 요인"이라고 말했다.

자동차용 강판을 만드는 냉연 공장을 계열사인 현대하이스코로부터 합병해 쇳물에서 자동차 강판까지 이어지는 철강 수직 계열화도 완성했다. 올 초엔 자동차 부속품 생산을 위한 철분말 공장도 가동을 시작했다.

현대제철의 이런 수직 계열화에 대해 우려 목소리도 있다. 자동차 시황이 나빠지면 사업 전체가 직격탄을 맞아 휘청거릴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에 납품하는 비중이 높은 탓에 제품 품질을 반신반의(半信半疑)하는 시각도 있다.

기업 간 경쟁 질서가 훼손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산업연구원 김주한 박사는 "현대제철의 진입으로 국내 철강 시장이 경쟁 체제로 바뀐 것은 긍정적이지만, 현대제철이 계열사 물량을 갖고 공격 경영으로 일관해 시장이 혼란스러워진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