싹쓸이 경제학

레스 레오폴드 지음│조성숙 옮김│미디어윌│380쪽│1만6800원

"10분만 일하면 페라리를 살 수 있다. 30분만 더 일하면 노후 보장도 가능하다. 딱 하루만 일해도 일반 가정에서 179년 동안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을 챙길 수 있다!

이처럼 막대한 부를 벌어들이는 사람들은 미국의 최상위 헤지펀드 매니저들이다. 그들의 막대한 '돈 놀이'는 지난 2008년 금융위기를 일으킨 주 원인으로 평가받는다. '싹쓸이 경제학'의 저자 레스 레오폴드는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어떤 부당행위도 서슴치 않는 헤지펀드 매니저들의 이기적이고 추악한 면모를 낱낱이 까발린다.

이 책은 초반부터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방법이 세련됐다. 1장에서 미국 연예인, 영화감독, 스포츠스타, CEO(최고경영자), 의사, 변호사 등의 시간당 소득을 먼저 밝히고 마지막 부분에 최상위 소득 헤지펀드 매니저의 시간당 소득을 밝히는 식이다. 2010년 기준으로 오프라 윈프리가 시간당 13만9423달러를 벌어 각종 분야의 명사 중 가장 높은 소득을 올렸으나 당시 금값 상승을 주도하며 헤지펀드 매니저 중 가장 높은 소득을 올린 존 폴슨은 시간당 235만5769달러를 벌었다.

저자는 시간당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돈을 버는 헤지펀드 종사자들이 경제에 무슨 가치를 창조하는지 되묻는다. 저자는 헤지펀드가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한다는 주장에 "그들은 실물 경제에 대한 가치 창출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시장이 유동성을 가장 필요로 하는 순간에도 돈을 거둬들일 수 있는 존재"라고 반박한다. 또 지속적으로 가치를 창출하는 제조업과 달리 헤지펀드는 경제력을 가진 사람들의 도박성 투기만 조장해 빈부격차를 늘릴 뿐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헤지펀드가 막대한 자금과 영향력으로 시장을 교란한다며 날을 세운다. 한때 헤지펀드계에서 유명세를 떨친 짐 크레이머는 2007년 더스트리트닷컴과의 인터뷰에서 과거 시장 조작을 위해 루머를 만들고 유통시켰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해 논란을 일으켰다. 조지 소로스는 1989년 환투기 세력과 결합해 파운드화를 투매하는 등 영란은행의 파운드화 절하를 이끌어냈고 결국 10억 달러의 차익을 얻었다.

박근혜 정부의 정책 과제인 '규제혁파'에 대해 시사하는 부분도 눈에 띈다. 저자는 카르멘 라인하트 메릴랜드 대학교 교수와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학 교수의 연구를 인용해 지난 194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까지 이어진 금융안정이 '엄격한 자본규제 덕분'에 이뤄졌다고 말한다. 1970년대 이후 미국과 서구 세계 대부분을 휩쓴 탈규제의 물결이 금융 시장을 카지노 도박판으로 바꿔놓았다는 것이다. 이는 전후 근로자들이 누리던 경기호황의 결실이 최상위 부자들에게로만 집중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 책은 읽기 쉽고 재밌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읽다보면 지나치게 한 쪽 시각만 반영됐다는 느낌도 떨치기가 힘들다.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꼽히는 헤지펀드와 이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를 알고싶은 사람들이 읽기에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