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모직과 삼성SDI, 삼성석유화학과 삼성종합화학은 각각 오는 7월과 6월 합병이 예정돼 있다.

삼성그룹의 계열사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 속도가 붙고 있다. 거미줄 같이 얽혀 있던 계열사간 순환 출자구조를 걷어내는 작업이 차근차근 이뤄지고 있다. 계열사간 사업부문을 주고받거나, 사업성격이 비슷한 사업부문을 주고받은 작업도 속도감있게 진행되고 있다.

재계에서는 궁국적으로 삼성그룹이 삼성에버랜드, 삼성생명(032830), 삼성전자(005930), 삼성물산(028260)등 4개 계열사를 중심으로 한 지배구조로 개편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삼성생명을 중심을 한 금융 중간지주회사가 설립될 지 여부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이같은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경우, 계열사 간 순환출자가 지배구조의 근간인 삼성그룹이 지주회사 중심 구조로 탈바꿈할 가능성이 커진다.

◆ 삼성그룹 제조업 계열사, 삼성생명 지분 모두 매각…순환출자 해소 신호탄?

최근 삼성그룹 지배구조개편 움직임의 핵(核)은 삼성생명이다. 삼성전기, 삼성정밀화학, 삼성SDS는 23일 시장외 장외거래를 통해 보유 중인 삼성생명 지분을 모두 처분했다. 이들 삼성 계열사들은 지분매각 계획을 밝힌 공시에서 주식매수자를 특정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삼성생명 지분 매수자가 기관투자자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 계열사 간 거래는 아니라는 얘기다.

이들이 시간외 매매에서 매도한 삼성생명 주식은 328만4940주로 전체 지분의 1.63% 수준에 불과하다. 주식 처분 이후에도 삼성생명에 대한 삼성그룹 특수관계인 지분은 49.48%(이건희 회장 20.76%, 삼성에버랜드 19.34%)에 이르기 때문에 지배력 행사에는 아무 영향이 없다. 삼성그룹은 이번 주식 매매가 계열사 재무구조 개선 차원에서 이뤄졌다고 설명한다. 삼성생명 보유 주식 매각으로 인해 이들 계열사에 유입된 자금은 3118억원 가량이다. 삼성전기 1193억원, 삼성정밀화학 933억원, 삼성SDS 572억원, 제일기획 420억원 등의 현금 유입이 일어난다.

재계에서는 이번 주식 매각을 통해 삼성에버랜드를 제외한 비(非) 금융계열사의 삼성생명 지분 보유 구조가 해소됐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비금융계열사와 삼성생명 간 출자구조가 약화됐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전날 삼성생명이 삼성카드가 보유하고 있던 삼성화재 주식 29만8377주를 711억원에 매수했다는 점도 주목하고 있다. 이로 인해 삼성생명의 삼성화재 지분율은 10.36%에서 11%로 올라가게 됐다. 삼성생명과 비금융계열사간 출자고리를 끊어내는 동시에 삼성생명의 금융계열사 지배력을 강화시키는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앞서 삼성생명은 삼성전기 등 비금융계열사가 보유했던 삼성카드 지분 6.38%를 매입해 삼성카드 지분율을 34.41%로 올렸다.

삼성물산이 지난해 삼성엔지니어링 주식을 네차례에 걸쳐 대량 취득했다는 점도 눈여겨 볼만한 점이다. 삼성엔지니어링 지분을 7.81% 가지고 있는 삼성물산은 삼성SDI에 흡수합병되는 제일모직에 이어 2대 주주 위치에 있다. 삼성물산은 해외 플랜트 부문에 강점을 가진 삼성엔지니어링과 시너지를 내기 위해 지분을 취득했다고 설명하지만, 재계에서는 그룹 전체의 계열사 지배구조 개편의 일환이 아니냐는 시각을 보내고 있다. 일각에서는 삼성SDI의 제일모직 흡수 합병, 삼성석유화학과 삼성종합화학의 합병에 이어 삼성물산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이 추진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 지배구조 개편에 최소 3년이상 걸릴 듯

재계에서는 이같은 계열사 지분 정리 등을 통해 삼성그룹 계열사 간 순환출자 고리가 단순화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삼성석유화학과 삼성종합화학의 합병으로 인해 삼성그룹의 석유화학 부문은 삼성물산의 우산 아래 들어오게 됐다. 합병으로 출범하는 삼성종합화학의 대주주는 두 회사의 지분을 모두 30% 가량 보유하고 있는 삼성물산이다. 삼성생명도 이번 비금융계열사 지분 매각으로 제조업 계열사와의 피출자 관계를 대거 정리했다.

이같은 출자구조 정리에도 불구하고 삼성그룹에는 약 50여개의 순환출자고리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순환출자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적지않은 자금이 소요될 것이라는 게 현실적인 난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7.6%)을 그룹 차원에서 매입하는 데에만 15조원 이상이 소요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이는 삼성에버랜드를 둘러싼 출자구조를 정리하는 것도 난제다. 현재 삼성에버랜드 지분을 가지고 있는 주요 계열사 등은 삼성SDI와 삼성전기, 삼성카드, 삼성물산 등이다. 순환출자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삼성에버랜드가 자사주 형식으로 보유 주식을 매입해야 한다. 회사채 등을 발행해 재원을 조달하는 방안이 있지만 지주회사 부채비율 요건 등을 감안하면 차입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삼성그룹 계열사 간 지배구조 개편이 최소 3년 이상의 시기를 두고 순차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계열사간 합종연횡식 합병과 사업부문 분할 등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한 재계 관계자는 “투명경영을 강조되는 사회 환경상 현재의 순환출자구조를 계속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누구보다도 삼성이 잘 알 것”이라며 “시차를 두고 계열사 합병 등으로 지배구조 개편에 따른 재무적 부담을 완화시키는 방식으로 지배구조 전환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