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현 기자

해양수산부가 23일 7년간 6조9000억원을 투입하는 중장기 해양수산 연구개발(R&D) 계획을 발표했다. 70개 중점기술 중 20개를 특별히 퀵윈(Quick-Win·조기성과창출) 기술로 지정해 정부 지원을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해양 안전 및 인명 구조와 직결되는 ‘해양구난 기술’, ‘인적요인에 의한 해양사고 저감 기술’은 퀵윈 기술에서 제외된 것으로 밝혀졌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정부 대응에 커다란 허점이 드러난 상황에서 이를 메워줄 수 있는 핵심 기술들이 개발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것이다.

세월호 사고 초기 정부는 실종자 구조 과정에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장비를 적시에 투입하지 못하고, 잠수요원 투입이 지체되는 등 허점을 드러냈다. 당연히 해양구난 기술에 대한 지원을 시급히 늘려야 하는 상황이지만 해수부는 급할 것 없다고 판단한 셈이다.

인적요인에 의한 해양사고 저감기술도 마찬가지다. 전체 해양사고 10건 중 9건은 선원의 과실로 벌어지고 있다. 이번 세월호 사고도 지금까지 나온 조사 결과만 놓고 보면 선사와 선원들의 과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

해수부가 퀵윈 기술에서 제외한 ‘인적요인에 의한 해양사고 저감 기술’이 퀵윈 기술에 포함된 ‘U기반 해운물류 시스템 구축기술’이나 ‘적조·해파리 관리기술’보다 시급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해수부는 20개 퀵윈기술은 세월호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이미 결정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쯤되면 복지부동(伏地不動)의 전형이라 할 만하다. 아무리 계획된 사안이라도 문제가 있으면 고치고 다듬어야 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련된 일이라면 더더욱 그래야 한다.

그런데 해수부는 해양수산 R&D 중장기 계획은 이미 결정된 것이라며 이번 세월호 침몰로 드러난 해양사고 관련 기술을 후순위로 미뤘다. 전국민이 해양 안전사고 재발방지대책을 절실히 기다리고 있는데 해수부 이주영 장관과 공무원들은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듯하다.

해양수산 R&D 중장기 계획은 2020년까지 7년 동안 예산이 집행되는 장기 사업이다. 처음 시작할 때 우선순위에서 밀리면 해양 사고를 막을 수 있는 기술은 한참 뒤에야 나올 수 있다. 그 사이 제2, 제3의 세월호 사고가 발생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해수부는 세월호 사고 수습 과정에서 책임을 미루는 등 구태를 보여줬다. 해수부가 지금이라도 각성하고 제대로 된 정책을 펼 의지가 있다면 해양 사고를 줄일 수 있는 기술을 우선순위에 올려놓고 예산을 비롯한 각종 지원을 집중해야 한다.

R&D 사업은 미래를 위한 투자다. 해양 안전을 R&D 사업의 최우선 순위에 놓는 것은 온 국민이 TV 앞에서 눈물 흘리고 있는 지금 이 순간, 해수부 장관과 공무원들이 따라야 할 국민명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