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지수가 최초로 2000선을 돌파했던 2007년 대한민국은 펀드 열풍으로 들끓었다. 자고 일어나면 달라져있는 수익률에 펀드 투자자들은 계좌 확인하는 일이 마냥 즐겁기만 했다. 하지만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시작된 전 세계 금융위기는 펀드 투자자들의 꿈을 악몽으로 만들었다. 가입만 하면 2~3배 수익을 거둘 수 있을 것 같던 펀드가 원금 손실을 보고 반토막이 난 것이다. 펀드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2014년 펀드시장은 아직도 '한겨울'이다. 코스피지수가 2000선을 넘을 때마다 투자자들은 펀드에서 돈을 빼고 있다.
그렇다고 펀드가 투자자들에게 완전히 외면받은 것은 아니다. 자산운용사도 '제2의 펀드 열풍'을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다. 흔히 총성 없는 전쟁터로 불리는 서울 여의도 증권가에서 펀드 매니저들은 수익률을 조금이라도 올리기 위해 종목 하나를 놓고 하루에도 수십번씩 고민하고 있다. 자산운용사가 자랑하는 대표펀드와 주력펀드를 맡고 있는 펀드 매니저들을 만나 그들만의 운용 철학과 전략을 들어봤다. [편집자주]

정병훈 KB자산운용 매니저

“펀드 투자자금이 롱숏펀드로만 몰리면서 과열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데, 직접 운용해보니 아직 과열까지는 아니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다음 단계에 대비하기 위해서 투자 국가를 넓히고 상품을 다양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서울 여의도 KB자산운용 본사에서 만난 정병훈 주식운용본부 펀드매니저(부장·사진)는 롱숏펀드에 대한 관심이 식을 줄 모르자 일각에서 제기되는 ‘과열’ 우려에 대한 설명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정 매니저는 “숏은 유한자원이다. 누군가 빌려줘야 거래가 성립되는데 롱숏시장의 규모가 커지면서 빌릴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상대적으로 줄고 있다. 당장은 아니지만 어느 시점이 되면 숏을 할 수 있는 중소형주를 구하기 어려워질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그는 “롱숏시장이 꽉 차면 다음 단계를 찾으려고 애쓸 것인데, 크게 두가지 방법이 있다”며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 미국, 유럽 등으로 나라를 넓히는 방법과 예컨대 삼성전자(005930)에 대해 옵션 트레이딩을 하고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을 담는 상품 다양화 전략을 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KB자산운용이 선택한 방법은 우선 지역을 넓히는 방법이었다. 이는 지난 2월에 한국과 일본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KB한일롱숏펀드’가 나온 배경이기도 하다.

◆ “롱숏펀드, 벌어도 10% 잃어도 10%”

롱숏펀드 천하다. 올들어서만 7500억원대의 자금이 몰려 전체 설정액이 2조원을 훌쩍 넘겼다. 지난 2012년 연말 기준으로 2000억원에도 미치지 못했던 롱숏펀드는 일년 새 열배나 성장했다. 롱숏펀드는 주가가 오를 것으로 예상하는 주식은 사고(long), 주가가 내릴 것으로 보이는 주식은 공매도(미리 빌려서 파는 것·short)해서 차익을 남기는 펀드 상품이다. 주로 헤지펀드에서 활용되며 증시가 박스권에 갇혀 있을 때도 수익을 낼 수 있어 작년부터 각광을 받았다.

롱숏펀드는 트러스톤자산운용과 마이다스에셋자산운용이 ‘2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여기에 KB자산운용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KB자산운용은 1세대 한국형 헤지펀드 매니저로 유명한 정병훈 매니저를 구원투수로 내세웠다. 정 매니저는 미래에셋자산운용 출신으로 지난 2006년부터 2009년까지 메릴린치 홍콩 법인에서 헤지펀드를 담당했다. 그는 여기서 ‘롱숏’을 접했고 헤지펀드의 가능성을 봤다.

정 매니저는 롱숏펀드에 대한 가장 큰 오해 중 하나가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부분의 고객들은 롱숏펀드를 위험한 상품으로 보는데, 롱숏펀드는 벌어도 10% 잃어도 10%다. 반면 주식형 펀드는 벌면 30~50%를 가져갈 수 있지만 잃으면 반토막이 날 수 있다. 그래서 롱숏펀드를 중위험·중수익 상품으로 분류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펀드에 ‘순노출도(net exposure)’라는 개념이 있다. 롱은 올라야, 숏은 떨어져야 돈을 버는데, 롱에서 숏을 뺀게 바로 순노출도다. 예컨대 롱에서 10% 벌고 숏에서 5% 잃는다면 순노출도는 5%다. 순노출도를 작게 가져가려고 애쓰고 있다. 수익이 5% 나도 10% 벌고 5% 잃는 5%가 아니라 조금씩 벌어서 5%를 벌자는 것이다. 이는 현재 운용하고 있는 롱숏펀드의 지향점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 “화려하고 싶지만, 욕심 안 내는 투자에 집중”

정병훈 KB자산운용 매니저

KB자산운용은 롱숏펀드 후발주자다. 그래서 실력 있는 매니저를 수소문한 결과가 정병훈 매니저였다. 정 매니저가 현재 운용하고 있는 펀드는 올해 1월과 2월에 선보인 ‘KB코리아롱숏펀드’와 ‘KB한일롱숏펀드’다. 기대했던 것만큼 폭발적인 반응은 아니다. 지난 17일 기준 설정액이 각각 260억원과 90억원이다. 수익률은 각각 1.9%, 0.9%.

정 매니저는 “한달에 몇천억원이 들어오는 펀드도 있고 KB라는 강한 판매채널을 생각해 초반에 돌풍을 기대한 것은 사실이다”라며 “사람인지라 그런 부분이 당연히 부럽고 사실 심적 부담감도 들지만 이 정도 수익률로 차츰차츰 가면 분명히 수요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확신했다.

그는 “롱숏펀드를 하다보면 누구나 굉장히 화려해지고 싶은 욕심이 든다”며 “예를 들어 삼성전자 롱을 하고 SK하이닉스(000660)숏을 했는데, 삼성전자가 17% 오르고 SK하이닉스가 12% 올라 5% 수익을 올렸다면 SK하이닉스 숏을 안 했으면 17%의 수익률을 올렸을 것이라는 후회를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정 매니저는 “1년에 벌려는 목표 수익률이 ‘금리+α’인 6~8% 정도로 화려하지 않지만 지나고 보면 수익이 조금씩 나는 그런 펀드를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6~8%라는 수익률에 만족하지 못하는 투자자들이라면 롱숏펀드는 적합하지 않다는 점도 상기시켰다. 그는 “10억원이 있는데 20억원을 만들고 싶은 투자자라면 위험성향이 높은 펀드로 가는게 맞다”며 “코스피지수가 2000에서 3000 갈 때 고작 10% 벌었다고 하면 투자자 입장에서는 답답할 수 있으나 반대로 2000에서 1000 갈 때 50%를 잃는게 아니라 어느 정도 지켜가며 벌 수 있는 펀드가 롱숏펀드다”라고 설명했다.

◆ “롱숏펀드도 믿을 건 기업의 기초체력”

롱숏펀드를 잘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리서치센터가 강해야 한다는 것이 정 매니저의 지론이다. 그는 “오르는 종목에서도 벌고 떨어지는 종목에서도 벌 수 있는 게 롱숏펀드지만 반대로 롱에서도 잃고 숏에서도 잃으면 두배의 속도로 잃게 돼 그 때의 심리적 부담담은 어마어마하다”며 “그래서 믿을 건 기업에 대한 기초체력이고 이것을 확실하게 알기 위해 기업을 충분히 분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매니저는 “9년간 롱숏펀드를 했는데, 처음 홍콩에 갈 때 롱숏펀드에 대한 이미지가 ‘퀵머니·잦은 트레이딩·하이에나’였다”며 “실제 경험해보니 정반대로 훨씬 깊이 있는 공부를 해야 하고 시나리오별로 분석해 그것에 대한 계획을 갖고 버텨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충격이 컸다”고 회상했다. 그래서 강한 리서치센터와 철저한 기업 분석이 롱숏펀드에서는 특히나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펀드에서 돈을 빼 단기 대기성 자금인 머니마켓펀드(MMF)에 넣는 경우가 많다”며 “1년에 6~8%의 수익률을 꾸준히 낼 수 있는 상품이 있다면 이러한 자금이 이 상품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롱숏펀드의 발전 가능성은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