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IT(정보기술) 기업들이 앞다투어 터키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유럽과 아시아의 교차점에 위치한 터키는 인구가 8160만명으로 많은 편이고, 탄탄한 IT 인프라가 갖춰져 있다. 현지인들은 인터넷으로 소통하기를 즐기고 온라인 쇼핑도 갈수록 늘고 있다. 6·25전쟁 참전국으로서 한국에 대한 인상이 좋은 점도 우리 IT 기업들의 현지 진출에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한다.

터키로 몰려드는 국내 기업들

SK플래닛은 작년 3월 터키에서 현지의 도우시그룹과 함께 인터넷 쇼핑몰 'n11.com'을 개설했다. 9개월간 여기서 1300억원어치의 상품이 팔려나갔고, 현지의 3대 인터넷 쇼핑몰로 자리 잡았다. 현재 이곳에 등록된 상품은 600만개, 판매상인은 7000여명에 이른다.

SK플래닛이 터키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쇼핑몰 ‘n11.com’. 한국 쇼핑몰 ‘11번가’의 운영 방식을 도입해 현지 3대 인터넷 쇼핑몰로 자리 잡았다.

현지 시장에 안착한 비결은 어설픈 현지화 대신 한국식 운영 노하우를 적극적으로 도입한 것이 꼽힌다. 우선 한국에서 SK가 운영하는 토종 쇼핑몰 '11번가' 이름과 화면 구성 방식 등을 그대로 가져갔다. 옷이 잘 팔리게끔 모델을 고용해 사진 촬영을 도와주고, 현지 인터넷 쇼핑몰 중 최초로 24시간 콜센터를 운영하는 것도 한국과 비슷하다. SK플래닛 관계자는 "터키 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해외 진출 전략 지역으로 정해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LG전자도 터키 지역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11일 터키 전역 1300개 매장에서 동시에 신형 스마트폰 '갤럭시S5'를 출시했다. 100여개 매장에서 출시한 '갤럭시S4' 때보다 출시 매장이 13배 가까이 늘었다. 갤럭시S5는 초기 물량이 2시간 만에 매진되는 등 큰 인기를 끌었다. LG전자 스마트폰 'G2'의 지난해 터키 판매량은 전년 대비 3배 이상 늘었다. 올해는 현지 스마트폰 시장점유율 '톱3'에 진입했다.

중소 IT업체도 선전하고 있다. 게임업체 엠게임이 개발한 '나이트 온라인'은 2~3년간 터키 게임 순위 3위 안에 꾸준히 들 만큼 인기를 끌고 있다. 게임에 동시 접속하는 숫자가 평균 3만명에 이른다. 엠게임 관계자는 "터키의 PC방 인프라와 게이머들의 성향이 집단 전투, 개인 간 전투를 좋아하는 한국과 비슷하다는 점을 발견하고 그에 특화된 게임을 내놓은 것이 호평받고 있다"고 말했다. 내비게이션 '아이나비'로 유명한 팅크웨어는 작년 말 터키에 태블릿PC를 70만대 가까이 팔았다. 금액으로는 150억원 정도다. 터키 정부는 올해 교육과 행정 업무용으로 태블릿PC 1000만대를 구매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팅크웨어도 정부 입찰을 준비 중이며, 일정 물량을 따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 선호 정서와 IT 잠재력 커

전문가들은 한국 IT 제품과 서비스가 인기를 끄는 데는 터키의 친한(親韓) 정서가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터키는 6·25전쟁 참전국 16개국 가운데 넷째로 많은 병력을 파병했을 만큼 우리나라와 인연이 깊다. 코트라 이스탄불무역관의 김재우 차장은 "터키 사람들은 한국 사람이라고 하면 남한인지 북한인지 물어보고, 남한 사람에게만 '칸 카르디시(피를 나눈 형제라는 뜻)'라고 부르며 애정을 준다"며 "우리나라 기술과 제품이 뛰어난 점도 있지만, 한국 프리미엄이 붙는 것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터키의 IT 시장은 성장 가능성이 큰 것으로 평가된다. 인터넷을 쓰는 사람은 인구의 절반 정도인 3650만명으로 세계 15위(2012년 기준)이고 매년 10%씩 사용자가 늘고 있다. 온라인 쇼핑 규모도 2011년 127억달러(13조2000억원)로 전년보다 50% 증가했다. 현재는 인터넷 사용자의 5% 정도만 인터넷 쇼핑을 하고 있다. 앞으로 3년 내 이 비중이 30%까지 늘어 연간 시장규모가 1400억달러(145조원)에 이를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젊은 층의 SNS(소셜네트워킹서비스), 휴대폰 사용률이 높고 채팅·공유 문화가 발달한 점도 시장 확대에 유리한 환경이다. 터키 전체 인구의 40%가 페이스북 회원일 정도다. 게임업체들은 터키인들이 유럽에서 둘째로 긴 시간(월평균 31시간) 동안 인터넷을 사용하는 점에 주목한다. 온라인게임은 특성상 오랜 시간 접속해 즐겨야 하는데, 터키인들의 성향과 부합한다는 것이다.

터키 시장에 마냥 장밋빛 미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부의 규제가 강하고 모바일 분야의 높은 세금 등은 단점으로 꼽힌다. SK플래닛 관계자는 "꼼꼼한 시장조사 없이 무턱대고 진출했다가는 낭패를 보기 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