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경기 안산 단원고등학교에서 한 소녀가 '세월호 실종자 무사귀한 기원 촛불 문화제'에 참석해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실종자의 무사귀환을 염원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지난 16일 발생한 세월호 침몰사고로 온 국민의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고 있다. 아직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실종자는 240여명. 사고 엿새째인 21일에도 기다리는 구조 소식은 들리지 않고 사망자 수만 늘자 침통함과 안타까운 탄식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는 사고를 직접 경험한 생존자나 사망자·실종자의 가족이 아니어도 슬픔을 넘어 우울감을 호소하고 있다. 언론 보도를 통해 충격적인 사건을 접함으로써 스트레스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직장인 김지혜(36)씨는 “지난 16일 사고가 난 날부터 거의 매일 뉴스를 보며 울고 또 울었다”며 “너무 슬퍼서 보지 말아야지 싶다가도 어둡고 찬 물 속에 갇혀있을 학생들 생각이 자꾸 나고 소식이 궁금해 뉴스를 계속 보게 된다”고 말했다. 주부 안모(45)씨는 “계속 안타깝고 답답한 소식만 되풀이해서 보니까 우울하고 점점 무서운 생각이 든다”며 “오늘 아침에는 자고 일어났는데 온몸이 아프고 이유없이 화까지 났다”고 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는 심각한 사건을 직접 경험하거나 목격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목숨을 위협하는 큰 사건 이후 불안·분노·우울·상실감·무력감·불면·소화불량·두통 등을 겪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세월호 침몰 사고에 대한 언론 보도를 지켜본 국민에게서도 이와 비슷한 ‘간접 외상(대리 외상)’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

외상이란 교통사고나 화재·고문·자연재해·폭력 등 생명을 위협하는 경험을 말한다. 정신건강이 취약한 상태에서 이런 외상성 사건에 노출되면 질환으로 이어지기 쉽다. 대개 어린 시절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했거나 주변 가족이나 친구의 지지가 부족한 경우, 여성이거나 최근 스트레스가 심한 경우에 위험하다.

채정호 서울성모병원 정신과 교수(대한불안의학회 이사장)는 “과거 가족이나 연인을 잃은 경험으로 우울이나 상실감을 경험했거나, 타인과 소통 없이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은 사람 등은 다른 사람의 불행에 동질감을 쉽게 느껴 우울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우울감은 수렁과 같아서 한번 빠져들면 쉽사리 헤어나오기 어렵다는 것이다.

채 교수는 “다른 사람의 불행에 공감하고 함께 슬퍼해주는 게 인지상정이지만 이 과정에서 자신도 힘들어질 수 있다”면서 “심할 경우 전문의 상담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특히 안산시민이나 청소년, 학부모 등 이번 사건에 동질감을 느끼기 쉬운 경우라면 자신의 정신 건강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2001년 미국 9·11 테러 사건 때 단순히 TV 화면으로 관련 소식을 지켜본 사람 중에는 불안 장애를 겪는 사람들이 발견됐다. 당시 이런 증상은 사건이 일어난 뉴욕에서 가까이 살거나, 뉴욕에 아는 사람이 많을수록 많이 나타났다.

소아·청소년을 둔 학부모라면 자녀가 세월호 침몰 사고 뉴스에 지나치게 심취해 있진 않은 지 관찰하는 게 좋겠다. 간접 경험이더라도 어린 시절 정신적 충격은 성인이 되어 우울증으로 이어질 확률이 더 높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트라우마와 우울증의 상관관계를 규명한 전홍진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어린이들이 겪은 정신적으로 힘든 경험이 트라우마가 되지 않도록 부모와 사회의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외상성 사건 즉, 세월호 침몰 사고에 관한 생각이 반복되거나 꿈에서 불쾌하게 나타난다면 상태를 의심할 필요가 있다. 반대로 해당 사고에 대해 이야기 하기를 꺼리기도 한다. 자율신경계가 예민해져 깜짝깜짝 놀라거나 짜증을 잘 내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증상이다.

그러나 간접 외상 등 비슷한 증상을 겪는 이들을 모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진단하지는 않는다. 최수희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증상이 2일 이상 1개월 이내로 지속되는 경우 급성 스트레스 장애라 하고, 1개월 이상 지속돼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설명했다.

조은정 서울시북부병원 정신건강의학과장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대개 사건 발생 후 나타나지만, 당시에는 괜찮았다가도 수십년 후에도 이러한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며 “적절히 치료하지 않으면 10명 중 1명은 후유증으로 약물 남용이나 중독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 같은 질환은 약물 치료와 상담을 병행하며 치료한다. 주로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로 불리는 항우울제를 먹는다. 기분을 조절하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의 농도가 줄어드는 것을 막는 약으로 최소 8주 이상, 대개 1년간 복용했다가 서서히 중단한다. 이외 그룹치료나 인지요법, 최면요법 등을 시도한다.

우울감을 더하는 원인은 차단하되 과거 자신의 상처 등으로 북받쳐 오르는 슬픔이 있다면 억지로 억누르거나 부인할 필요는 없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울고 싶을 땐 참지 말고 우는 게 좋다’고 권한다. 자신도 몰랐던 내면의 깊은 상처를 자연스럽게 표출하면서 아픔을 이겨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도의 기간이 길어지고 정상적인 생활에 방해가 된다면 증상이 심해지기 전에 상담 등의 주변 도움을 받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