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전기차 볼트(Volt).

‘4년만에 95배.’

2009년 1000대 수준이었던 전 세계 전기차의 판매량은 지난해 9만5000대로 늘었지만, 전기차를 파는 주요 업체들의 표정을 보면 테슬라를 제외하고 대부분 그리 밝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전기차가 처음 나올 당시만 해도 전기차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이 줄을 이었지만, 현실은 기대와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누적 판매량 10만대를 돌파하며 현재까지 전기차를 가장 많이 판매한 업체인 닛산의 경우 지난해 4월 전기차 ‘리프(Leaf)’의 가격을 약 11% 인하한 데 이어, 11월에는 카를로스 곤 회장이 르노와 닛산을 합해 150만대의 전기차를 판매하겠다던 목표 달성 시기를 기존 2016년에서 2020년으로 4년 늦추기도 했다. 아직 10만대밖에 팔리지 않은 만큼 전기차 전도사로 불리던 곤 회장도 당초의 전망이 너무 낙관적이었음을 인정한 것이다.

GM도 마찬가지다. 2010년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방식의 전기차인 ‘볼트(Volt)’를 내놓은 GM은 당초 2011년 1만대, 2012년 6만대를 판매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듬해에는 초기 주문이 몰리며 이 목표를 각각 2만5000대와 12만대로 2배 이상 늘리기도 했었다. 이 같은 장밋빛 전망에 힘입어 LG화학(051910)의 미시간 공장도 잘 돌아갈 것으로 기대되기도 했었다. 볼트는 전기차 모드로 달리다가 전기를 다 쓰면 연료를 태워 전기를 만들어 추가 전기를 얻는 방식이라 미국에서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전기차라고 불린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실현되지 않았다. 볼트의 경우 2010~2011년 7671대에서 2012년 판매량이 2만3461대로 급증했지만, 지난해에는 오히려 2만3094대로 주저앉았다. GM 역시 닛산과 마찬가지로 지난해 2014년형 볼트를 내놓으며 가격을 5000달러 낮춰 팔기 시작했다. 현재 볼트의 가격은 3만5000달러로 정부보조금을 받으면 약 2만7500달러(약 2850만원)에 구입할 수 있다.

닛산의 전기차 리프(Leaf).

업계 관계자와 전문가들은 이들 주요 업체의 전기차 판매가 부진했던 이유로 유가 하락, 인프라 부족, 다른 친환경차와의 경쟁 심화 등을 꼽고 있다. 전기차에 대한 장밋빛 전망이 줄을 잇던 배경 중 하나는 기름 값이 급등할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하지만 세일가스가 개발되고, 글로벌 경기도 침체하며 유가는 급등하지 않았다.

이어 전기차 충전 인프라가 생각만큼 빨리 구축되지 않는다는 점도 발목을 잡았다. 전기차가 널리 보급되려면 현재 내연기관 자동차가 쉽게 주유소를 드나드는 것만큼 편안하게 충전할 수 있는 시설이 갖춰져야 한다. 이 같은 시설을 구축하는 데는 정부의 대규모 지원이 필요하지만, 유럽발 재정위기 등으로 이 역시 기대만큼 빠르게 진행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하이브리드차와 디젤차 등의 연비가 급속도로 좋아지며 전기차의 매력이 상대적으로 줄었다는 점도 이유로 꼽힌다. 전기차는 초기 비용이 비싸지만, 보유 기간 동안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점이 장점이다. 현재 전기차의 직접 경쟁 상대인 하이브리드차의 경우 L당 20㎞대의 연비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 유럽의 디젤 차들도 연비가 L 20㎞에 육박하는 차들을 속속 내놓고 있다. 기술 개발로 기존 차들의 운행 비용이 계속 줄어드는 것이다.

하지만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은 여전히 전기차 시장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 전기차 전문 업체인 테슬라의 경우 지난해 2만2477대의 전기차를 판매하며 이런 기대를 뒷받침하고 있다. 닛산이나 GM보다 적은 수치지만, 이들보다 가격이 훨씬 비싼 고성능 전기차인 점을 감안하면 희망적인 수치인 셈이다.

테슬라의 전기차 모델S.

유럽 고급차 업체인 BMW의 전기차 판매가 호조를 보이는 것도 긍정적이다. 전기차 i3를 출시한 BMW도 이번 달 미국 시장 출시를 앞두고 생산량을 40% 늘리기로 했다. 유럽에서는 대기 기간만 6개월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업체인 현대·기아차를 비롯해 폴크스바겐, 메르세데스벤츠, 도요타 등도 모두 전기차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다.

GM도 2015~2016년으로 예상되는 볼트 후속 모델 생산이 늘어날 것을 감안해 볼트를 생산하는 햄트래믹공장 등에 4억5000만달러(약 4700억원)을 추가로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최근 발표했다. 한국GM 관계자는 “전기차 시장이 계속 성장할 것이라는 GM의 판단은 지금도 유효하다”면서 “볼트의 후속 모델을 비롯해 같은 시스템을 이용해 오펠과 캐딜락 브랜드로도 새로운 전기차를 계속 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