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에타 쿼르텟.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서 60㎞ 떨어진 나파밸리는 와인산지로 유명하다.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에 비하면 역사가 턱없이 부족하나 적지 않은 명품들을 생산하고 있다.

나파밸리 내 와이너리 ‘아리에타’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반면 와인 전문가들은 이곳 와인을 ‘숨겨진 보물’에 비유한다.

아리에타를 거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오선지를 이용한 레이블(상품에 상표나 품명을 붙인 인쇄물)이다. 낡은 오선지 위에 희미하게 그려진 음표들. 그 위에 손으로 휘갈겨 쓴 듯한 ‘아리에타’(Arietta)라는 단어가 눈에 띈다. 포도주와 음악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

유명 와인 경매사이자 아리에타 소유주 프리츠 해튼이 오선지 레이블을 창안했다.

해튼은 아마추어 피아니스트로 수준급 실력을 갖췄다는 평가받았다. 그는 1998년 나파밸리에 아리에타를 설립하면서 자기 와인을 만들겠다는 꿈을 이뤘다. 해튼은 와인 레이블을 만드는데 1년 넘게 고민했다.

어느날 아내가 해튼에게 클래식을 활용해 보라고 권유했다. 해튼은 악보를 뒤지다 베토벤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 악장(Opus111) 첫 페이지에 쓰인 아리에타를 발견했다. 베토벤은 악보 위에 글로 아리에타를 직접 썼다. 악보 상에서 아리에타는 ‘아주 천천히, 간결하게, 그리고 풍부하고 아름답게(Arietta: Adagio molto semplice e cantabile)’라는 뜻이다.

해튼은 자기 와인에 걸맞는 단어를 찾았다고 확신했다. 와이너리 공동 창립자 존 콩스가드(John Kongsgaard)와 수차례 논의한 뒤 베를린 도서관에서 구한 베토벤의 원본 악장 카피를 레이블 디자이너 토니 오스톤에게 넘겨 와인 아리에타의 레이블을 완성했다. 이 레이블은 2008년 빈티지 제품까지 사용됐다. 그 뒤 케세이 암스트롱이 레이블을 개선했다. 암스트롱은 몬다비 와인의 레이블을 10년 이상 디자인했다.

해튼은 와인 경매사로 활동하면서 포도 재배업자와 두터운 친분을 쌓은 덕에 허드슨 빈야드(Hudson Vineyard) 등 나파밸리 내 최고급 포도밭의 최고 구획에서 생산된 포도로 와인을 만들 수 있었다. 최고급 포도만을 고집하다보니 생산량이 적다. 아리에타 5종의 생산량은 2400케이스(약 3만병)에 불과하다.

아리에타 와이너리의 대표 제품은 보드도풍 블렌드 와인 ‘아리에타 쿼르텟’(Arietta Quartet)이다. 아리에타 쿼르텟(4중주)는 카버네 소비뇽, 멀롯, 카버네 프랑, 쁘띠 베르도 등 보르도 포도 4종을 섞어 만든다.

완숙한 과일의 풍미가 가득하며 다량의 타닌이 있음에도 그것을 덮어버리는 관능적인 느낌을 지니고 있다. 출시 시점에도 조화로운 맛이지만 7~8년 지나 마시면 깊어진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다.

앤디 에릭슨(Andy Erikson)이 2006년 빈티지 제품부터 양조를 맡고 있다. 에릭슨은 미국 컬트 와인 스크리밍 이글(Screaming Eagle)의 현직 와인 제조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