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정인성 기자

작년 말 실적이 반 토막 난 국내 금융지주사의 사정이 올해도 크게 바뀔 것 같지가 않다. 저성장, 저금리 기조가 고착화되고 있지만, 금융지주사의 수익 구조는 변한 게 전혀 없다.

이런 와중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디지털을 활용해 도소매업의 결제 방식, 나아가 금융업 자체의 정의를 바꾸고 글로벌화하는 경우가 최근에 여럿 발견된다. 미국 온라인 쇼핑 결제 시장을 일군 페이팔(PayPal)은 매출의 20~30%를 국경을 넘나드는 디지털 거래에서 거두고 있다. 구글, 아마존 등이 조만간 글로벌 결제 시장의 강자로 올라설 것이라는 전망은 이제 업계의 상식처럼 받아들여진다. 아프리카 케냐의 사파리콤(Safaricom)은 엠-페사(M-PESA)라는 모바일 결제시스템을 무선통신사 보다폰과 협업해, 휴대전화 기반의 '지점 없는' 금융 사업을 케냐에서 성공시킨 뒤 탄자니아, 아프가니스탄, 남아공, 인도 등 다른 여러 미개발 국가로 확산시키고 있다. 지금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은행을 꼽으라면, 많은 사람이 유통업에서 출발하여 글로벌 확장을 거듭하고 있는 라쿠텐을 주저 없이 선택한다.

눈을 돌려 국내 은행, 보험, 증권사를 생각해 보자.

글로벌화가 십 수년째 화두였으나, 이렇다 할 성과를 찾아보기 힘들다. 과연 대안은 없는 것인가?

업(業)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우리가 익숙한 금융업 형태를 들고 해외로 나갈 것이 아니라 기술 기반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내야 하고, 이를 위해 네 가지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첫째, 돈을 벌 수 있는 새로운 수익 모델을 개발할 수 있는가? 혁신적인 모바일 사업 모델, 예컨대 고객과 고객이 직접 돈을 빌려주고 돌려받는 플랫폼 구축이나 전자 지갑 개발, 빈민들을 대상으로 한 소액대출 등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

둘째, 지속적인 사업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고객 충성도를 높이는 방안을 마련했는가? 브랜드 가치 제고를 위한 노력과 함께 저개발 국가의 고객에게 필요한 국제 송금 기능, 편의성 높은 현장 결제 기능 등이 아이디어로 제시될 수 있다.

셋째, 비용 부담이 작은 사업 모델을 갖고 있는가? 좁은 땅덩어리 위에 수천 지점을 안고 있는 한국형 모델이 아닌, 모든 기능을 온라인과 모바일상에서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사업이 필요하다. 넷째, '새로운' 고객을 잡아낼 수 있는가? 개발도상국이라도 기존 고객군의 점유율을 빼앗아 오는 것은 쉽지 않다. 소위 미개척 고객군을 끌어올 수 있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미 성공 사례도 다수 존재한다. 독일 제2의 은행인 코메르츠방크는 중산층 고객을 대상으로 닷컴다이렉트라는 온라인 거래 플랫폼을 만든 뒤, 여기에 예금·대출·투자·주택 모기지 상품 등을 결합해 고속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프랑스의 BNP파리바은행 또한 최근 '모바일로 태어났다'는 슬로건 아래 헬로뱅크라는 모바일 자회사를 설립, 프랑스·벨기에·독일·이탈리아에서 활동하고 있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는 자사의 온라인 지불 결제 시스템인 '즈푸바오'와 연계한 일종의 머니마켓펀드 상품인 '위어바오'라는 인터넷 금융상품을 출시했다.

한국 제조업체들이 해외 진출 초기에 접했던 어려움은 현재 금융회사들이 맞닥뜨린 문제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차이점은, 해외시장 개척을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신규 업체로서 비집고 들어갈 틈을 만들기 위한 혁신적인 모델을 시도해 왔다는 점이다. 이제 금융회사가 스스로 업의 본질을 연구하고, 사업 형태를 변화시킬 차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