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합병(M&A)의 귀재’, ‘샐러리맨의 신화’….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하면 항상 따라다니는 수식어였다. 그런 그가 구속됐다. 300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다.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윤강열 부장판사는 15일 강덕수 전 회장에 대한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치고 “범죄혐의가 소명되고 사안이 매우 중대하다”며 “현재까지 수사 진행 경과에 비춰 도주 및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고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검찰은 이날 오전 1시20분 영장을 집행했다.

지난해 12월 산업은행 등 STX그룹 채권단은 강덕수 전 회장에 배임혐의가 있다고 판단, 경영진에 강 회장을 검찰에 고소해 줄 것을 요구했다. 회사에 손실을 입힌 책임을 묻는 동시에, STX그룹과 강 회장이 비자금을 빼돌려 조성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회사가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강 회장이 어느 선까지 의사 결정을 했는지를 파악해 내는 것이 관건이었다.

채권단의 요구에 지난 2월 10일 STX중공업 현 경영진은 강 회장 등 5명을 배임 및 횡령혐의로 수사 의뢰했다. 검찰 수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검찰은 닷새 뒤 STX본사 빌딩과 강 전 회장 자택에 검사와 수사관들을 보내 전격적인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검찰은 “어디까지나 경영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와 관련한 수사”라고 선을 긋는 듯 보였지만, 실제로는 강 전 회장의 비자금을 추적, 이 돈이 정치권 로비에 쓰였을 가능성에도 주목했다. 강 전 회장이 전 정권 인사들에게 돈을 건넸다는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일각에선 고소 전 이미 검찰의 내사가 진행중이었다는 얘기도 흘러 나왔다. 지난 정권에서 승승장구한 STX가 정관계에 적잖은 로비 자금을 건넸을 것이란 의혹이 일면서 강 회장 수사는 정치적 이해 관계가 맞물린 작품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강 회장은 1973년 쌍용양회의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특유의 성실함과 재능으로 승진 가도를 달렸던 그는 쌍용중공업의 재무책임자(CFO)로 성장했다. IMF 금융위기로 회사가 어려움에 빠지자 자신의 개인자산을 담보로 운영자금을 마련할 정도로 회사에 애착을 쏟았다. 사재 20억원을 털어 펀드를 끌어들인 그는 경영난에 빠진 회사를 스스로 인수했다. 기업 인수로 몸집을 키워 10여년 뒤 재계 13위 그룹이 된 STX의 출발이었다.

쌍용중공업을 인수, 회사 이름을 STX로 바꾼 그는 광폭행보에 나선다. 2001년 대동조선(현 STX조선)에 이어 2002년 산단에너지(구미·반월공단 열 병합 발전소 2기·현 STX에너지), 2004년 저속 대형 디젤 엔진과 선박기자재를 생산하는 STX중공업을 설립했고, 범양상선(현 STX팬오션)까지 차례로 인수하며 조선·엔진·해운 부문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다.

2005년 STX건설을 설립하며 건설업에도 진출했고 2008년 중국 다롄에 STX조선해양 생산기지를 준공했다. 2007년 세계 최대 크루즈선 건조사인 아커야즈를 인수 사명을 STX유럽으로 변경하는 등 세계로의 확장을 꿈꿨다. 재계에선 그를 ‘제 2의 김우중’이라 불렀다.

설립 당시 5000억여원 수준이던 그룹의 매출액은 10여년 만에 30조원 수준으로 불었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조선 해운업에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유럽 재정위기로 일감이 끊기기 시작했다. 계열사들은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회사는 하나 둘 채권단에 넘어갔고 강 회장은 결국 검찰조사에 이어 구속에 이르게 됐다.

회사 창립 초기와 마찬가지로 강 회장은 이번에도 회사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집까지 모두 팔아 수중에 남은 재산이 아무 것도 없다고 전해진다. 심지어 변호사 비용도 없어 검찰 조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얘기도 있다. 채권단이 강 회장의 경영권을 모두 가져가겠다 할 때도 강 회장은 “회사를 살리는 길이라면 무엇이든 못하겠느냐”며 채권단에 모든 걸 양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