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차 없는 거리' 행사. 커다란 눈망울 두 개를 앞에 붙인 파랑·빨강·노랑·초록색 '타요버스'에 어린이 수백여 명이 몰렸다. 버스 안은 엄마 손을 붙잡고 올라탄 3~5세 어린이들로 종일 만원(滿員)이었다. 긴 줄을 기다려 간신히 버스에 탄 아이들은 자리를 하나씩 차지하고 앉아 버스 창문에 바짝 붙었다. 버스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버스를 매만지고, 밀어도 보고, 껴안아 보기도 했다.

인기 만화 캐릭터 '타요'를 버스에 입힌 '타요버스' 4대에 온 서울 시내가 들썩이고 있다. 서울시가 '대중교통의 날'을 맞아 지난달 26일부터 한 달간 시범 운영하고 있는데, 정류장마다 유치원 빠지고 온 어린이들이 몰려들고 '제발 없애지 말아달라'는 부모들의 민원이 빗발치고 있다. 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은 타요버스를 어린이날 이전까지 100대로 늘리고 연중 상시(常時) 운행할 계획이다.

타요버스 만든 '괴짜 CEO'

'타요버스'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낸 이는 동아운수의 임진욱(48) 대표다. 캐릭터 '타요'를 실제로 버스에 입혀 서울 시내를 달리게 하자는 제안을 서울시가 받아들인 것. 그는 "어린이들이 좋아할 거란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로 반응이 폭발적일 줄은 몰랐다"고 했다.

‘타요버스’ 아이디어를 낸 동아운수 임진욱 대표가 서울 강북구 우이동 회사 차고지에서 버스와 함께 활짝 웃고있다. 버스 앞문 위에 달린 작은 ‘돌출형 번호판’도 그가 탑승객 편의를 위해 개발한 것이다.

임 대표는 타요버스뿐 아니라 시내버스에 온갖 톡톡 튀는 실험을 해온 '괴짜 CEO'다. 버스 앞문이 열릴 때마다 노선번호가 '착' 하고 펼쳐지는 돌출형 번호판, 시각장애인에게 버스 도착을 알려주는 '말하는 버스'도 모두 그의 작품.

대학에서 사진·광고를 전공한 임 대표는 13년간 사진기자 생활을 하다가, 2007년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아 버스 회사를 이끌고 있다. 동아운수는 9개 노선, 213대의 버스를 운영하는 서울에서 둘째로 큰 버스 회사다. 그는 "버스를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닌 '달리는 미디어(media·매체)'로 본다"고 말했다. "1년 365일, 하루 18시간을 돌아다니고, 매일 700~1000명이 타는 미디어가 어디 흔한가요. 본연의 기능은 운송(運送)이지만, 사회의 이슈를 재미있게 이끌어가는 미디어가 될 수도 있죠."

그는 매년 3월이 되면 버스 앞에 천안함 전몰장병 추모, 6월엔 호국보훈의 달 플래카드를 내건다. 국경일엔 잊지 않고 태극기를 단다. 모든 버스 뒷유리엔 독도 사진과 함께 독도 우편번호인 '799-805'란 숫자를 붙이고 다닌다. 네티즌들은 '개념 버스' '애국 버스'란 별명을 붙여줬다.

버스 특허도 여럿 보유

2007년 임 대표가 취임한 이후, 동아운수는 업계에서 '저 회사는 버스 갖고 별걸 다 하네'란 소리를 듣는다. 동아운수 버스엔 다른 회사엔 없는 장비들이 여럿 달렸다. 그는 3년 전 우이동~중앙대 구간을 다니는 151번 버스 38대 모두에 음성 안내 장치를 달았다. 버스가 도착하면 '딩동, 동아운수 151번 버스가 도착했습니다'란 안내가 나온다. 그가 사비(私費) 7600만원을 들여 이 장비를 장착한 것은 151번 노선이 국립재활원, 국립서울맹학교, 성북시각장애인복지관을 지나기 때문이다.

작년 10월 한글날을 맞아 디자이너 이건만씨의 한글 디자인을 입힌 동아운수의 ‘한글 버스’(왼쪽 사진). 버스 광고판 대신 미술 작품을 전시한 ‘버스 안 미술관’(오른쪽 사진).

서울 시내버스 대부분에 장착된 '돌출형 번호판'도 임 대표가 직접 개발해 동아운수에 처음 적용한 것이다. 서울시버스조합은 임 대표에게 특허료를 내고 다른 버스에도 확대 적용했다. 버스 내·외부의 광고를 전부 떼내고 미술작품 수십 점을 전시하고, 독도 사진전도 버스 안에서 열었다. 한글날엔 한글 디자이너 이건만씨의 알록달록한 작품을 버스 전체에 씌우고 서울 시내를 달렸다. 임 대표는 "사실 돈 되는 일은 아니지만 스스로 즐거워 하는 것"이라고 했다.

버스 관련 특허도 3개나 갖고 있다. 뒷문이 열릴 때마다 '아들 힘내, 아빠 파이팅'과 같은 응원 메시지가 흘러나오는 장치, 좌석마다 모니터를 설치해 신인 감독들의 단편영화를 상영하는 '씨네버스'도 구상 중이다. 지난달엔 4년여간의 연구 끝에 세 바퀴가 달린 전기(電氣) 이동수단 '트라이비키(Triviki)'까지 개발해 출시했다. 가격은 440만원인데 3시간 반을 충전하면 최고 시속 25㎞로 35㎞ 거리를 탈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임 대표는 "'펀(Fun·재미)하고 편(便)한 버스'를 만드는 게 꿈"이라고 했다. "솔직히 버스를 타고 싶어서 타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예요. 탈 수밖에 없으니까 타지요. 이렇게 자꾸 재밌는 시도를 하다보면 사람들이 버스를 더 친근하게 느끼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