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것은 새로운 지식의 수준(quality)입니다. 한국도 기초과학 분야에서 더 탁월하고 수준 높은 연구를 해야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와이즈만(Weizmann) 연구소의 다니엘 자이프만(Zajfman·55) 연구소장은 "새로운 지식과 기술은 이미 산업에 도입된 응용과학에서는 나오기 힘들다"며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기초과학 분야의 연구를 진행해야 완전히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 IST)에서 열린 초청 특강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 17일 방한했다. 이스라엘 텔아비브 외곽에 있는 와이즈만 연구소는 독일 막스플랑크, 프랑스 파스퇴르 등과 함께 세계 5대 기초과학 연구소로 꼽힌다. 생물학·화학 등 기초과학 분야에서 수준 높은 연구 성과와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버는 연구소로도 유명하다. 기초과학 분야에서 얻은 연구 성과를 사업으로 연결해 거액을 번다. 이 연구소가 지금까지 벌어들인 수입(기술사용료)은 17억달러(약 1조8000억원)가 넘는다.

사업성부터 내다보면 혁신적 연구 안 된다

자이프만 소장은 이스라엘 테크니온 공대에서 원자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아르곤 국립연구소, 독일 막스플랑크재단 산하 핵물리연구소장을 지낸 뒤 2006년 와이즈만 연구소장으로 부임했다.

자이프만 소장은 "연구 단계부터 사업성을 보고 연구하면 절대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얻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1800년대에 끊임없는 실패를 겪으며 전기를 발명하는 대신 더 저렴한 촛불, 효율적인 촛불만 연구했다면 인류는 여전히 촛불 속에서 살고 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스라엘 와이즈만 연구소의 다니엘 자이프만 소장은 “기초과학 분야에서 더 수준 높은 연구를 해야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며 “그저 그런 연구원 여러 명보다 정말 뛰어난 연구자 한 명을 육성하는 데 많은 돈을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이프만 소장은 "세상을 바꿔놓을 아이디어는 오랜 연구 끝에 우연히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대표적인 것이 신체가 마비되는 병인 다발성 경화증 치료제인 '코박손(Copaxone)' 개발이다. 와이즈만 연구소는 1966년부터 다양한 분자(分子) 단위가 모여 만들어진 혼성중합체의 구조와 특성에 대해 30년간 지속적으로 연구하다 특정 중합체가 경화증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연구소는 1996년 이스라엘 제약회사 테바(Teva)에 관련 기술을 이전해 코박손이란 치료제가 탄생했다.

연구소는 지금까지 코박손으로만 2억달러(약 2138억원) 넘는 기술이전료를 벌어들였다. 주사제 레비프(Rebif), 표적항암제 얼비툭스(Erbitux) 등의 원천기술도 연구소를 지탱하는 든든한 '돈줄'이다. 기술료 수입의 40%는 연구 개발자에게 인센티브로 지급한다.

와이즈만 연구소는 1년에 평균 100여건의 특허를 낸다. 특허 건수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이 가운데 기술이 이전되고 사업화가 되는 비율은 30%에 달한다. 응용과학이 아니고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연구소의 성과로는 매우 높은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국가 연구개발(R&D)의 사업화율은 20%이고, 대학 연구소의 정부 지원 과제는 사업화 비율이 4.4%밖에 안 된다. 기술사용료 차이는 더 크다. 와이즈만 연구소는 매년 기업 등에서 1억달러(약 1069억원)의 기술료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의 24개 정부출연연구소는 다 합해야 839억원이다.

연구자는 연구 매진, 사업화는 전문가에게

자이프만 소장은 기초과학으로 많은 돈을 버는 비결에 대해 "1959년 세계 최초로 기술이전 전문회사 예다를 만들어 성공적으로 운영한 덕분"이라며 "연구자들은 연구에만 매진하고 사업화는 사업 전문가들이 맡는다"고 말했다.

특허 출원 건수 같은 수치에 연연하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그는 "연구자에게 완전한 자유(total freedom)를 제공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기간, 실적에 구애받지 않고 연구하도록 지원한다"고 말했다. 그래야 뛰어난 연구가 나온다는 것이다.

와이즈만 연구소(Weizmann Institute of Science)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되는 이스라엘의 기초과학 연구·교육 기관. 화학자인 하임 와이즈만(나중에 초대 대통령이 됨)이 1934년 설립했다. 현재 교수, 연구원, 대학원생 등 총 2600여명이 수학·컴퓨터·물리·화학·생물학 분야를 집중 연구한다. 작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아리에 와르셸, 마이클 레빗이 이 연구소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