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인스 하이에크

니컬러스 웝숏 지음ㅣ김홍식 옮김ㅣ부키ㅣ632쪽ㅣ2만5000원

케인스와 하이에크라는 두 경제학자의 대결은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며 하이에크의 신봉자였던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세금 환급과 정부의 은행 부실채권 매입 등 케인스주의적인 시장 개입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었다. 오바마 대통령 역시 사회간접자본에 정부 예산을 투입해 경기를 부양하고자 했지만, 이같은 정책이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자 이번에는 공화당을 중심으로 정부 차입 중단과 국가 채무 상환을 촉구하는 티파티 운동이 일어났다. 하이에크가 다시 고개를 든 것이다.

이 책은 두 경제학자의 이론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물의 시대적 상황과 개인적 배경을 함께 조명해 각자의 이론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형성됐는지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가령 케인스는 1차 대전 직후 영국의 대량 실업 문제를 목격하면서 실업 해결이라는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게 됐다. 반면 케인스보다 16살 어렸던 하이에크는 전쟁 이후 오스트리아의 인플레이션을 경험하며(인플레 때문에 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독일 유학이 좌절되기도 했다) 물가 상승을 가장 큰 문제로 여기게 됐다.

케인스는 불황을 막기 위해서는 투자를 늘려야 하며, 이같은 역할을 할 사적 기업이 없다면 정부가 통화정책과 세금감면, 공공사업 등을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한다고 봤다. 이같은 이론을 뒷받침하는 것이 '승수 이론'이다. 정부 사업이 고용 증가와 지출을 낳아 임금과 소득을 발생시키고, 이는 새로운 구매를 유발시켜 다시 고용을 창출한다는 것이다. 고용이 늘어나면 정부가 실업급여로 쓸 돈도 절감되고 거둬들일 세금도 늘어나 정부는 결국 지출한 돈을 돌려받는다.

반면 하이에크는 불황이란 통화량이 늘어나 신용이 과잉팽창했기 때문이라고 봤다. 이 경우 케인스의 주장처럼 정부가 대규모 차입을 통해 시장에 개입하면 물가 상승을 부채질할 뿐이며, 시장은 가만히 두면 수요와 공급의 매커니즘에 따라 장기적으로 균형 상태로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저작 '노예의 길(1944)'에서는 계획경제는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그 통제력이 점차 커질 수 밖에 없어 폭정을 초래하기 쉽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두 사람의 이같은 주장은 대공황기, 미국의 적극적인 정부 지출을 통한 경기부양책인 뉴딜정책, 1970년대 스테그플레이션 등을 겪으며 20세기 내내 엎치락뒤치락했다. 20세기 후반 미국과 영국에서 통화 긴축과 산업규제 완화, 법인세 감축을 통해 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이 떨어지고 실질GDP가 상승하면서 이들의 승부는 하이에크의 승리로 끝난 듯했다. 그러나 2008년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겪으며 하이에크 식 작은 정부와 자유시장 관념은 다시금 케인스주의의 공격을 받았다. 그리고 두 경제학자의 대결은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

이 책은 좋은 경제학 서적이기도 하지만 두 사상가가 현대 정치의 여러 결정 과정에 어떻게 영향을 끼쳐 왔는지를 살펴보는 데도 유용하다. 경기 부양을 위해 정부는 어떤 정책을 펴야 하는가? 정부가 포괄해야 하는 사회 안전망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정부는 위기에 처한 금융기관이나 사적 기업을 구제해야 하는가, 내버려둬야 하는가? IT산업 시대에도 대규모 공공사업이 일으키는 승수 효과는 존재하는가? 이같은 질문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은 우리가 아직 케인스와 하이에크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두 주인공은 물론 이들에게 영향을 미쳤거나 이들의 후예 경제학자로 등장하는 이들의 얘기도 흥미롭다. 케인스는 케임브리지 대학 중심의 영국 경제학파에 뿌리를 두고 있었고, 하이예크는 케임브리지를 누르고 발돋움하려던 런던 정경대학(LSE)교수로 임용됐다. 1931년 영국 학계에서 시작된 이들의 이론적 대결은 이후 각국 정부의 경제 정책의 토대로 발전했으며 이 과정에서 제임스 토빈, 갤브레이스, 밀턴 프리드먼 등 수많은 20세기 경제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영국 언론인인 저자는 ‘타임스(Times)’창간 편집인과 ‘뉴욕 선’ 수석 편집자 등을 지냈다. 현재 로이터 등 다수 언론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로널드 레이건, 마거릿 대처 등 정치인과 학자들에 대한 책을 주로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