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말 만기가 돌아오는 정기예금 5000만원을 찾으면서 쥐꼬리만 한 금리에 다시 한 번 상처를 입은 직장인 고금리(가명)씨는 앞으로 중위험·중수익 상품에 투자하리라 마음먹었다.

원금을 2000만원과 3000만원으로 쪼개 묻어둘 만한 펀드 2~3개를 물색했고, 요즘 잘나간다는 선진국 대표 종목에 투자하는 펀드 1개, 국내 롱숏펀드 1개를 점찍었다.

문제는 고질적 '귀차니즘(귀찮은 것은 하지 않는다는 신조어)'의 발동. 빠듯한 점심시간을 이용해 펀드를 파는 증권사나 은행까지 가는 게 귀찮고 부담스러운 데다, 길고 지루하게 이어질 상담과 각종 서류 서명 과정을 거칠 생각을 하니 한숨부터 나왔다. 돈 넣을 상품 특성은 웬만큼 숙지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고금리씨에게 다음달부터 온라인에서 펀드에 가입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긴다.

은행이나 증권사 창구에서 파는 펀드 상품 그대로 온라인에서 살 수 있고, 게다가 판매 수수료는 오프라인의 3분의 1 수준인 '펀드수퍼마켓(www.fundonline.co.kr)'이 문을 연다.

펀드 큰 장 설까… 펀드수퍼마켓 4월 개장

펀드수퍼마켓은 국내 자산운용사 47곳이 218억원을 공동 출자해 만든 '펀드온라인코리아'가 만드는 온라인 펀드 시장이다. 펀드 1000여종을 모아놓은 말 그대로 수퍼마켓이다. 시중에서 파는 펀드 가운데 사모펀드나 설정액 100억원 이하인 펀드, 부동산·특별자산 펀드 등을 제외한 웬만한 펀드는 망라돼 있다.

지난해 자산운용사들이 합심해 온라인 펀드 시장을 만들기로 의기투합한 것은 지긋지긋한 시장 침체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011년 말 104조원을 헤아리던 국내외 주식형펀드 설정액은 2012년 94조원, 지난해엔 85조원 수준까지 줄었다.

올해도 주가지수가 1800에서 2000포인트 사이를 오가는 지루한 박스권 장세가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투자자들의 흥미를 끌 만한 뾰족한 방법을 찾아낸 것이 펀드수퍼마켓이다.

차문현 펀드온라인코리아 대표는 "모든 운용사의 펀드를 한 번에 쇼핑할 수 있다는 점, 투자자별로 맞춤식으로 펀드를 추천받고 검색할 수 있다는 점, 무엇보다 시간과 장소 제약 없이 온라인에서 자산 관리를 할 수 있다는 장점에 투자자들의 구미가 당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보수는 오프라인의 3분의 1에 불과… 가입 3년 후엔 면제

온라인 펀드수퍼마켓의 장점 가운데 하나는 싼 수수료다. 증권사 등에서 펀드에 가입할 때는 판매 수수료를 내고 매년 일정 비율로 운용·판매 보수를 내야 한다.

펀드수퍼마켓은 다르다. 펀드를 살 땐 판매 수수료를 내지 않는다. 펀드를 환매할 때 수수료를 최대 0.15% 낸다. 3년 이상 보유하고 나서 환매할 때는 이 수수료도 면제받을 수 있다. 장기 투자 유도 장치다. 또, 판매 보수는 순자산액 기준으로 ▲주식형 0.35% ▲주식혼합형 0.35% ▲채권혼합형 0.25% ▲채권형 0.15% ▲파생상품 0.3% ▲재간접상품 0.25% 수준(모두 평균치)이다. 증권사 등의 평균 보수(1%)에 비해 3분의 1에 그친다.

증권사 등의 온라인 펀드 상품에 비해서도 2분의 1에 불과하다. 판매 보수를 대폭 깎을 수 있었던 것은 자문 서비스 관련 비용이나 영업점 계좌 관리 비용 등이 필요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펀드수퍼마켓에서 펀드를 골라 가입하기 위해서는 제휴 금융기관(우체국·우리은행)을 찾아 실명 확인을 거친 뒤 신규 계좌를 만들어야 한다. 금융실명제법상 온라인에서 계좌 개설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최소한의 수고다. 이후 사이트에 접속해 ID와 비밀번호를 만들고, 약관과 개인 신용 정보 등에 동의하고 공인인증서를 발급받으면 펀드 거래를 할 수 있다. 키움증권·신한금융투자·현대증권·하나대투증권 등은 개별적으로 온라인 펀드 사이트를 운영할 예정이다.

비슷비슷한 이름의 펀드 1000여종 난립… 투자자 혼란 키울라

펀드수퍼마켓에서는 펀드 1000여종의 1·3년 수익률과 수수료, 판매액, 평가 등급, 조회 수 등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다.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 투자자에게 이로울 것 같지만, 내용은 비슷한데 브랜드 이름만 다양한 상품이 난립해 투자자들이 더 골치를 앓을 가능성도 있다. 특히 오프라인 매장에서 전달받는 것처럼 투자 주의 사항을 상세하게 전달받지 못한다는 점 때문에 투자자 보호 취약 문제도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점을 보완하기 위한 장치의 하나로 '금융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한 외국계 자산운용사 임원은 "인터넷 주식 거래가 급속도로 정착된 만큼, 인터넷 펀드 거래 역시 성장 잠재력이 크다고 본다"면서 "하지만 일부 인기 펀드에만 투자자들의 관심이 극심하게 쏠리면, 독립 판매 채널을 확보하기 어려웠던 독립 운용사와 고객의 접점을 넓혀주겠다는 당초 오픈마켓 설립 취지가 퇴색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