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이동통신 주도권이 중국으로 이동하고 있다. 19세기 말 전화기가 처음 발명된 이후 100년 넘게 이어진 유럽·미국 중심의 통신 패권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27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막을 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obile World Congress) 2014'에선 중국식(式) 통신 기술인 'LTE-TDD'를 주도하는 차이나모바일, 세계 통신 장비 1~2위 업체로 떠오른 화웨이, 미국 모토롤라를 인수한 레노버 등 중국 업체들의 부상이 두드러졌다.

'MWC'는 전 세계 이동통신 업체 모임인 GSMA가 매년 주최하는 행사로 통신산업을 관통하는 화두(話頭)를 볼 수 있는 자리다. 1700개 이상의 IT 기업이 참가한 전시회 현장에서 바라본 '화두 세 가지'를 짚어봤다.

세계 최대 모바일·통신 전시회인 ‘모바일월드콩그레스(Mobile World Congress) 2014’가 지난 27일(현지 시각)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폐막했다. ‘다음을 창조하라(Creating what’s next)’를 주제로 열린 이번 전시회에는 사상 최대 규모인 1700여개 업체가 참여했다. 전시회 첫날인 지난달 24일 관람객들이 삼성전자 부스에 전시된 갤럭시노트3을 살펴보고 있다.

이통 기술부터 스마트폰 제조까지…중국 패권 시대 오나

앞으로 1~2년 내 50조원 이상을 투자해 4세대 이동통신 'LTE-TDD'망(網) 구축에 나선 차이나모바일·차이나텔레콤·차이나유니콤 등 중국 이동통신 3사는 이동통신 기술 경쟁에서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가 아닌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위상이 바뀌었다.

차이나모바일의 리 유에(Li Yue) 사장은 MWC 전시회 중에 열린 'LTE 국제 서밋'에서 "올 연말까지 중국 340개 시에 50만개의 LTE-TDD 기지국을 건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차이나모바일의 힘은 7억명이 넘는 가입자 숫자. 차이나모바일은 중국에서 LTE-TDD용 스마트폰 1억대를 팔겠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이는 전 세계 휴대폰 제조사들에 좋은 LTE-TDD용 스마트폰을 개발하라는 가장 확실한 '압박 카드'였다. 중국이 움직이자 인도·러시아 등 신흥 국가들이 따라가며 현재 28개 이통사가 TDD 서비스에 나섰고, 40개의 이통사가 준비 중이다. 단숨에 우리나라를 비롯해 북미·유럽·일본이 쓰는 'LTE-FDD' 진영을 넘어설 기세다. 주로 선진국 시장에서 자리 잡은 'LTE-FDD'는 20개국 25개 이통사가 서비스하고 있다.

차세대 이동통신 기술인 5세대(5G) 분야에선 중국 화웨이가 에릭슨 등 유럽의 통신 장비 강자와 팽팽한 기술 선점 경쟁을 펼쳤다. 5G는 현재의 LTE보다 1000배 빠른 통신 기술로 2020년 구현될 것으로 예상된다. 화웨이는 5G용 통신 장비 시제품을 전시했다.

스마트폰 시장에선 올 초 모토로라를 인수한 레노버를 비롯해 화웨이·ZTE 등 중국 휴대폰 제조사의 기세가 만만치 않았다. 레노버의 제이디 하워드 부사장은 "목표는 세계 1위"라며 "레노버가 미국 IBM의 PC 부문을 인수한 뒤 급성장해 현재 PC 1위에 오른 것처럼 스마트폰에서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회엔 중소·중견업체까지 합쳐 100여개의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가 참여해 '인해전술'을 연상케 했다. MWC 전시장 '바르셀로나 피라 그란비아'의 홀3에 있는 삼성전자의 대형 부스 주변엔 화웨이·ZTE·레노버 등 중국 3인방이 위치해 삼성이 마치 중국 업체에 에워싸인 듯한 모습을 연출했다.

구글의 산다 피차이 수석부사장은 "중국 기업들의 스마트폰 기술력이 크게 개선됐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신종균 사장은 "중국 업체의 기술력을 평가절하해선 안 된다"며 "중국은 앞으로 세계시장에서 강한 모습으로 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타이젠·윈도·파이어폭스… 차기 모바일 운영체제(OS) 경쟁

구글(안드로이드)·애플(iOS)이 장악한 모바일 OS 시장에 '제3의 OS' 자리를 노린 도전이 이어졌다.

당초 가장 큰 주목을 받은 곳은 삼성전자와 인텔이 주도한 '타이젠(Tizen)'. 삼성전자가 '타이젠 스마트폰'을 선보이며 바람몰이를 시작할 것이란 기대가 컸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손목시계형 스마트 기기인 '삼성 기어2'에 타이젠을 탑재했으며 타이젠폰은 내놓지 않았다.

타이젠연합의 스기무라 료이치 의장은 "중국 바이두, 일본 소프트뱅크, 중국 ZTE 등 15개 통신·휴대폰 업체가 새롭게 연합에 합류했다"며 "올해부터 타이젠 스마트폰과 웨어러블 기기가 본격적으로 나온다"고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스마트폰 제조사와의 제휴 강화를 발표했다. MS는 삼성전자·노키아·HTC·화웨이 등 기존 4개 제휴사에 이어 올해 LG전자·레노버·ZTE·폭스콘 등 9개사가 추가로 윈도폰 진영에 합류해 윈도폰 신제품을 내놓는다고 밝혔다.

'제3의 OS' 후보로 급부상한 곳은 미국 비영리 재단인 모질라가 주도하는 파이어폭스(Firefox)다. 많은 스마트폰 제조사가 파이어폭스 OS를 탑재한 스마트폰을 내놓았다. 중국 ZTE는 '오픈C' 등 2종의 파이어폭스 신제품을 공개하고 상반기 15개 국가에서 판매한다고 밝혔다. ZTE는 파이어폭스를 탑재한 스마트폰을 25달러 수준의 저가로 내놓을 계획이다. 저가형 스마트폰 시장에서 파이어폭스 잠재력을 보여준 것이다. LG전자와 화웨이가 연내 파이어폭스 스마트폰을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올해는 사물인터넷 원년

시스코의 존 체임버스 회장은 MWC 기조연설에서 "10년 뒤엔 5000억개의 사물이 통신으로 연결된다"며 "사물과 사물을 센서로 연결해 소비자에게 새로운 가치를 주는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IoT)은 이미 우리 생활 가까이에 있다"고 말했다.

전시회에선 많은 사물인터넷 신제품이 공개됐다. 프랑스의 시티즌 사이언스(Cityzen Sciences)가 공개한 '인터넷과 연결된 운동복'이 대표적 사례다. 운동복에 작은 센서가 달려 있어 심장 박동수, 달리는 속도, 현재 위치 등 각종 정보를 측정해 스마트폰으로 전송한다. 감독은 스마트폰을 통해 선수의 연습 상황과 신체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생활용품 회사 P&G는 인터넷과 연결된 전동 칫솔을 선보였다. 전동 칫솔은 작동하면 적절한 칫솔질 시간 등을 스마트폰으로 알려준다. 치과 의사에 진단받아 치아 상태를 스마트폰에 입력하면 칫솔질을 할 때 어느 치아를 더 신경 써 닦아야 하는지도 스마트폰 화면에 보여준다.

행사를 주관한 GSMA는 "전 세계 428개 이동통신사가 187개 나라에서 사물인터넷의 전(前) 단계인 M2M(Machine to Machine·기계가 서로 통신하는 기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예컨대 전력 검침기가 스스로 전력 사용량을 점검해 전력 회사와 소비자에 전송하는 서비스가 실용화되는 등 많은 M2M 서비스가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