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유재일 기자

'우리 집에 빈방이 있는데, 누가 며칠이라도 돈 내고 와서 자면 좋겠네' '우리 집 주차장은 낮에 텅텅 비어 있는데, 누군가 싸게라도 빌려 썼으면….'

내가 이용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마냥 놀려두기엔 아까운 것들로 돈을 벌 순 없을까. 한낱 공상(空想)으로 치부됐던 일들이, 점차 현실이 되고 있다. 전 세계의 빈방 목록이 스마트폰에 죽 뜨고(에어비앤비), 주변의 빈 주차장을 검색해 싸게 이용(모두의주차장·쎌팍)할 수 있다. 가전(家電)·자전거와 같은 제품부터 사무실·화장실과 같은 공간, 음식, 경험·정보·지식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인터넷과 모바일을 타고 공유되면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과거엔 가족·친척·이웃·지인(知人) 정도가 무언가를 빌리고 빌려줄 수 있는 관계였지만, 디지털 플랫폼을 바탕으로 이 관계가 무한대로 넓어진 것이다. 한 마디로 '공유경제(sharing economy·키워드)'의 시대다.

IT가 만들어낸 '공유경제'… 자원 절약의 윈·윈 모델

미국 뉴욕주(州)의 빈방을 아프리카에 사는 사람이 빌려쓸 수 있게 만든 '공유경제'를 실현한 것은 바로 IT 기술의 힘이다. 나만 알고 있던 정보들이 온라인에 모여 하나의 큰 장(場)이 서면서, 누구나 손쉽게 남의 물품·서비스를 빌려 쓸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빌려주는 사람은 놀려뒀던 자원으로 돈을 벌고, 빌리는 사람은 저렴하게 서비스를 이용하고, 사회 전체적으로는 자원이 절약되는 '윈윈(win-win)' 모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대표적 사례는 전 세계의 빈집(방)을 여행객에게 빌려주고 돈을 받는 '에어비앤비(Airbnb)'. 장기 출장이나 휴가를 갈 때 통째로 집을 내어주거나, 방 한 칸을 빌려주는 경우도 있다. 기존 대여업과 차이는 모텔, 비디오 가게, 렌터카 회사처럼 한 사람이 다량으로 보유한 재화(財貨)를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다수(多數)의 사람들이 공동으로 제공하는 자원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이다. 전 세계 여행객에게 무료로 빈방을 제공하는 '카우치서핑(couchsurfing)'도 여기에 해당한다. 한국에도 이를 표방한 '코자자'와 같은 서비스가 생겼지만, 아직은 전문 게스트하우스 관련 정보가 주로 올라오고 있다.

시내 곳곳에 배치된 자동차를 시간 단위로 빌려 쓸 수 있는 서비스인 집카(Zipcar). 월·연회비를 낸 사용자는 바로 주차장에서 차를 골라 탈 수 있다.
여행객들이 세계 곳곳의 빈 집(방)을 빌려 쓸 수 있도록 한 서비스 에어비앤비(airbnb). 에어비앤비는 아침식사(breakfast)와 침대(bed)를 공유한다는 뜻이다.

공유경제는 통상 '한 번 생산된 제품을 여러 사람이 공유해서 쓰는 협력소비의 경제'라고 해석된다. 그렇지만 기존 대여업과 유사한 부분도 많다. 미국의 '집카(Zipcar)'는 시내 곳곳에 차량을 배치해놓고, 월·연회비를 낸 가입자들이 회원카드를 갖다대면 '철컥' 하고 문이 열려 시간 단위로 차를 빌려 쓸 수 있다. 한국에서도 LG CNS의 자회사 에버온 등이 전기차를 비슷한 형태로 대여해주고 있다. 한 대의 차를 여럿이 공유한다는 점에선 비슷하지만, 특정 사업자가 대여를 목적으로 다량의 제품을 구매해 계획적으로 빌려준다는 점은 신종 렌터카업에 가깝다.

국내에선 아직 걸음마 단계… 2012년 '공유 서울' 선언

세계 공유경제의 규모는 작년 기준 51억달러 수준으로, 매년 80% 이상 성장하고 있다. 집·방·자동차·음식·지식 등을 넘어 최근엔 비어 있는 화장실을 공유하는 '에어피앤피(airpnp)'란 서비스까지 등장했다. 집주인은 비어 있는 화장실을 공유하고, 용무가 급한 사람은 스마트폰 앱으로 주위의 깨끗한 화장실을 찾아 이용할 수 있다. 무료도 있고 톰 크루즈·니컬러스 케이지 같은 톱스타가 이용했다는 한 호텔의 화장실은 10달러를 받기도 한다. 북미·유럽을 중심으로 현재 400여곳의 집주인이 화장실 개방에 동참했다.

국내에선 아직 시작 단계다. 기업들보다는 지자체가 오히려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서울시는 2012년 '공유서울'을 선언하고, 지난해부터 공유단체·기업을 선정해 사업비를 지원하고 있다. 부산시도 '공유경제 생활화'를 위한 다양한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국내에서 공유사업을 시작한 업체들의 면면은 다양하다. 비어 있는 주차장을 공유하는 모두의 주차장, 월 이용료 7만3000원을 내면 서울 시내 빈 독서실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공유독서실, 잘 입지 않는 정장을 기증받아 청년 구직자에게 면접용으로 저렴하게 빌려주는 열린옷장, 집에서 잘 쓰지 않는 악기 대여를 중개하는 우리울림 등 다양한 것이 '공유'란 이름 아래 사업으로 펼쳐지고 있다.

공유경제의 양면… "소비 위축"·"부양 효과" 양론

공유경제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차나 악기를 사지 않고 빌려 쓰는 문화가 자리 잡으면 소비가 위축되고 일자리도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카셰어링 1대가 승용차 13대를 대체한다는 분석도 있다.

반론도 있다. 에어비앤비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공유 형태로 방을 빌린 자사(自社)의 고객들이 일반 관광객보다 평균 2.3배의 돈을 더 쓰고, 2.4배 더 오래 머물렀다고 밝혔다. 현지인처럼 살아 보기를 원하는 에어비앤비 고객들이 바르셀로나에서만 연간 1억7500만달러(약 1800억원)의 경기 부양 효과를 일으켰다는 분석이다.

법·제도적인 걸림돌 역시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스마트폰 앱으로 고급 승용차와 손님을 연결해주는 '우버(Uber)'는 사업자 등록 없이 불법 택시 영업을 한다는 논란에 휩싸여 있다. 소유권과 접근권, 이용권이 뒤섞이다 보니 과세를 비롯해 법적 책임을 따질 때도 혼란이 빚어진다는 지적이다. 기존 사업자들의 반발도 커지고 있다. 우버는 택시업계, 에어비앤비는 지역 숙박업소, 차량공유 서비스는 렌터카 업체의 시장을 갉아먹는다는 불만이 나온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인식이 점차 '소유'에서 '대여'로 바뀌어 가는 것은 큰 변화다. 과거엔 음악을 테이프나 CD 하다못해 MP3 파일로라도 소유하려는 경향이 강했지만, 지금은 실시간으로 접속해서 음악을 듣는 스트리밍(streaming) 서비스가 대세가 된 것처럼 소유의 개념이 점차 바뀌어 가고 있다. '1인 가구'의 확대도 이 같은 흐름을 가속화할 것이란 전망이다. 집집마다 꼭 필요하지만 자주 쓰지 않는 공구(工具)나 자전거, 가전제품 등을 여럿이 공유하는 문화가 자리 잡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공유경제 sharing economy

물건이나 공간·지식·서비스 등을 인터넷·모바일과 같은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여럿이 공유해서 쓰는 협력 소비의 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