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의 도착 시간을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애플리케이션(앱)의 서비스가 일제히 중단됐다. 서울시와 철도사업자들이 지하철 도착 시간 정보에 대한 재산권을 주장하며 사용 중단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국민 편의를 위해 공공데이터를 개방하겠다던 현 정부의 국정 운영 방침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 사유 재산 주장하는 서울시… 업체들은 공공 정보는 개방돼야한다며 맞불

12일 서울시와 업계 등에 따르면 서울시는 지난 1월 말 민간 사업자 6명에게 지하철 앱의 실시간 도착 정보 서비스를 중단하라고 통보했다. 이들의 서비스가 불법으로 취득한 정보를 이용해 제공된다는 이유에서다. 다운로드 수 상위권을 유지하는 앱 가운데 실시간 도착 정보를 제공하는 지하철 정보 앱들이 대상이 됐다.

서울시는 서비스를 중단하지 않으면 철도사업자들이 법적 제재를 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현재 ‘지하철종결자’, ‘지하철내비게이션’, ‘포켓철’, ‘하철이’ 등 서울시로부터 통보를 받은 대부분의 지하철 정보 앱 개발자들은 실시간 도착 정보 서비스를 중단한 상태다.

서울시는 지난 1월 23일 지하철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한 민간 개발자들에게 실시간 도착 정보 서비스를 중지하라는 내용의 메일을 보냈다. 사진은 메일의 전문.

서울시가 이들에게 서비스 중단을 요구한 것은 이들 업체들이 이용한 서울시 교통정보센터의 정보가 코레일과 서울메트로, 도시철도공사, 메트로9 등 철도사업자들의 사유 재산이라는 이유에서다. 이 정보를 이용하려면 이들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것. 서울시는 철도 사업자와 협약을 맺고 운행 현황을 실시간으로 받아 교통정보센터를 운영하고 있고, 정보의 관리 책임을 지고 있다.

서울시 도로교통본부 교통정보센터 관계자는 “철도 관련 정보는 공공 정보로 볼 수 없다”며 “이들 정보의 재산권은 운영권자인 철도사업자에게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앱 개발업체들은 이런 주장이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있다. 공공기관의 홈페이지에 이미 나와 있는 정보가 어떻게 사유 재산이라고 주장할만한 정보냐는 것이다. 포켓철 개발자인 심형용(37)씨는 “민간 기업의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정보도 얼마든지 가공해서 쓰는 세상인데 공공기관의 홈페이지에 있는 내용을 국민이 쓰지 못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심씨는 “비영리 목적으로 앱을 운영하는 개발자들에게까지 공공 데이터를 쓰지 말라는 건 지나친 규제”라고 주장했다.

서울시 교통정보센터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열차의 실시간 도착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 공공정보 개방한다는 정부와는 다른 입장인 서울시…4년 전 공공데이터 개방 논란과 비슷

하지만 서울시의 이러한 주장이 현 정부의 국정 운영 기조인 ‘정부 3.0 정보공개’ 방침과 배치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래창조과학부의 공공데이터 정책에 따르면 ‘① 공공기관이 이용자에게 정보를 재활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고 ② 제공받은 정보를 영리·비영리적으로 이용할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나와 있다.

정부는 공공데이터를 민간이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장려하고 있다. 사진은 미래창조과학부 공공데이터개방안내 홈페이지를 캡처한 화면이다.


정부는 '공공데이터포털'을 만들어 민간이 공공정보를 활용하도록 장려하고 있다. 민간이 '오픈 API'를 신청하면 공공정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게 정부 방침이다. 오픈 API는 외부의 개발자들이 프로그래밍을 하는 과정에서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내부 데이터를 공개하는 것을 말한다. 구글맵이 대표적인 예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에서 지도를 검색할 경우 구글맵이 표시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구글에서 지원하는 구글맵 오픈 API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시와 철도사업자들은 이를 거부했다.

취재가 계속되자 서울시 관계자는 “오픈 API를 신청하면 지하철 관련 정보를 사용할 수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앱 개발자들은 “공개해주겠다는 정보는 기존에 나와 있는 열차 시간표가 대부분”이라며 “지하철 실시간 도착 정보에 기반이 되는 것들은 오픈 API를 통해 얻을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 미래부 공공데이터포털에 나와있는 지하철 관련 오픈 API 중 실시간 도착 정보는 공개되지 않은 상태다.

이런 공공데이터 개방에 대한 논란은 2010년에도 있었다. 당시 고등학생이 개발한 수도권 버스 도착 정보를 알려주는 앱 ‘서울버스’가 인기를 얻자 서울·경기·인천 교통정보 담당자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공공 자산을 무단 사용하고 있다며 경기도가 가장 먼저 정보 접속을 차단했다. 이후 도청에 항의가 잇따르자 도지사의 지시로 접속이 재개됐다. 공공 정보 사용에 대한 논란이 4년 후 재개된 셈이다.

일각에서는 서울시와 철도업체들의 이런 행태가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윤영중 도시교통연대 사무총장은 “공공데이터가 개방되는 추세에 맞지 않은 구시대적인 발상이다”며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앱보다 민간의 앱이 사용하기 편리하다면 시민의 편의를 위해 공공기관이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