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디스·피치 등 국제 신용평가사가 국내 간판 기업의 신용등급을 줄줄이 하향조정하고 있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중국 기업과의 경쟁 심화와 소비 침체에 따른 수익성 악화, 실제 매출 및 이익 감소 등이다. 이미 LG전자·롯데쇼핑·포스코·GS칼텍스·KT 등 국내 10위권 대기업 가운데 5곳의 주력 회사가 작년 말 이후 신용등급평가에서 한 단계식 하락했다.

신용평가사가 매기는 신용등급은 기업의 현재 경영 상황과 향후 전망을 반영한다. 최근 한국 기업들의 연이은 신용등급 추락은 지난해 어려움을 겪었던 한국 기업들이 올해도 만만찮은 한 해를 보낼 것으로 보는 시각이 해외에서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10대 그룹 주력 계열사 잇따른 신용등급 하락

무디스는 지난달 4일 KT의 신용등급을 A3에서 Baa1으로 한 단계 낮췄다. 여전히 투자적격 등급이긴 하지만, 위험이 거의 없음을 의미하는 A등급에서는 빠진 것이다. 이제 무디스가 A등급이라고 하는 한국 기업(공기업 제외)은 삼성전자·SK텔레콤·LG화학 3개사뿐이다.

무디스는 지난달 6일에는 LG전자의 신용등급을 Baa2에서 Baa3로 한 단계 낮췄다. Baa3 등급은 투자적격 10단계의 신용등급 중 최하위다. 무디스는 바로 다음 날인 7일에는 GS칼텍스의 신용등급도 Baa2에서 Baa3로 내렸다.

무디스는 이어 지난달 28일 롯데쇼핑의 신용등급은 Baa1에서 Baa2로 한 단계 떨어뜨렸다. 이어 이달 3일에는 에쓰오일의 신용등급과 관련, 등급은 Baa2로 유지했지만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내렸다. 다음엔 떨어뜨릴 수 있다는 뜻이다. 작년 말에는 피치가 포스코의 신용등급을 BBB+에서 BBB로 한 단계 떨어뜨렸다.

중국과의 경쟁 심화, 재무 구조 건전성 악화

무디스는 LG전자의 신용등급 하향 조정과 관련, "중국 스마트폰 제조 업체의 경쟁력 강화가 수익성에 부담을 줄 전망"이라고 밝혔다.

GS칼텍스의 강등에 대해서도 "중국 등의 생산 능력 확대로 힘든 영업 환경에 직면했다"고 했다. 중국 기업과 경쟁이 심해져 한국 기업의 고전(苦戰)이 예상된다는 얘기다. 포스코의 신용등급 하락에도 중국의 철강 과잉 공급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가 주원인으로 작용했다.

무디스는 롯데쇼핑 신용등급 강등의 배경으로 "부채 수준이 높고 이를 줄일 전망도 불확실하다"고 이유를 설명하면서 "국내 소비가 회복된다면 재무 구조가 개선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무디스는 KT에 대해서는 "무선(無線) 시장에서의 경쟁 과열, 유선 분야에서의 매출 감소 등을 고려할 때 KT가 수익성을 회복해 A3 등급 기준에 부합하기는 당분간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국내 소비 경기 침체가 수익성 악화에 불을 지피고 있다는 것이다.

무디스는 지난해 말 "원화 강세, 대내외의 급격한 경기 둔화 발생은 한국 기업의 신용 전망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재계 관계자는 "중국은 한국과 기술 격차를 좁히고 일본 기업은 살아나고 있는 현재의 글로벌 경쟁 구도를 국제 신용평가사들이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 기업의 잇따른 신용등급 하락이 한국 기업 전반에 대한 불확실성 확산으로 해석하는 것은 성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현종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정책연구실장은 "최근 신용등급이 떨어진 기업은 대내외 경영 환경이 유독 안 좋았던 곳들로, 한국 기업의 사업·재무적 안정성이 전반적으로 나빠졌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무디스는 작년 12월 삼성전자의 신용등급 전망을 상향 조정했고, S&P는 올 1월 현대자동차의 신용등급 전망을 올렸었다.

우리 기업들의 경영 전략이 글로벌 스탠더드를 100% 수용하지 못한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윤영환 서울신용평가정보 상무는 "국내 기업의 신용등급 하락은 국제 신용평가사의 평가 기준이 재무적 안정성을 과거보다 더 엄격하게 보는 쪽으로 바뀐 것과 관련이 있다"며 "우리 기업도 경영 전략을 이런 세계적 추세에 맞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