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60~70달러에 불과했다. 지금은 '손안의 PC'인 스마트폰을 한 대씩 들고 다닐 정도로 부유했지만, 전 국가 통틀어도 컴퓨터가 한 대가 없던 시절이었다.

그렇다면 한국의 컴퓨터 1호는 무엇일까. 6일 창립 40주년을 맞은 한국후지쯔는 보도자료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지난 1967년 국내 최초의 컴퓨터 'FACOM(파콤)222'를 한국생산성본부에 도입하며 국내에 진출한 한국후지쯔는 1974년 2월 6일 서울 종로 합동통신회관(현 국세청 건물) 에서 '화콤코리아주식회사'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다. 경찰 오토바이의 호위를 받으며 5대의 대형트럭에 나뉘어 한국생산성본부에 도입되었던 FACOM222의 도입은
당시 국내 컴퓨터 사업과 한국후지쯔 설립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국내 컴퓨터 인식에 대한 저변확대에 공헌했다."

이에 대해 한국IBM은 한국의 컴퓨터 1호가 'IBM 1401'이라고 주장한다. 1992년 발간한
'한국아이비엠 25년 발자취'를 보면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한국아이비엠 IBM 1401이 통계국에 설치하면서 최초로 한국에 컴퓨터를 도입했지만, 이 경우는 한국아이비엠 설립 이전에 IBM이 통계국과 계약을 맺어 도입한 것이었다."

한국IBM은 1967년 경제기획원 통계국에 IBM 1401을 설치했다. 당시 보도자료를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경제기획원 통계국에 설치된 IBM 전자계산기가 24일 낮 12시 30분부터 가동됐었다. 1초 동안 6만자나 읽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국생산성본부 전자계산소에 설치된 후지쯔 화콤222와 경제기획원 통계국에 설치된 IBM 1401 중 한국 컴퓨터 1호는 무엇일까.

실제로 인천항에 상륙한 시점을 보면, 파콤222가 1967년 3월 25일이고 IBM1401은 같은 해 4월 15일이다. 또 생산성본부와 통계국에서 컴퓨터가 가동된 시점도 파콤222가 6월 13일, IBM1401이 6월 24일이다.

그렇다면 한국IBM이 IBM1401이 한국 컴퓨터 1호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문서 상의 기록 때문이라고 한다. 당시 재무부장관 소관의 수입 컴퓨터 관련 서류를 보면 두 컴퓨터의 통관일자는 4월 25일의 'IBM 1401'이 5월 12일의 '파콤222'보다 이르다.

1967년 당시 한국생산성본부 전자계산소 소장이었던 이주용 KCC정보통신 회장은 회고록 '반세기 컴퓨터와 함께 한 나의 인생'(2007년 초판)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컴퓨터 1호기가 무엇이냐 하는 데는 미묘한 문제가 있었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IBM1401을 한국에 처음으로 도입된 컴퓨터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FACOM222가 IBM1401보다 한 달 보름여 일찍 들어왔고 실제 가동도 더 빨랐다. 그런데 민족감정 같은 것도 있고, 정부 쪽에서도 일본에서 먼저 들어왔다는 것을 그다지 달갑게 생각지 않았고 나 역시 IBM에서 근무한 적도 있어서 당시의 분위기에 동의했던 것이다. 그러나 역사가 뭐라고 말하든 간에 나는 말할 수 있다. 내가 대한민국 제1호 컴퓨터 도입의 신기원을 이루어냈으며 그 산증인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당시 컴퓨터 크기다. 후지쯔 파콤222이 인천항에서 하역될 때 총 무게만도 35톤이나 되었고 대형 트럭 5대가 실어날라야 할 정도였다. 생산성 본부는 25톤 기중기를 이용한 파콤222를 설치했다고 한다. 물론 성능은 오늘날 스마트폰과 비교하면 형편없었다. 파콤222의 경우 기억용량은 1만8000자에 불과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