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에 고향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마음을 설레게 한다. 한참 가지 못했던 고향이라면 오죽할까. 과학자들이 무려 6만년 만에 다시 고향을 찾은 사람을 찾아냈다. 아프리카에서 유럽과 아시아로 건너갔던 인류의 조상 중 한 무리가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남아프리카에 사는 그들 후손의 몸에서는 먼 옛날 유럽에 살았던 인류의 DNA는 물론이고, 현생 인류의 사촌으로 오래전 멸종한 네안데르탈인(人)의 흔적까지 발견됐다.

부시맨에게 남은 유럽인의 DNA

미국 하버드 의대의 데이비드 라이시(Reich) 교수 연구진은 지난 3일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 인터넷판에 "아프리카 남부에 사는 코이산(Khoisan) 부족의 DNA에서 남유럽인의 DNA와 일치하는 부분을 찾아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코이산 부족은 목축 생활을 하는 코이(Khoi)족과 수렵 채취 생활을 하는 산(San)족으로 나뉜다. 산족은 흔히 부시맨(Bushman)이라고 한다.

이번 연구 결과는 인류 진화에 대한 정설을 뒤집었다. 지금까지는 아프리카에 살았던 현생 인류의 조상이 6만5000년 전부터 이주를 시작해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고 알려졌다. 즉 아프리카에서 유럽과 아시아로 단선적인 이주 경로만 있었던 것. 연구진은 일방통행식의 인류 진화에 왕복 도로를 닦은 셈이다.

논문에 따르면 코이산 부족민 32명의 유전자 DNA 중 14%는 유라시아인 계통으로 드러났다. 이를 토대로 연구진은 6만5000년 전부터 아프리카를 떠나 중동에 정착한 인류의 조상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6만년이 훨씬 지나 지금으로부터 3000년 전 고향인 아프리카 에티오피아로 돌아왔음을 밝혀냈다. 에티오피아에 사는 코이산 부족 계열의 아프리카인들은 DNA 중 유라시아인 계통의 비율이 최대 50%까지 나타났다. 연구진은 에티오피아로 돌아온 호모 사피엔스가 다시 900~1800년 전 아프리카 남부로 가서 지금의 코이산 부족을 형성한 것으로 추정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그래픽 뉴스로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네안데르탈인의 흔적도 발견

아프리카인에게서는 유럽인뿐 아니라 멸종한 인류의 사촌이 남긴 흔적도 찾을 수 있다. 지난주 라이시 교수팀과 미 워싱턴대의 조슈아 아케이(Akey) 교수 연구진은 각각 '네이처'와 '사이언스'지에 "오늘날 인류의 유전자에 오래전 멸종한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섞여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네안데르탈인은 현생 인류와 같은 호모 속(屬)이지만 종(種)이 다른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Homo Neanderthalensis)'이다. 호모 사피엔스와 함께 아프리카에서 진화한 네안데르탈인은 40만년 전 유럽으로 건너가 정착했다가 3만년 전쯤 멸종했다.

일반적으로 이종교배(異種交配)로 태어난 생물은 노새처럼 생식력이 없다. 하지만 유전자 분석 결과는 인류의 직계 조상과 네안데르탈인 사이에 태어난 자손이 대를 이어갔음을 보여준다. 오늘날 인류의 유전자 중 2%는 네안데르탈인에게서 물려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두 원시 인류가 4만5000년 전쯤 지금의 중동 지역에서 다시 만나 종을 넘어선 사랑을 한 것으로 추정했다. 장 자크 아노 감독의 1981년 영화 '불을 찾아서'에서 생김새와 문화가 전혀 다른 수만 년 전 남녀가 금단(禁斷)의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연상케 한다. 오늘날 인류에게서 발견되는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는 피부와 모발에 관련된 것이 많았다. 유럽에 먼저 정착한 네안데르탈인이 호모 사피엔스에게 사랑의 징표로 추위를 견딜 수 있는 두꺼운 피부와 억센 모발을 넘겨준 셈이다.

유라시아로 건너간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로 돌아온 것이 확인됨에 따라 아프리카인에게도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전해졌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라이시 교수팀은 지난달 '네이처'에 아프리카 서부에 사는 요루바(Yoruba)인의 유전자에서 네안데르탈인의 흔적을 찾았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인류가 인종에 상관없이 명실상부한 한 가족임이 확인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