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로봇이 차려준 아침을 먹다가 아직 와이셔츠를 다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봇에게 부탁하자 바로 다림질을 시작한다. 출근을 하며 방 청소를 시키자 당장 로봇이 진공청소기를 집어 든다.

무슨 일이든 시키는 대로 하는 만능 로봇의 등장이 머지않았다. 로봇의 무기는 인터넷. 사람이 일을 시킬 때마다 인터넷에 접속해 다른 로봇이나 사람에게서 경험을 전수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로봇끼리 정보를 공유하는 서비스가 시작됐고, 미국에서는 인터넷 사용자들을 교사로 활용하는 로봇 교육서비스가 마련됐다. 로봇의 머리를 인터넷에서 빌려 쓰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로봇판 위키피디아 로보어스

지난 15일 네덜란드 에인트호번 공대에서는 '아미고(Amigo)'라는 인간형 로봇이 환자에게 우유를 가져다주는 시연회가 열렸다. 로봇이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내고 컵에 음료를 따르는 일은 새로운 게 아니다. 이날 시연회가 남달랐던 것은 로봇에게 그 환자가 있는 병실 상황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로봇은 개발자가 사전에 입력한 정보대로 움직인다.

에인트호번공대가 개발한 로봇 ‘아미고’가 과일을 고르고(사진 위) 환자를 돌보고 있다(사진 아래). 아미고는 사전에 입력된 정보가 없는 일을 할 때는 인터넷에 접속해 같은 일을 해본 다른 로봇의 경험을 전수받는다.

아미고가 생소한 병실에서 냉장고를 정확하게 찾아가 문을 열고 우유를 꺼낼 수 있었던 것은 휴지통처럼 생긴 '아비(Avi)'라는 또 다른 로봇 덕분이었다. 아비는 사전에 병실에 있는 침대와 탁자, 우유의 위치를 파악해 아미고에게 전달했다. 처음으로 로봇들이 서로 경험을 나누는 데 성공한 것이다.

아미고와 아비의 지식 공유는 지난주부터 서비스를 시작한 '로보어스(RoboEarth)' 덕분이다. 로보어스는 전 세계에 있는 로봇들이 인터넷에 각자의 정보를 올리고 공유하는 서비스다. 이를 활용하면 청소 로봇이 다음 날 요리 로봇으로 재탄생할 수도 있다. 아미고도 로보어스에 접속해 아비가 올려놓은 병실 정보를 내려받았다.

로보어스는 에인트호번공대와 스위스 연방공대, 독일 뮌헨공대, 슈투트가르트대, 스페인 사라고사대 등 유럽 5개 대학과 필립스사 컨소시엄이 유럽연합(EU)의 지원을 받아 2009년부터 개발했다. 개발진은 "인터넷에 접속해 정보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사용자들이 만들어가는 무료 백과사전 서비스인 위키피디아(wikipedia)와 비슷한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구글이 투자, 클라우드 로봇이 시초

로보어스의 기본 개념은 미국에서 나온 '클라우드(cloud)' 로봇과 비슷하다. 클라우드는 PC 대신 인터넷상의 저장 공간에 소프트웨어와 데이터를 저장해두고 필요할 때마다 접속해 사용하는 서비스를 말한다.

구글이 투자한 로봇 전문회사 윌로 개라지(Willow Garage)는 두 팔을 가진 클라우드 로봇 'PR2'를 개발해 전 세계 유명 대학 연구실 20여 군데에 무료로 제공했다. 윌로 개라지가 대학에 내건 조건은 PR2로 개발한 기술을 공유하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회사는 전 세계 클라우드 로봇의 중앙 컴퓨터 역할을 하겠다는 것.

독일 뮌헨대는 PR2에게 요리를 가르쳤고, 미국 버클리대의 PR2는 수건 개는 법을 배웠다. 이런 방법으로 로봇이 하는 일을 하나씩 늘려 가면 인터넷에 만능 로봇의 지능을 완성할 수 있다. 클라우드 로봇은 인터넷에서 머리를 빌려 쓰는 셈이어서 컴퓨터와 배터리 용량이 크지 않아도 된다.

크라우드 소싱 로봇 교육도 등장

미국 브라운대의 채드 젱킨스(Jen kins) 교수는 2012년 자원자들을 모아 윌로 개라지의 PR2 로봇에게 장난감 집 짓는 법을 가르치도록 했다. 로봇은 사람의 시범을 보고 질문을 하면서 작업을 따라 했다. 로봇은 작업을 100% 완수했다. 젱킨스 교수는 앞으로 인터넷 사용자들을 로봇 교육에 활용할 계획이다. 불특정 다수가 만드는 데이터로 인터넷에서 각종 서비스를 하는 '크라우드 소싱(crowd sourcing)' 방식이다. 즉 로봇이 처음 보는 컵을 보고 크라우드 소싱 사이트에 질문을 올리면 사용자들이 로봇에게 컵이 무엇인지, 어떻게 다루는지 시범을 보여주는 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