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세라고 해서 무조건 대물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이 2000년대 중후반까지 언론 인터뷰에서 여러 차례 반복해 강조한 말이다. 백과사전 외판원으로 시작해 재계 31위의 기업을 만든 그는 '무조건적인 부(富)의 승계는 없다'고 강조해 왔다. 하지만 2012년 법정관리에 들어간 후 최근 졸업을 앞둔 시점에서 상황은 이와 다르다. 웅진그룹이 조만간 법정관리를 졸업하면서 장남 형덕(37)씨, 차남 새봄(35)씨 두 아들이 경영 전면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윤 회장은 작년 12월 보유 주식을 모두 아들들에게 매각했다. 웅진그룹은 "윤 회장이 급전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업계에서는 "결국 아직 마흔이 안 된 아들들에게 힘을 실어준 것"이라고 분석한다.

윤 회장 지분을 인수하면서 직급이 모두 부장인 두 아들은 25%의 지분을 가진 웅진홀딩스의 최대 주주가 됐다. 이들은 2009년 2월까지는 웅진홀딩스 주식이 한 주도 없었지만 조금씩 주식을 취득한 것이다.

윤 회장이 오는 3월로 예정된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큰 것도 이유다. 윤 회장은 사기성 기업어음(CP) 발행과 횡령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서울중앙지법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윤 회장은 지난 13일 첫 공판에서 사기성 CP 발행건 등의 혐의들은 부인했지만 렉스필드컨트리클럽의 법인 자금 12억5000만원을 횡령한 혐의 등은 인정했다. 형량이 적든 많든 유죄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윤 회장이 경영 전면으로 나서기는 부담스럽다. 그런데도 웅진홀딩스 관계자는 "윤 회장이 완전히 경영권에서 손을 뗄 수는 없다"고 말했다. 결국 두 아들이 전면에 나서고 윤 회장이 뒤에 있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장남 형덕씨는 2008년 9월 웅진코웨이 영업본부에 대리로 입사해 2009년 과장, 2010년 차장, 2011년 2월 부장으로 1년에 한 번씩 초고속 승진을 했다. 웅진코웨이가 MBK파트너스에 매각되면서 웅진씽크빅으로 옮겨 현재 경영전략실장으로 있다. 오는 3월 초에 있을 주주총회에서 등기이사로 선임될 예정이다.

차남 새봄씨는 2009년 6월 웅진씽크빅 기획팀에 입사한 이후 전략기획팀에서 근무하다 2010년 9월 웅진케미칼 과장으로 자리를 옮겨 현재는 경영기획실장(부장)으로 재직 중이다. 도레이첨단소재에 매각되기로 결정돼 있는 웅진케미칼의 매각 절차가 끝나면 웅진홀딩스나 웅진씽크빅으로 자리를 옮길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웅진그룹은 웅진코웨이·웅진식품·웅진케미칼 등 주요 계열사를 매각했고 웅진홀딩스·웅진씽크빅(교육·출판)·웅진에너지(태양광) 등의 회사만 갖고 있다.

웅진그룹 관계자는 "무조건 물려주지 않는다는 윤 회장의 말은 능력이 있으면 물려줄 수도 있다는 뜻"이라며 "지금은 능력을 검증하는 과정일 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