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부상했던 '안전 자산'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경계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안전 자산은 말 그대로 경제 위기 때 상대적으로 수익을 내는 투자 피난처(safe haven)를 의미한다. 다만 그 가치는 상대적이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달라지곤 한다.

전문가들은 미국·유럽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 경제가 살아나면서 안전 자산의 매력이 떨어졌다고 지적한다. 경기 회복에 힘입어 증시가 오르고 부동산 가격이 반등하면서 굳이 안전 자산이 아니더라도 투자할 곳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영원한 안전 자산은 없다

'영원한 안전 자산'으로 불리면서 한동안 귀한 대접을 받았던 금은 요새 체면을 구겼다.

금값은 금융 위기 직후인 2009년과 2010년 각각 24.0%, 29.7% 올랐고, 미국 신용등급 강등과 유럽 재정 위기의 그림자가 드리운 2011년에는 10.7% 상승했다.

그래픽=오어진 기자

금의 상승세는 2012년부터 조금씩 꺾이더니, 지난해 된서리를 맞았다. 작년 한 해 동안 금값은 28.3% 하락했다. 작년 초 온스당 1600달러대였던 금값은 현재 1200달러대 초반까지 내린 상태다.

미국이 양적 완화(채권을 매입하는 등의 방법으로 시중에 돈을 푸는 것)를 축소하면서 미 달러화가 강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금값의 발목을 잡았다. 보통 달러화와 금 가격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지난해 엔화 가치 20% 가까이 하락

세계경제가 휘청할 때마다 가치가 올랐던 일본 엔화는 어떨까.

미 달러화 대비 엔화 환율은 미국발 전 세계 금융 위기의 싹이 트기 시작한 2007년 말부터 하락했다(엔화 가치 상승). 일본 엔화는 2008년 한 해 동안 미 달러화 대비 가치가 23.3% 상승했고, 2010년과 2011년에도 꾸준히 가치가 올랐다.

그러나 지난 2012년부터 일본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한 돈 풀기에 나서면서 엔화 가치는 계속 내려가고 있다. 미 달러화 대비 엔화 가치는 지난 2012년과 2013년에 각각 11.3%, 17.6% 떨어졌다.

올해 4월 일본이 소비세 인상 시점을 전후로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일본 정부가 적극적으로 돈을 풀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엔화 약세가 더 진행될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美 국채 가격 하락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오르던 미국 국채 가격도 작년부터 하락세로 돌아섰다.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2010년과 2011년, 2012년 각각54bp(1bp=0.01%), 142bp, 12bp 떨어졌지만(국채 금리가 떨어지면 가격은 상승), 지난해에는 127bp가 올랐다(가격은 하락).

미 달러화는 상대적으로 움직임이 덜하다. 유로와 엔(일본), 파운드(영국), 캐나다달러, 크로네(스웨덴), 프랑(스위스) 등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집계하는 달러 인덱스는 금융 위기 직후인 2009년에 오히려 4.2% 내렸고, 2010년과 2011년에 각각 1.5% 올랐다. 2012년에는 0.5% 내렸다가 지난해에는 0.3% 오르는 등 움직임이 크지 않다.

스위스프랑은 2008년과 2009년, 2010년에 미 달러화 대비 각각 6.1%, 3.2%, 10.7% 오르며 높은 수익을 올렸다. 지난 2011년에는 0.3% 하락했고, 2012년, 2013년에는 2.5%씩 오르는 데 그쳤다.

경기 회복에 안전 자산 인기 하락

안전 자산 가격 하락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선진국 경기 회복을 꼽는다.미국·유럽 등 선진국 경제가 살아나면서 세계경제 역시 같이 좋아진다는 것. 결과적으로 기업 주가가 오르고 부동산 가격도 뛰는 등 다양한 자산 가격이 상승할 가능성은 커진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금리가 낮은 미국 국채 같은 안전 자산에 집착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게다가 미국 경기 반등으로 미국의 양적 완화 축소 및 종료 시기가 앞당겨질 수 있다. 미 달러화 강세를 점치는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 경우 미 달러화로 표시되는 금값은 떨어지고, 일본 엔화와 스위스프랑의 상대적 가치도 내려가게 된다.

금융 위기 직후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열심히 돈을 풀어 경기 부양에 나섰는데, 이로 인해 안전 자산 가격이 지나치게 올랐다는 지적도 있다. 경제가 정상 궤도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안전 자산 가격도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