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주력 사업인 스마트폰 시장 성장세가 무뎌지면서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하는 것이 한국 산업계의 주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분기당 7조원 이익을 내온 스마트폰 사업이 더 이상 성장세를 이어가는 것이 어렵고, 이것이 삼성전자 전체의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경우 한국 경제에 미칠 부정적 영향이 작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그동안 삼성전자와 같은 회사를 2개, 3개 만들자는 구호가 있었다. 하지만 삼성전자와 같은 거대 기업을 만드는 일은 만만치 않다. 수조원대 거대 자본을 투입하고 한 분야를 석권해야 가능한 일이다. 오히려 스마트폰이란 거대한 시장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해당 분야에서 세계 1·2위를 다투는 신사업 분야 기업을 대거 육성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다. '100개의 작은 삼성전자'라고 할 개미군단을 만들어야 전체 기업의 생태계도 건강하고 지속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2차전지 산업 급성장

맹아(萌芽)는 각 분야에서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2차전지(충전해 사용하는 배터리)는 IT 기기 시장이 커지고 자동차 산업이 친환경차 중심으로 급속히 패러다임을 전환하면서 한국이 강한 경쟁력을 보유한 분야다. IT 기기 2차전지 분야에서 2011년 한국이 시장점유율 40.7%로 일본(35.6%)을 처음으로 누르고 세계 1위에 올랐다. 20년 동안 일본이 지켜왔던 2차전지 시장 판도가 바뀐 것이다. 지난해엔 42.9%와 27.0%로 한·일 간 격차가 더 커졌다. 이 분야는 D램반도체·TV·LCD에 이어 최근에 일본을 추월한 품목이다. 이미 10대 그룹 중 삼성·LG·한화·포스코·롯데·GS 등 7개 그룹이 2차전지 완제품과 소재 부품 시장에 진출해 적극적으로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LG화학·삼성SDI 등은 휴대폰·노트북용 소형 배터리에 이어 향후 본격적으로 시장이 확대될 전기차용 배터리 분야에서도 일본의 생산량을 앞설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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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ED(유기발광다이오드)나 플렉시블 디스플레이(휘어지는 화면) 관련 신산업도 한국이 강점을 발휘하는 분야다. OLED 시장에서 한국의 점유율은 90%가 넘는다. 바이오제약·의료 기기 등은 삼성·SK·LG 등이 장기적인 투자를 벌이며 눈독을 들이는 분야다. 서울대 공대 이정동 교수는 "우리 산업은 과거 개발 시대의 '캐치업(catch up·남을 따라가는)' 체제를 아직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며 "지금은 개발 시대 방식에서 벗어나 중소기업도 할 수 있는 새로운 산업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신성장 산업에 대한 투자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많다. 태양광 같은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는 중국 때문에 세계 1·2위로 나가는 데 실패했다. 최근까지 이어진 태양광 산업 구조조정으로 웅진·KCC·현대중공업 등이 조(兆) 단위 손해를 봤다.

반도체·LCD(액정표시장치)·휴대폰·자동차·석유화학·조선·철강 등 국내 주요 수출 품목에서 지난 10년간 서로 순위 바뀜만 있었을 뿐 새로 등장한 품목을 찾기 어려운 실정을 들어, 기존 산업의 고부가가치화가 급선무라고 지적하는 전문가도 많다. 완전히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것보다는 이 품목들과 SW(소프트웨어) 산업을 연결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게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자동차 부품, 석유화학 소재 등 선진국형 부품·소재 분야에 기회가 많다고 말한다.

정부도 재작년 나노 패턴 필름, 스마트 시트와 같은 전략적 핵심 소재와 소프트웨어 융합형 부품 20개 과제를 선정하고 투자를 진행 중이다. 기술 개발이 완료되면 2020년까지 이런 부품·소재에서 나오는 매출은 모두 10조원, 신규 고용은 2만2000여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기술벤처도 개미군단 전략의 軸

다양한 분야에서 벤처기업을 육성하는 것도 병행해야 한다. 핀란드 GDP(국내총생산)의 4분의 1을 차지하면서 '핀란드=노키아'라는 공식을 만들었던 노키아는 2008년 이후 스마트폰 시장의 주도권을 놓치면서 급격하게 내리막길을 걸었다. 노키아의 몰락은 핀란드 경제의 붕괴로 여겨졌지만, 핀란드는 새로운 길을 찾아냈다. 노키아의 본사가 있어 '노키아의 도시'로 불렸던 에스푸는 이제 '유럽의 실리콘밸리'로 불린다.

주현수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원은 "삼성전자가 계속 글로벌 1등 기업 자리를 지키는 가운데 벤처기업들의 성공이 이어져야 한국 경제가 더욱 단단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