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저녁 7시 서울 지하철 1호선 시청역사 내 10평(33㎡) 남짓한 작은 빵집 앞에 10여명 이상이 줄을 서 있었다. 가게의 주 메뉴는 단팥빵. 손바닥만 한 2~3㎝ 두께의 두툼한 빵을 쪼개면 곱게 다져진 팥앙금이 실하게 들어있다. 천연 발효종을 이용해 유기농 밀가루로 만들었다는 빵은 촉촉한 카스텔라 같다. 가격은 1600원으로 싼 편은 아니지만, 빵을 빚고 구워 나오니 그대로 팔려 나간다.

지난달 16일 매장 문을 연 '누이애(愛) 단팥빵'. 20일 남짓한 기간에 이미 시청역 인근 직장인들 사이에선 '꼭 한번 먹어봐야 하는 빵집'으로 소문이 났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도 이 빵집 이름을 치면 맛집이라는 검색 결과가 속속 나타난다.

서울 지하철 1호선 시청역사에 있는 ‘누이애 단팥빵’ 주인 김길수(43)씨가 조리실에서 유기농 밀가루 반죽으로 빵을 만들고 있다. 김씨는 “값은 좀 비싸더라도 좋은 재료로 정직하게 빵을 만들면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

"외환 위기 때보다 더 장사가 안된다"고 하소연하는 자영업자가 적지 않다. 그런데 문 연 지 한 달도 안 된 이 단팥빵집은 빵이 없어서 못 판다. 대형 오븐에서 하루 150판 이상 빵을 굽지만 저녁 8시 30분 문을 닫을 때면 빵은 하나도 남지 않는다. 시청역 근처 직장인 김지연(34)씨는 "요즘 이틀에 한 번꼴로 이 가게에 들러 단팥빵을 산다"며 "빵 가격이 다소 비싸지만 맛도 좋고, 유기농 밀가루로 만들어서 그런지 먹어도 속이 불편하지 않아 좋다"고 말했다.

단팥빵집 주인은 20년 차 제빵사 김길수(43)씨. 온종일 서서 빵을 빚으면서도 힘든 내색 없이 손님에게 인사를 건네고 주문까지 받는다. 김씨는 일본 도쿄제과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영등포에 있는 한국조리사관직업전문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제과·제빵 전문가다. "제과·제빵을 시작한 지 20년 만에 처음으로 내 소유 가게를 열었어요."

그는 제주 출신이다. 제주 세화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제주칼호텔, 제주신라 등의 호텔에서 일했다. 원래 전공은 제빵과 무관한 관광호텔경영학(제주전문대, 현 제주산업정보대). 하지만 군 제대 후 다시 호텔을 찾았을 땐 함께 일하던 선배가 다 떠나간 뒤였다. "한 선배가 '제과·제빵에 미래가 있으니 호텔로 들어오지 말고 빵을 배워라'고 권했어요. 그 말을 듣고 큰 빵집으로 가서 빵을 한참 들여다보는데 갑자기 가슴이 설레면서 이걸 제대로 공부하기로 결심했어요."

그 길로 서울로 올라와 1994년 서울 대방동의 제과 학교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빵을 배운 후 서울의 나폴레옹제과에서 2년간 일했다. "일을 하면서 제대로 된 빵을 만들려면 전문적 제빵 지식이 더 필요하다는 걸 절실히 느꼈죠. 그래서 IMF 외환 위기로 한창 어려울 때였지만 1998년 과감하게 일본 도쿄제과학교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의 단팥빵이 잘 팔리는 이유를 묻자 "좋은 재료로 건강한 빵을 만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빵은 발효가 생명이고, 발효된 빵은 살아있어요. 다소 비싸더라도 좋은 재료를 이용해 먹는 사람이 만족할 만한 품질 높은 빵을 만들면 아무리 경기가 어렵더라도 손님들은 알아서 찾아오죠."

누이애 단팥빵에서 일하는 직원은 6명이다. 손님이 많이 찾아오는 통에 손이 모자라 문을 연 지 18일 만에 직원을 3명에서 2배로 늘렸다. "직원들이 피곤하면 질 좋은 빵이 나오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조금 무리일지라도 늘리는 쪽으로 결정했습니다."

직원이 늘었지만 그는 누구보다 일찍 매장에 나와 하루를 시작한다. 매일 오전 7시면 시청역사 내 매장에 출근해 직접 반죽과 앙금(팥소)을 만든다. 김씨는 "시청역 인근에는 외국인 관광객이 많다"며 "이들에게 우리 빵 맛을 보여주기 위해 시청역사 안에 터를 잡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