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2월 도입된 퇴직연금 제도는 이제 9세가 됐다. 많은 기업이 기존 퇴직금 제도의 단점을 보완하고자 퇴직연금 제도를 도입했다. 도입 9년 만에 작년 9월 말 기준으로 가입 기업은 23만5000개가 됐고 이 제도를 적용받는 근로자는 상시 근로자의 45.6%인 463만명에 달한다.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72조원으로 커졌다.

그런데 저금리 시대가 도래하면서 안전자산 위주로 운용을 하던 퇴직연금이 직격탄을 받아서 운용 수익률이 뚝 떨어지고 있다. 확정급여형(회사가 운용 책임을 지는 제도)의 원리금 보장상품의 경우 2010~2012년 수익률이 평균 4.6%였는데 올해는 4% 밑으로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도입된 지 9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퇴직연금 제도가 근로자들의 노후 준비에 필수불가결한 제도라는 인식은 많이 확산됐지만, 저금리 시대에 좌초하기 않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원리금 보장에 대한 쏠림 현상

퇴직연금 제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하나 꼽으라면 무엇일까? 퇴직연금 자산운용 수익률일 것이다. 수익률이 좋으면 기업은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퇴직급여를 적립할 수 있고 근로자는 더욱 많은 은퇴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 퇴직연금이 이러한 가치 창출을 해주지 않는다면 어떤 좋은 제도를 가져다 놓더라도 지속적인 성장이 어렵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 핵심 부분이 가장 취약하다.

블룸버그

확정급여형 퇴직연금의 경우를 살펴보자. 이 방식은 근로자가 퇴직하기 직전에 받는 급여에 근무 연수를 곱해 퇴직급여를 산출하기 때문에 기업이 근로자에게 지급해야 하는 퇴직급여는 임금상승률에 연동된다. 따라서 적립금을 실제로 운용해서 얻은 수익률이 임금 상승률보다 높으면 기업의 이익이 되고, 반대로 적립금을 운용한 수익률이 임금상승률보다 낮으면 기업이 추가로 적립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기업은 95%가 이자가 확정되어 있는 원리금 보장상품을 택하고 있다. 그런데 이는 두 가지 이유에서 지속될 수 없다.

우선 저금리가 지속되면서 원리금 보장상품의 금리가 하락하고 있다.

2010~2012년 3년 동안 4%대 중후반에 이르던 금리가 지난해엔 3분기까지 2.9%에 머무르고 있다. 퇴직연금 도입 초기엔 금융기관이 역마진을 감수하면서 시중금리보다 2~3%포인트까지 더 주면서 기업들의 퇴직연금을 유치했는데, 이젠 그 같이 얹어주는 가산금리가 1%포인트도 채 되지 않는다.

둘째, 저성장과 기업 수익의 양극화 때문이다. 저성장으로 금리는 낮은 수준을 유지하는데 기업 간 임금 상승률의 편차는 커지게 되면 임금 상승률이 높은 일부 회사는 퇴직연금 부담이 늘어나게 된다. 코스피 200대 기업이 퇴직연금에서 임금 상승률(2012년 기준)을 산정한 것을 보면 상승률 상위 10%에 해당하는 기업은 평균 7.3%였는데, 하위 10%는 2.6%에 불과했다.

2012년 퇴직연금 평균 운용 수익률이 4.6%인 것을 감안할 때, 임금 상승률이 높은 상위 10% 기업은 2.7%포인트(7.3%-4.6%)만큼 퇴직연금 적립금을 더 쌓아야 한다. 임금 상승률이 높은 기업은 저금리 상황에선 적립금의 운용 수익률을 개선하지 않으면 추가 부담을 계속 져야 한다.

반대로 임금 상승률이 낮은 하위 10% 기업은 오히려 2%포인트(2.6%-4.6%)의 이익이 발생하지만, 근로자들의 입장은 다르다. 근로자들이 임금 상승률이 계속 낮을 것으로 판단된다면, 확정급여형보다는 점차 임금 상승률보다 높은 수익률이 나올 것으로 기대되는 확정기여형을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

근로자도 퇴직연금 운용 관심 둬야

확정기여형(근로자가 운용 책임을 지는 제도) 퇴직연금은 확정급여형과는 달리 적립금의 운용 수익률이 바로 근로자의 퇴직연금 수익률이 된다. 적립금 운용은 가입자가 하므로 운용을 잘해야 하며, 사업자인 금융회사는 가입자가 운용을 잘하도록 자문에 응해 주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이 두 가지 모두가 미흡하다.

가입자는 퇴직연금을 가입한 이후에 자신의 연금 수익률이 매년 어떠한지를, 어떤 펀드들이 있는지 몇 번이나 봤을까? 그리고 수익률이 좋은 펀드는 어디이고, 나쁜 펀드는 무엇인지 알고 있을까? 금융회사에 전화를 해서 어떤 펀드들을 어떤 비율로 넣어야 할지 문의해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자산 배분을 바꾸어가면서 퇴직연금을 운용한 가입자가 얼마나 될까? 대부분의 가입자는 어떤 펀드들에 투자되어 있는지도 모를 것이다.

한 연금 사업자의 확정기여형 운용 성과 자료를 보면, 상위 10%에 속하는 수익률과 하위 10% 수익률의 차이가 최근 1년 동안은 5.7%포인트에 달했고, 3년 동안은 연 2.5%포인트였다. 그 차이는 어떤 금융상품에 어떤 비율로 투자할지 결정하는 자산 배분에서 나온다. 연봉 3000만원을 받는 근로자가 퇴직연금에 가입했는데 두 사람의 성과가 20년 동안 매년 2.5%포인트 차이가 났다면 쌓인 목돈의 차이는 8500만원이나 된다.

이는 가입자만의 탓은 아니다. 행동경제학적으로 보면 가입자는 대부분 이런 행태를 보이게끔 되어 있다. 복잡한 선택을 하기 싫어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호주의 경우 가입자가 선택을 하지 않으면 자동적으로(이를 디폴트 옵션이라고 한다) 금융회사가 정해진 자산 배분을 해주기까지 하고 있다. 연금 사업자들은 선량한 수탁자의 의무를 가지고 가입자의 운용 수익률을 높여주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선 연금 사업자 스스로가 자산 배분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20년 후에는 퇴직연금 규모가 830조원까지 늘 전망이다. 지금보다 10배 이상 늘어나는 규모다. 모든 시장의 초기 경쟁 단계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퇴직연금 시장도 가격(금리) 경쟁을 하면서 시장이 확대됐다. 하지만 저금리 저성장 시대에는 '자산 배분'과 '자산 운용'이 퇴직연금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확정급여형과 확정기여형

퇴직연금은 크게 확정급여형(Defined Bene fit)과 확정기여형(Defined Contribution)으로 구분된다. 확정급여형은 회사가 운용 책임을 지는 것으로, 퇴직연금 금액이 사전에 임금 상승률에 연동돼서 정해져 있다. 반면 확정기여형은 근로자 본인이 운용을 책임지며, 퇴직연금 금액이 투자 성과에 따라 달라진다. 회사는 부담금을 일정 시점마다 근로자의 퇴직연금 계좌에 넣어주는 것으로 책임이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