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성 현대중공업 회장

“지금 힘들고 어렵더라도 희망이 있는 회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위대한 회사’로 현대중공업을 만들고 싶습니다.”

이재성 현대중공업 회장이 지난달 26일 사내 소식지에 실은 취임사다. 지난해 3월 창사 40주년 기념식에서 2015년까지 매출 100조원을 달성하고, 글로벌 종합중공업 그룹으로 도약하겠다는 구체적인 사업 계획을 밝혔다면, 이번에는 회사의 새로운 가치와 목표를 제시했다.

이 회장은 2009년 12월 현대중공업 대표이사 사장으로 부임한 뒤, 세계 경기 침체 속에서도 회사를 안정적으로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수익성 부문에서는 아직 고전하고 있지만, 2009년 29조 2500억원이었던 현대중공업의 매출액(연결기준)은 지난해 54조 9700억원으로 늘었고, 경쟁 업체들의 견제 속에서도 세계 조선소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현대종합상사, 현대오일뱅크 인수를 성공적으로 마치는 등 종합중공업그룹으로서의 면모를 갖추는 기반도 마련했다.

특히 재무ㆍ전략ㆍ기획에서 쌓은 경험으로 환율 하락이나 원자재 가격 변동 등의 위기를 잘 헤쳐나갔다는 것이 주변의 평이다. 그는 펜실베니아대 와튼스쿨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조정실장과 현대선물 대표이사 등을 거치면서 이론과 실무 경험을 두루 쌓았다. 2004년부터 2009년까지 경영지원본부장으로 인사, 노무, 회계, 구매 등 경영 전반을 총괄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최근 들어 ‘윤리경영’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윤리 경영에 대한 사회의 요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어 이에 적응하지 못하면 회사가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 회장은 우선 최근 도입한 총괄사장제를 통해 책임 경영체제를 확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 6일 단행한 현대중공업그룹 임원 인사에서도 책임경영과 준법경영 체제를 확립하는데 중점을 뒀고, 45명의 상무보를 새로 선임해 신속하고 창의적인 조직 문화를 강화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국제적 기준에 맞는 준법경영을 통해 선진기업으로서의 위상도 다질 예정이다.

이 회장은 “준법 경영과 투명성에 문제가 있는 회사는 시장으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없고,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며 “위대한 회사로 나아가기 위한 모든 노력들은 윤리경영이라는 튼튼한 지반이 있어야 제대로 꽃을 피울 수 없다”고 말했다.

‘변화’ 역시 이 회장의 도전 과제다. 이 회장은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는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을 사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니라 죽은 것이다’라고 말했다”며 “묵은 습관과 낡은 사고가 있다면 과감히 바꿔야 하며, 변화에는 고통이 따르지만 그것을 감내할 때 위대한 회사로 나아가는 기틀을 마련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 회장은 현장 직원들과 자주 대화를 나누면서 소통을 중시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주로 현대중공업 본사가 있는 울산에서 근무를 보는데, 수시로 현장을 둘러보며 직원들과 인사를 하고 대화를 나눈다. 직원들에게 항상 존댓말을 사용하며, 가까운 거리를 이동할 땐 업무용 차량을 직접 운전할 만큼 소탈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직원들 사이에서는 ‘얘기를 잘 들어주고, 겸손한 CEO’라고 불린다.

이 회장은 범 현대가(家)와도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다. 현대중공업 대주주인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과 중앙중ㆍ중앙고, 서울대 경제학과 동기이며,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과 사돈을 맺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