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희문메리츠종금증권대표

최희문 메리츠종금증권 대표(사진)는 불필요한 격식을 차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대표이사 보고 대부분이 이메일이나 전화, 문자로 이뤄진다. 회의 시간에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원탁에 둘러앉아 격의 없이 토론하는 것을 선호한다. 두꺼운 서류뭉치 대신 태블릿PC로 하는 ‘종이없는 회의’도 즐긴다.

실속파 최 대표 덕분에 메리츠종금증권은 증권업계 내에서 의사결정이 빠른 조직으로 꼽힌다. 회사 관계자는 “경쟁사가 한 달이나 걸려 결정할 일을 일주일 안에 처리할 정도”라고 말했다.

메리츠종금증권은 증권업계가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도 좋은 실적을 냈다. 최 대표가 부임한 2010 회계연도(2010년 4월~2011년 3월) 영업이익이 150억원이었지만, 2012 회계년도에는 815억원이었다. 최근 3년 동안 주가는 2배 가까이 올랐다. 최 대표는 지난 6월 연임에 성공했다.

'선택과 집중' 통했다

화려한 실적 뒤에는 최 대표의 결단이 있었다. 여러가지 금융상품을 내놓고 파는 백화점식 영업을 하는 것을 지양했다. 대신 잘할 수 있는 사업과 상품을 골라 틈새시장을 공략했다. 특히 부실채권(NPL), 오토리스(Auto leaseㆍ임대료를 내고 차를 빌려쓰는 것) 등 다른 증권사가 주목하지 않았던 부분에서 고른 수익을 냈다.

최 대표는 지난 5일 메리츠종금증권 본사에서 가진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다른 증권사와 다른 전략을 세워야 돈을 벌 수 있다”며 “단순 중개업에서 벗어나 일정 부분 리스크(위험)를 지더라도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는 부분에 집중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메리츠종금증권도 다른 증권사와 마찬가지로 소매 및 법인영업 부문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전체적인 실적은 꾸준히 좋아지고 있다. 증권업계가 혹독한 불황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3월 결산법인인 메리츠종금증권의 상반기(2013년 4월~9월) 영업이익은 472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467억원)보다 오히려 늘었다.

남들이 크게 신경쓰지 않던 분야에서 최 대표는 새로운 수익원을 찾았다. 최 대표는 “부실채권(NPL) 부문은 3년 전 업계에서 가장 잘한다는 사람들을 데려와 시작했다”며 “상당한 리스크가 있다고 볼 수 있지만, 그 안에서 잘 분별하면 리스크 대비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기회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위험이라면 무조건 피하고 보는 회사가 많은데, 그렇게 되면 수익 창출의 기회도 없다”고 강조했다.

최근에는 수익성 부동산에 대한 담보대출 관련 인력을 늘렸다. 최 대표는 “시장 금리 대비 안정적인 수익률을 낼 수 있는 상품 중 하나가 수익성 부동산”이라며 “직접 지분 투자를 하거나 펀드를 만들어 직접 매각하는 등 다양한 수익 모델을 만드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요즘 증권사들이 새로운 수익원으로 보고 있는 자산관리 부문에 대해서는 오히려 선을 그었다.최 대표는 “증권업계 자체가 자산대비 인력 과잉이라고 생각한다”며 “관리인력 1명당 500억에서 1000억 정도 관리할 자산이 있어야 사업을 할만한데 이 정도 기반을 갖추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증권사 가운데 유일하게 보유하고 있는 원금보장형 CMA에 대해서도 “시장 금리가 이미 충분히 낮아졌기 때문에 이를 활용해서 사업을 한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며 “오히려 고객에게 제공하는 서비스의 하나로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국내 증권사들이 금리 경쟁을 벌이며 CMA 고객 확보에 나서고 있는 것과는 대조된다.

격식 싫어하고 실속 반기는 실용주의자

최희문메리츠종금증권대표

최 사장은 중학교 1학년 때인 1977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뱅커스트러스트, 크레디트스위스, 골드만삭스 등에서 15년간 근무하다 2002년 삼성증권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메리츠종금증권과는 지난 2009년 10월 부사장으로 부임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오랜 해외 생활 탓에 전형적인 한국의 증권맨과는 거리가 멀다. 두주불사(斗酒不辭)형 영업맨도 아니고, 폭넓은 인맥을 자랑하는 마당발 스타일도 아니다. 최 대표는 “술을 와인 정도는 즐기지만 많이 마시는 편이 아니다”며 “골프도 업무 때문에 치는 정도”라고 웃으며 말했다. 공식 행사에도 비서 없이 혼자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최 대표에 대한 직원들의 신임은 두텁다. 메리츠종금증권의 한 임원은 “어느 학교 출신인지, 고향이 어디인지 물어보신 적이 없다”며 “오로지 능력으로만 사람을 평가하니 오히려 편하다”고 말했다.

최 대표의 소신은 경영 스타일에서도 묻어난다. 관련 서류를 들고 와 직접 얼굴을 맞대고 하는 대면보고를 거의 받지 않는다. 웬만한 보고는 이메일이나 문자, 전화로 처리한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해당 임직원에게 직접 문자를 보내는 일도 허다하다. 의사 결정이 빠르게 이뤄지다보니 입소문을 탔다. 최 대표는 "다른 증권사보다 신속하게 의사 결정이 진행된 덕분에 중요한 거래가 성사된 적도 여러 번 있다"며 웃었다.
인력운용에 있어서도 대세를 거스르는 중이다. 최근 증권사 인력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최 대표는 "능력이 있는 인재라면 자리를 만들려고 한다"며 "오히려 직원 숫자를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 대표는 “한국 기업에 처음 왔을 때 꼭 군대 같다고 생각했다”며 “한국 기업 특유의 격식을 따지는 문화가 분명 비효율을 초래하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