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의 면역세포를 강화시켜 인체가 스스로 암(癌)을 치료할 수 있게 한 면역 치료법이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가 선정한 '올해의 10대 연구성과(Top 10 Breakthroughs of the year)' 중 1위를 차지했다. 재미(在美) 한국인 과학자가 개발한 뇌 투명 기술과 우리나라를 비롯해 영국, 스위스 과학자들이 연구 경쟁을 벌이고 있는 신종 태양전지 연구도 10대 연구 성과에 들어갔다.

◇면역세포의 '자주국방식' 암치료

T세포는 백혈구의 하나로, 다른 면역세포가 병원체를 공격하도록 돕는다. 1980~90년대 프랑스와 일본 과학자들은 T세포 표면에 특정 단백질들이 붙으면 이 세포가 정상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후 과학자들은 T세포 기능에 브레이크를 거는 이 단백질만 억제하면 인체가 암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 냈다.

미국 제약사 '브리스톨 마이어 스퀴브(BMS)'는 말기 흑색종 환자를 대상으로 T세포 표면에 붙은 단백질을 공격하는 항체를 주사했더니, 이 중 22%가 생존 기간이 3년이나 늘었다고 최근 밝혔다. 올 초에는 같은 면역 치료법으로 흑색종 환자 31%에서 암세포가 줄어든 것이 확인됐다. 지금까지 암 치료가 약물이나 방사선으로 암세포를 직접 공략하는 일종의 지원군 파병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환자 자신의 면역세포로 암에 대항하는 '자주국방식' 암 치료가 시작된 것이다.

◇투명해진 뇌 속을 들여다보다

미 스탠퍼드대 정광훈 박사는 지난 4월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사망한 생쥐의 뇌에서 지방을 제거하고 그 자리에 묵 같은 하이드로겔을 넣어 투명하게 만드는 기술을 발표했다. 이렇게 되면 뇌 안에 있는 신경세포의 3차원 연결망을 하나하나 볼 수 있다. 뇌 질환으로 사망한 사람에게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뇌를 잘라보지 않고도 한눈에 알아볼 길이 열린 것이다. MIT는 정 박사를 교수로 데려가면서 신임 조교수 채용 역사상 가장 많은 연구비인 250만달러(약 26억원) 이상을 조건 없이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간 배아줄기세포 복제 첫 성공

지난 5월 미국 오리건 보건과학대 연구진은 '셀(Cell)'지에 "다 자란 사람 피부 세포를 이용해 인체의 모든 세포로 자라날 수 있는 복제 배아(胚芽)줄기세포를 만드는 데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열 번 중 한 번이라는 놀라운 복제 성공률을 보였다. 핵심 요건 중 하나는 커피에 들어 있는 카페인이었다. 카페인이 난자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한 것이다.

◇미니 장기 개발 봇물

지난 7월 일본 연구진은 피부 세포로 만든 줄기세포를 초소형 간으로 자라게 하는 데 성공했다. 8월에는 오스트리아 과학자들이 줄기세포로 미니 인간 뇌(腦)를 만들었다. 완두콩만 한 크기의 미니 뇌는 9주가 지난 태아의 뇌에서 보이는 대뇌 피질과 해마, 미성숙 망막 등을 대부분 갖고 있었다. 미니 장기는 신약 실험 등에 이용될 수 있다.

◇고효율 저비용 태양전지 경쟁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진은 페로브스카이트(perovskite) 태양전지로 빛에너지의 15%를 전기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페로브스카이트는 티타늄 산화물에 유기물질을 결합시킨 물질로 부도체(不導體·전기가 통하지 않는 물질)와 반도체, 도체의 성격을 모두 가진다. 실리콘 태양전지는 발전 효율이 20%로 높은 편이지만 고가의 장비로 고온에서 제조하기 때문에 가격이 비싸다. 반면 페로브스카이트 전지는 용액을 기판에 바르고 말리기만 하면 돼 훨씬 저렴하다. 이 분야에선 스위스 로잔 공대 연구진과 성균관대 박남규 교수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잠의 기능 밝혀

미국 로체스터대 연구진은 사람이 잠을 자면 뇌척수액 흐름이 60%나 증가해 알츠하이머를 일으키는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 같은 독소를 뇌 밖으로 밀어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장내 세균 역할 규명

우리 몸에 있는 100조 개의 장내 세균이 암이나 당뇨, 비만과도 연관이 있다는 사실도 잇따라 밝혀졌다. 이에 따라 건강한 사람의 장내 세균을 이식해 질병을 치료하는 일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어린이 구할 백신 제조 기술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는 한 해 16만명의 어린이 목숨을 앗아간다. 약이 있지만 한 번 쓰는 데 1000달러나 들어 많은 어린이가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미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연구진은 기존 치료제보다 10~100배나 강력한 치료 항체를 찾아냈다. 약이 강력해지면 치료 횟수가 줄어들어 환자 부담도 가벼워진다.

◇유전자 수술법

미국 MIT와 하버드대가 공동 설립한 브로드연구소의 펭 장 박사는 박테리아가 바이러스 유전자를 제거하는 과정을 모방해 특정 단백질과 RNA로 손쉽게 DNA를 조작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분자 수준의 유전자 수술 도구가 마련된 것이다.

◇우주입자가속기

미 항공우주국(NASA) 과학자들은 페르미 감마선 우주 망원경을 통해 우주에서 날아오는 고에너지 입자들은 별이 생애를 다할 때 나타나는 초신성의 잔재라는 사실을 알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