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경제전문가들은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가 우리나라 경제에 미치는 충격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른 나라들보다 상대적으로 낫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부정적이기보다는 불확실성 해소 등 긍정적일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실물경제에서는 미국의 경기회복 강도가 세지고 있다는 의미여서 수출이 늘어날 수 있고, 금융시장에서도 자금이 급격히 빠져 나가는 혼란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적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엔화가치가 원화가치보다 더 크게 하락하면서 100엔당 원화환율이 더 떨어져 일본과 경합하는 수출제품에 부담이 될 수 있고 시장금리가 상승하면서 기업 구조조정과 가계부채에 어려움을 줄 가능성은 있다는 분석이다. 또 인도 브라질 등 경상적자를 내고 있는 취약 신흥국에서 단기간내 급속한 자금 유출이 발생할 경우 우리나라도 그 충격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지적이다.

◆ 이미 예정됐던 일, "예방주사 아주 많이 맞았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는 이미 예정된 일로 시기가 언제냐는 문제만 남아있었다. 그만큼 세계 경제와 세계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양적완화 규모도 월 850억달러에서 750억달러로 100억달러 줄인 것으로 시장 예상과 다르지 않았다. 크지 않은 규모다.

일부에서는 지난 5월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처음 언급했을 때부터 양적완화 축소는 이미 시작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지난 7~8월 인도 인도네시아 등 일부 신흥국이 자금유출과 금융시장 혼란 상황을 겪기는 했지만 별다른 위기 없이 넘어갔다. 지난 9월에도 양적완화 축소를 시작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아서 시장 참가자들은 이미 대응책을 실행해 왔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그동안 예방주사를 아주 많이 맞았다"며 "큰 틀에서 보면 충격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박원식 한은 부총재는 "미국은 물론 신흥국 증시에서도 주가가 상승했다"며 "시장에서는 테이퍼링을 불확실성 해소로 보고 있다"고 평가했다.

◆ 실물경제에 도움, 금융시장도 별 영향 없어…"원엔 환율은 걱정"

미국이 양적완화 축소를 할 수 있는 것은 최근 미국의 제조업, 주택 경기와 고용 지표 등 전반적으로 경제가 회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기회복은 수출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에게는 긍정적이다. 우리나라 실물경제에는 도움이 되는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미국의 GDP 성장률이 1%포인트 상승할 경우 우리나라의 대미 수출증가율은 2.97%포인트, 전체 수출증가율은 1.4%포인트 상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금융시장도 별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우리나라는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를 이어가고 있고 지난해부터 신흥국 중에서도 차별화된 시장으로 인식되고 있다. 지난 7~8월 신흥국 위기 때도 우리나라로는 오히려 자금이 유입됐다. 이번 양적완화 축소 이후에도 신흥국에서 자금이 단기간내 급속히 빠져나간다면 우리나라에 단기적인 충격이 올 수 있다는 전망도 있지만 오히려 우리나라에 자금이 유입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신흥국시장에 투자하는 자금은 상대적으로 고수익 고위험을 추구하고 있어 신흥국 내에서만 돌면서 사정이 좋은 시장으로 유입되는 경향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전승지 삼성선물 연구원은 "싱가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신흥국 통화는 약세 압력을 받고 있지만 원화는 안전통화로 자리잡아서 변동폭이 작다"고 설명했다. 이대호 현대선물 연구원은 "당분간 달러당 원화 환율은 상승압력을 받겠지만 많이 올라도 1080원선까지가 맥시멈일 것"이라며 "엔화 약세가 원화 약세보다 빨라지면서 100엔당 원화환율은 더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날 100엔당 원화환율은 1011원 수준으로 또 최저치를 경신했다.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KDI)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미국 경제회복을 전제로 한 것이어서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며 "자금시장에서도 투자자금이 확 빠져나갈 가능성이 낮고 조금씩 빠져나가더라도 별 충격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직접 효과보다 큰 것은 취약한 신흥국이 어떻게 반응할 것이냐다"라며 "신흥국들도 지난 7~8월보다 충격이 적겠지만 만약에 크게 악화된다면 우리나라 수출 등이 영향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 시장금리 상승에 따른 내수위축 가능성…기업 구조조정, 가계부채 등에 부담될 수도

하지만 시장금리 상승은 불가피하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는 시중자금을 거둬들이는 게 아니라 시장에 푸는 돈의 양을 줄이는 것이지만 앞으로 경제가 회복될 수록 더 줄인다고 했기 때문에 투자심리에는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국내 채권시장에서도 양적완화와 함께 내년 경기회복으로 금리가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문홍철 동부증권 연구위원은 "새로운 재료가 아니기 때문에 단기적인 충격은 제한적"이라며 "(금리)방향 자체는 위쪽이고 내년에 경제 펀더멘탈이 좋아지면 금리가 더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시장금리가 상승하면 소비, 투자 등 내수에는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특히 기업 구조조정과 가계부채에 부담이 될 수 있다. 김용범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은 "이미 예고된 것이고 시장금리가 많이 오른 상황이지만 내년에 기업 구조조정 이슈가 있을 텐데 금리가 오르면 자금조달 비용이 높아져서 영향이 있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시장금리 상승은 가계의 이자상환 부담을 가중시켜 민간소비 회복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