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건설이 아랍에미리트(UAE)에 지은 11억4000만달러 규모의 복합정유시설.

건설업계가 IMF 외환위기 이후 최대 위기에 봉착해 있다. 삼성, GS 등 굴지의 대기업 계열 건설사들이 천문학적인 적자를 냈고 중견그룹들은 계열 건설사의 부실로 그룹 전체가 무너져 내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올해 조 단위의 실적 쇼크는 GS건설(대표 임병용)이 테이프를 끊었다. GS건설은 올해 1분기에 5354억원의 대규모 적자를 기록, 시장에 충격을 안겼다. 적자행진은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2분기 1503억원, 3분기 1047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면서 올 한 해 누적적자가 1조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비관론도 제기되고 있다.

부실책임을 지고 오너 일가인 허명수 사장이 지난 6월 대표이사직을 내놨지만 신임 임병용 사장이 취임한 후에도 적자행진은 이어지고 있다. 적자 규모는 줄었다. GS그룹은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는 보수적인 경영스타일로 유명한데, GS건설에서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은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주가 하락도 크다. GS건설 주가는 2007년 10월 장중 최고가 19만9000원을 기록했으나 11월 28일 2만9750원으로 끝났다. 올 들어서만 반토막이 났다.

◇GS건설, 삼성엔지니어링, SK건설, 두산건설, 극동건설, LIG건설 등 줄줄이 '줄초상'…오너 경영자들 '퇴진'

삼성엔지니어링은 시간이 갈수록 어려운 모습이다. 삼성엔지니어링(대표 박중흠)은 올해 실적이 악화되면서 3분기까지 1조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3분기에만 7468억원의 영업손실이 났다. 신용평가사들은 신용등급을 기존 'AA-'에서 'A+'로 한 단계 내렸다.

마침내 삼성그룹은 부실 계열사를 살리기 위해 삼성전자 혁신전문가들을 긴급 투입했다. 지난 10월 중순 정진동 삼성전자 전무를 비롯한 20여명을 삼성엔지니어링 ‘경영 선진화 태스크포스’에 합류시켰다. 정 전무는 삼성전자 내에서도 손꼽히는 혁신전문가로 최근까지 중남미 총괄법인에서 경영혁신팀장을 맡아왔다.

삼성이 부실 계열사를 살리기 위해 다른 계열사 직원을 긴급 투입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그만큼 사태가 심각하고 긴박하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박형렬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경영 혁신 인력의 투입이 삼성엔지니어링 실적 개선에 도움이 될지, 아닐지 현재로선 판단하기 힘들다”며 “내년 상반기까지 실적이나 주가 모두 보수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SK건설(대표 최광철·조기행)도 올 3분기까지 누적 3147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SK건설도 1분기에 2438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해 실적쇼크를 안겨줬지만 비상장기업인 덕분에 주목을 덜 받았다. 영업손실은 2분기에 180억원으로 줄어드는 듯했으나 3분기 들어 적자 폭이 529억원으로 다시 커져 우려를 샀다. 오너 일가인 최창원 부회장이 지난 9월 부실의 책임을 지고 SK건설 부회장과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났지만 적자는 오히려 늘어났다.

실적쇼크는 중하위권 대기업과 중견기업에서도 만연하다. 지난해 웅진그룹의 몰락은 극동건설을 무리하게 고가로 인수한 후 경영정상화에 실패한 것이 결정타였다. 올해 LIG그룹이 무리한 영업을 해서 사회적 물의를 빚은 것도 계열 건설사가 부실화되면서 그룹 자금 사정이 어려워진 것이 주된 요인이다. LIG그룹은 건설업 진출을 위해 2007년 건영(LIG건설)을 인수했지만 LIG건설은 경영정상화에 실패해 2011년 다시 법정관리 신세가 됐다.

두산그룹은 두산건설 때문에 그룹의 재무 안정성이 위협받고 있다. 뒤늦게 아파트 사업에 뛰어든 두산건설(대표 양희선·송정호)은 대규모 미분양 사태로 2011년에 2935억원의 순손실을 내고 그해 3894억원의 대손상각을 인식하면서 부실화됐다.

두산건설은 최근 높은 비율의 감자를 단행, 시장에 충격을 안겼다. 이 회사는 지난 11월 25일 이사회에서 10 대 1 감자를 실시키로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감자를 하는 것 자체가 대기업에서는 극히 드문 데다 이렇게 높은 비율의 감자는 만성적자에 허덕이는 부실 중소·중견기업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일이어서 더 충격적이다.

현대산업개발(대표 정몽규)도 3분기에 196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동부건설은 지난해 3분기 202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으나 올 3분기에는 573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풍림산업(대표 이필승)도 같은 기간 영업손실 162억원에서 199억원으로 적자 폭이 확대됐다. 한화건설(대표 김현중)은 이익 폭이 눈에 띄게 줄었다. 올 3분기 영업이익은 104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636억원보다 83.6% 급감했다. 효성 건설부문도 영업이익을 기록하긴 했으나 지난해 3분기 74억원에서 올해 61억원으로 줄었다.

◇"한국 건설 사상 최악의 어닝 쇼크 해"…연간 순이익 1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한국 경제 전체 위협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계열사를 동원해 유상증자, 현물출자 등의 형태로 부실 건설사를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한라그룹은 이마저도 앞으로 여의치 않을 전망이다. 부실해진 계열 건설사를 지원했다가 한바탕 홍역을 치렀기 때문이다. 한라그룹은 만도를 통해 35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형태로 한라(옛 한라건설)를 지원했다. 만도의 기관투자가들이 강력 어필하자 정몽원 회장이 백기를 들었다. 정 회장은 "계열사 차원의 추가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SK건설의 터널 굴착장비. 아시아와 유럽을 가르는 터키 보스포루스해협의 해저터널을 뚫는 데 사용된다.

건설업체들은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건설·부동산·임대업과 연관산업의 종사자 수를 합하면 1000만명이 넘는 국민이 주택건설산업에 의존해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이 산업의 붕괴는 서민경제 기반 붕괴 및 전체 국민의 삶을 위협하는 것이다.” 26개 건설·부동산 유관단체는 10월 말 이같은 내용의 호소문을 국회와 청와대에 제출했다. 장기 침체를 겪고 있는 시장 정상화를 위해 관련 규제완화 법안과 국회 처리 등을 조속히 추진해달라는 것이다.

통계를 보면 더 심각성이 감지된다. 노기영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는 한국 건설 섹터에 대규모 어닝쇼크의 해로 기록될 것”이라며 “GS건설과 삼성엔지니어링의 대규모 적자 시현으로 대형 건설사들의 올해 연간 순이익 규모는 지난 10년간 최저 수준을 기록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심각한 통계는 또 있다. 최신 자료인 대한건설협회의 국내 건설수주 동향에 따르면, 올 9월 수주액은 전년 동기 대비 0.1% 감소한 7조2550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8월 이후 14개월 연속 감소세다. 외환위기 당시였던 1997년 11월부터 1999년 3월까지 17개월 연속 감소세를 기록한 이후 가장 길다. 국내 건설 수주는 지난해 상반기만 해도 전년 동기 대비 9.7% 증가했지만 하반기 들어 23.1% 급감하며 회복에 실패했다. 올 1~9월 누적실적은 59조1154억원으로 전년보다 21.9% 줄면서 2004년 이후 최저치를 나타냈다.

지난 11월 18일 대한건설협회가 발표한 상반기 118개 상장건설사 경영분석 결과에 따르면, 이자보상비율이 162.6%로 전년 동기보다 86.1%나 급감했다. 200% 선이 붕괴된 것은 IMF 당시 이후 처음이다. 이자보상비율은 영업이익으로 이자 감당능력을 나타내는 수치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낸다는 것을 의미하는 100% 미만 업체는 전체의 47.5%인 56개사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회사들의 경영난이 국가 경제에 큰 시름을 안겨 주고 있는 셈이다. 건설회사들이 극심한 실적부진에 허덕이고 있는 것은 우선 국내 시장이 활력을 잃은 것이 공통 원인이다. 대기업들은 이를 벌충하기 위해 해외 영업에 주력했으나 무리한 외형 추구를 위해 저가 수주를 일삼은 것이 부메랑이 됐다.

중견·중소기업들은 대체로 국내 시장 중 다른 부문에서 활로를 찾았으나 만성적인 경기침체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예를 들면 주택사업을 전문으로 하던 업체가 토목이나 공공 부문으로 눈을 돌렸으나 이들 시장이 모두 쪼그라든 탓에 내수만 보고 영업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이처럼 올해 건설업이 1997년 환란 이후 최대 불황에 빠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이런 와중에도 웃는 업체들이 있다. 무리한 외형 위주의 저가 수주를 하지 않고 탄탄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수익성 위주의 영업을 해온 곳들이다.

◇최악 불황 속에서도 웃는 현대건설·대우건설·삼성물산의 '비결'은?

현대건설·삼성물산·대우건설 등이 대표적 사례다. 올해 3분기 실적을 보면 국내 '빅5' 건설사 가운데 현대건설·삼성물산·대우건설 등 3개사는 지난해보다 좋은 실적을 거뒀다. 저가 수주에 발목이 잡혀 해외 시장에서 손실이 발생하면서 영업이익이 큰 폭으로 줄었던 지난해와 비교하면 대비된다. 저가 수주의 폐해를 일찍 겪고 깨달아 국내외에서 수익성 위주의 영업을 전개한 덕분이다.

대형사 중에서는 업계 2위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실적 개선이 눈에 띈다. 삼성물산은 3분기 총 3조3806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작년 같은 기간보다 무려 67.4% 증가한 것이다. 3분기 누적 매출은 9조1507억원으로 49.8% 늘었다. 해외에서 일감을 많이 따낸 영향이 크다.

삼성물산은 올해 해외에서 15건의 공사를 따내 총 99억9000만달러의 수주고를 올렸다. 이 회사는 해외 수주 실적 1위를 달리고 있다. 영업이익도 늘었다. 3분기 영업이익은 작년보다 143% 증가한 985억원, 누적 영업이익은 7.8% 증가한 2452억원을 기록했다.

업계 1위인 현대건설(대표 정수현)은 3분기에 지난해보다 6.5% 증가한 3조5349억원(6.5% 증가)의 매출을 올렸다. 올 들어 3분기까지 누적 매출은 9조8669억원으로 7.2% 늘었다. 3분기 누적 영업이익도 5853억원으로 지난해보다 11.8% 증가했다. 15억달러 규모의 사우디아라비아 마덴 알루미나 제련 공사 등 해외 대형 공사가 본격적으로 추진된 때문으로 풀이된다.

대우건설(대표 박영식)도 비교적 양호하다. 이 회사는 3분기에 총 2조66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지난해보다 9.8% 줄어든 것이다. 반면 3분기 누적 매출은 6조3487억원, 영업이익은 325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5.3%와 9.3% 증가했다. 주택·건축 부문이 효자 역할을 했다.

인천 영종도에는 미분양 아파트가 밀집되어 있다. 사진은 한라비발디 아파트.

비상장 대형 건설사 중에선 롯데건설과 포스코건설이 비교적 양호한 실적을 거뒀다. 롯데건설(대표 박창규)은 지난해 3분기에 488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으나 올 3분기에는 514억원으로 5.3% 늘렸다. 포스코건설(대표 정동화)은 3분기에 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12.7% 줄었지만 3분기까지 누적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138.6% 급증했다. 포스코건설은 올 3분기에 976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생존 위해 M&A, 해외진출, 신성장 동력 발굴 등으로 발버둥 치는 건설사들…내년 전망은?

건설회사들은 현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당장 영업손실이 큰 곳은 자산매각 등을 서두르고 있고 국내외에서 신성장동력을 발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M&A(인수합병)를 추진하는 곳도 있다.

GS그룹은 GS건설을 살리기 위해 서울 강남구 소재 인터컨티넨탈호텔을 담보로 자산유동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3000억원가량의 자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GS건설은 11월 27일 문책성 인사와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해외사업에서 부진했던 임원들이 대거 교체됐고 실무를 담당하던 팀장들을 준임원급으로 승진시켜 책임경영을 강화했다.

건설회사들은 신성장동력 발굴에도 열심이다. 철도가 우리 건설업계의 새로운 먹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11월 25일까지 우리 건설업체들이 해외에서 수주한 철도공사 금액은 111억5475만달러로 지난 한 해 철도공사 수주액인 10억8093만달러의 10배가 넘는다.

현대건설은 원전, 신재생에너지, 오일샌드 등을 미래 신사업으로 제시했다. 또 LNG 관련사업, 자원개발 연계 인프라 개발, 해외 부동산 개발 등에 진출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GS건설은 LNG 플랜트와 중동 철도 시장 진출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 두산건설은 기자재 전문업체가 되겠다고 선언했고 한라는 바이오매스 플랜트 사업 진출을 검토하고 있다.

국내 업체들의 해외 공동 수주도 늘어나고 있다. 예전에 한국 건설업계의 병폐로 국내 업체 간의 해외 과당경쟁을 들 수 있다. 일본 업체들은 서로 조정해서 저가 수주를 지양하는데 한국 업체들은 제 살 깎아 먹기 식의 경쟁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 그간의 사정이었다. 그러나 올 들어서는 공동 수주 낭보가 잇따르고 있다. 연초에는 GS건설과 SK건설이 베트남 최대 규모의 정유·석유화학 플랜트 공사를 공동 수주했다.

베트남의 응이손 정유·석유화학회사(NSRP)가 발주한 베트남 NSRP 정유프로젝트를 수주해 양사가 확보한 금액은 21억달러. 올해 건설업체가 아시아 시장에서 수주한 프로젝트 가운데 가장 큰 금액이자 한국 기업이 베트남에서 수주한 최대 규모의 플랜트 사업이었다. 9월에는 현대건설과 GS건설이 싱가포르에서 1조5000억원 규모의 마리나사우스 복합단지 개발공사를 함께 수주했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올해 아시아 시장에서 공동 수주한 공사는 11월 25일 현재 111억달러가 넘는다. 단독 수주 금액(86억달러)보다 훨씬 많다.

최근 핵협상이 타결된 이란 시장도 우리 건설회사들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란은 석유매장량 세계 4위의 산유국이어서 그만큼 건설 시장도 크다.

경영난에 허덕이는 일부 중견·중소 건설사들은 M&A에서 생존책을 찾고 있다. 벽산건설은 법원이 중동 카타르 알다파그룹의 투자전문 계열사인 아키드 컨설팅의 아키드컨소시엄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고 11월 22일 공시했다. 벽산건설의 주가도 큰 폭으로 뛰었다. 11월 8일 4510원으로 시작해 11월 27일에는 장중 2만2350원을 기록했다. 남광토건도 M&A 추진을 재료로 주가가 큰 폭의 등락을 보이고 있다.

내년도 건설업은 어떨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비관론과 낙관론이 엇갈린다. 하지만 대형 건설사들의 경우는 내년에는 다소 나아질 것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해외건설의 매출 확대 추세가 이어지고 있고 업체들이 수익성 개선에도 신경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경자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내년 대형사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4.1%로 올해보다 0.5%포인트 나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 더 많은 기사는 2013년 12월 2일 발매된 주간조선 2284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