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 계류 중인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이하 단통법)’을 놓고 정부와 제조사, 통신사가 뚜렷한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국민을 위해 단통법 법제화를 강행하겠다는 ‘미래창조과학부’와 휴대폰 시장위축을 우려하며 반대하는 ‘제조사’ 그리고 단통법으로 10년 넘게 이어온 보조금 전쟁을 끝내겠다는 ‘이동통신사업자(이하 이통사)’의 이해관계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 제조사 “스마트폰 시장 더 위축할 수 있다”

삼성전자(005930), LG전자(066570), 팬택 등 휴대폰 단말기 제조사들은 정부의 규제 움직임에 반발하고 있다. 먼저 제조사들은 이번 규제가 스마트폰 시장 위축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올해 국내 스마트폰 보급률 예상치는 79.5%로 상당히 높은 편이다. 따라서 제조사들은 “단말기 장려금이 없으면 스마트폰 보급률을 더 높이기 어렵고, 장려금을 지급해 판매를 늘리는 것은 기업의 당연한 영리활동”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 전자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장려금을 과도하게 규제하면 기업이 시장의 움직임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제조사의 보조금 직접 제공 구조.

이같은 주장 대한 반론도 만만찮다. 제조사가 통신사에 공급하는 단말기 가격이 너무 높으므로 가격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내서 판매되는 고급형 스마트폰은 대부분 출고가는 90만원에서 100만원대에 육박한다. 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3의 출고가는 106만7000원, 갤럭시S4는 89만9000원이었다. LG전자의 G2는 95만4000원, 팬택의 베가 시크릿노트는 99만9000원이었다.

이에 대해 단말기 제조사들은 "소비자 가격은 이동통신사가 결정하는 것"이라며 "제조사가 출하 가격을 낮춰도 소비자들이 저렴하게 살 수 있는 유통구조가 아니다"면 맞서고 있다.

두번째로 제조사들은 단말기 유통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보조금과 장려금과 같이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자료가 새어나간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윤종록 미래창조과학부 2차관은 21일 "국내 단말기 유통현황을 파악하기 위한 조사일 뿐이며 대외공개 목적은 절대 아니라고 밝혔다. 그러나 제조사들은 여전히 "자료가 대외에 공개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며 '과잉 규제'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 통신사업자 "치킨게임 탈출하자"…보조금문제, 제조사 책임도 있다

미래부의 단통법 추진에 반대입장을 밝힌 제조사와 달리 이동통신사업자(이하 이통사)는 암묵적으로 ‘찬성표’를 던지고 있다. 스마트폰 시장 포화로 신규 가입자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이익률을 떨어트리는 과도한 보조금 치킨게임(한쪽이 쓰러질때까지 진행하는 싸움) 관행을 없애겠다는 의도다.

현재 단말기 가격구성 설명도. 미래창조과학부는 제조사와 통신사의 보조금에 따라 제품의 가격이 달라지는 현상이 현재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통사는 LTE속도전으로 촉발된 설비 투자와 보조금 경쟁 등 이중경쟁 상황에 처해있다. 예를 들어 SK텔레콤은 지난해 2조8000억원의 설비투자를 펼쳤다. 이는 지난해 영업이익의(1조7601억원)의 1.6배 수준이다. 다른 이통사도 상황은 비슷하다. 결국 벌어들인 수익의 상당 부분을 다시 쏟아 붙는 돌려막기식의 경영을 펼치고 있는 셈이다.

더구나 올해 8월까지 분기당 스마트폰 가입자는 135만명 수준에 그쳤다. 지난해 같은 기간 스마트폰 가입자가 분기당 평균 254만명인 점을 감안하면 가입자 증가폭이 1년새 절반으로 감소한 것이다. 이미 설비투자로 비용을 쓴 이통사들은 보조금 경쟁 여력이 떨어졌다. 최근 통신사들이 마케팅 전략을 ‘착한·좋은 기변’ 등 기존 가입자를 지키는 것으로 바꾼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한 이통사 관계자는 “과도한 보조금을 투명화 하겠다는 정부의 방식에 공감한다”며 “이통사는 10~15년간 보조금 경쟁으로 많은 고통을 겪어왔고 단통법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단통법이 통과될 경우 단말기 혹은 요금 할인을 이용자가 선택할 수 있다.

통신사는 과다한 휴대전화 보조금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제조사 장려금도 반드시 규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 이통사 관계자는 “제조사들은 출고가를 인하하지 않은 상태에서 장려금을 시장에 풀어 재고를 처리해왔다”며 “특히 최근 이통시장 보조금 과열은 제조사발 과다 장려금이 원인이 됐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달 전자제품 양판점인 A마트와 B프라자에서는 갤럭시S4단말기를 각각 17만원, 5만원대에 판매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특정 제조사가 재고와 물량 조절을 위한 장려금을 투입했을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장대호 방송통신위원회 통신시장조사 과장은 “특정 제조사의 장려금이 보조금 일부에 포함돼 있다는 심증을 가지고 있다”며 “특히 이들 양판점 주변 통신판매 상권이 고사하는 등 통신 판매점의 민원이 많이 접수됐다”고 설명했다.

최근 SK텔레콤(017670)과 케이티(KT)는 구글의 레퍼런스폰인 ‘넥서스5’를 국내에 출시하며 국내 제조사들을 압박하고 나섰다. 넥서스5(16GB)는 보조금 포함 30만대 가격으로 삼성전자의 갤럭시S4나 LG전자 G2에 비해 가격은 절반 이하이면서도 기능은 뒤떨어지지 않는다.

한 이통사 관계자는 “넥서스5는 제조사가 책정한 국내 출고가에 많은 거품이 끼어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며 “중장기적으로 출고가 자체를 낮춰야 이용자 차별을 최소화하고 소비자 불신을 해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