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가격이 급등하면서 집값 턱밑까지 치고 올라온 지역이 속출하고 있다. 기존 대출금에 전세금을 합칠 경우, 집을 팔아도 제대로 갚을 수 없는 '깡통 전세'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세 가격이 조정을 받을 경우 이미 금융권 대출 한도를 넘긴 집주인들은 고금리의 신용대출로 돈을 조달해야 하는 처지다. 이마저 실패할 경우 자칫 채무 불이행이 연쇄 발생하는 '전세발(發) 금융 혼란'이 올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한국은행 조사에 따르면 전국 주택의 전세금 규모는 최대 500조원으로 전체 가계 부채(980조원)의 절반을 넘어선다. 집주인들이 세입자에게 빌려 굴리고 있는 부채 규모가 500조원에 이른다는 의미다.

본지가 7일 부동산 정보 업체 '부동산114'에 의뢰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서울에선 집값 대비 전세금 비율(전세가율)이 90%를 넘는 가구가 작년 말에는 한 가구도 없었으나 10월 말에는 284가구가 처음 등장했다. 경기도에선 지난해 454가구에 불과했으나 이번 조사에서는 7824가구로 크게 늘었다. 서울과 경기도에서 전세금이 집값의 90%를 넘는 가구가 작년 말 454가구에서 올해 10월 말 기준 8108가구로 17배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지방에는 전세가가 높은 지역이 많은데 여기에 올해 수도권 주택이 합류하면서 전국적으로 전세가율 90% 이상이 4만5338가구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세금이 90%를 넘는 극단적 사례가 아니더라도, 집주인이 빌린 주택 담보대출에 전세금을 합칠 경우 대다수 전세 주택이 원금을 일부 떼일 수 있는 위험한 수준에 이미 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은행이 국민·신한은행 등 9개 시중은행에서 주택 담보대출이 있는 전셋집의 LTV(주택 담보대출 비율)를 조사한 결과 은행 대출만 따지면 집값의 48.4%가 대출이었다. 그러나 집주인이 갚아야 할 실질적 '빚'인 은행 대출과 전세금을 합칠 경우 '실질 LTV'는 75.7%로 올라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상 이 비율이 70%를 넘으면 경매에 부칠 경우 채권을 다 회수하기 어려운 것으로 간주된다.

특히 전세가율이 80~90%인 전셋집은 전세 계약 기간(2년) 동안 전세금이 매년 10%만 하락해도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온전히 돌려주기 힘든 '채무 불이행' 상황에 놓이게 되고, 세입자는 전세금을 떼일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