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현대자동차, SK(034730)등 우리나라 대표 기업의 매출액과 순이익이 지난 12년간 크게 늘었지만, 고용은 이를 따라가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회사 이익이 10배 넘게 증가했지만, 고용은 2배가 안 늘어난 회사도 있는 등 10대 그룹 주력 회사의 고용유발계수는 2007년과 비교해 악화된 것으로 조사됐다. 상황이 이런데도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기업 실적은 고려하지 않고, 종업원 수가 늘어난 결과만을 발표해 자의적으로 통계 자료를 해석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 덩치는 4배 커졌는데 사람은 60% 늘어

전경련은 4일 2000년부터 2012년까지 30대 그룹의 종업원 증가율이 4.8%를 기록해 임금 근로자(2.4%) 증가율보다 2배 높았다고 발표했다. 30대 그룹 종업원은 같은 기간 69만8904명에서 123만2238명으로 증가했고, 임금 근로자는 1336만명에서 1771만2000명으로 늘었다.

전경련은 삼성과 현대차, SK, LG(003550)등 이른바 4대 그룹의 종업원이 30대 그룹 종업원 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고 밝혔다. 전경련 조사에 따르면 4대 그룹의 종업원은 2000년 32만6228명에서 2012년 62만5120명으로 늘어 지난 12년 동안 한 해도 빠짐없이 전년보다 증가했다. 이들이 30대 그룹 전체 종업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6.7%에서 50.7%로 커졌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대기업의 고용이 증가했다는 분석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기업들의 덩치가 얼마나 커졌는지와 그에 따른 고용률 변화에 대한 비교가 없어 자칫 착시효과를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조사라는 것.

실제로 공정거래위원회 기업집단 정보 포털과 증권 정보 제공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30대 그룹 종업원 수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4대 그룹 종업원수는 2000년 32만6228명에서 지난해 62만5120명으로 늘어 92%가량 늘었다. 하지만 같은 기간 4대 그룹의 매출과 순이익을 살펴보면 매출액이 많게는 4배, 순이익은 11배가량 증가한 회사도 있었다.

지난 2000년과 2012년 삼성, 현대차, SK, LG의 매출액·순이익·종업원 수 합계

가령 삼성의 경우 2000년 매출액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130조3370억원과 8조3270억원을 기록했고, 지난해 매출액과 당기순이익은 302조9400억원과 29조5370억원으로 불어났다. 매출액은 약 132%, 당기순이익은 약 255%가량 증가했다.

현대차도 지난 2000년과 비교해 매출액과 당기순이익이 크게 늘었다. 지난해 매출액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163조8010억원과 13조3950억원을 기록해 2000년과 비교해 350%와 990%가량 증가했다.

SK와 LG도 마찬가지. SK는 매출액과 당기순이익이 각각 230%, 290% 늘었고, LG는 매출액과 당기순이익이 각각 54%와 18%가량 증가했다.

다만 이들의 고용 증가율은 매출과 순이익 증가율과 비교하면 크게 부진했다. 삼성의 경우 지난해 종업원이 25만7091명을 기록해 2010년과 비교해 94% 늘어나는데 그쳤다. 현대차는 지난해 14만7714명의 종업원으로 2010년보다 60%가량 늘었다. SK와 LG 역시 각각 종업원 수가 205%와 59%가량 증가하는데 그쳤다.

기업성과 평가 사이트인 CEO스코어에 따르면 지난 2007년부터 10대 그룹 주력사의 고용유발계수도 약화됐다. 고용유발계수는 매출액 10억원당 기업이 몇 명의 고용효과를 거두는 지 알려주는 지수이다. 이 지수는 2007년 1.17에서 지난해 0.78로 오히려 0.39포인트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 전문가 “전경련 생색내기 발표”

30대 그룹이 돈을 벌어들이는 것에 비해 고용 규모가 크게 증가한 것이 아닌데도 전경련이 고용이 늘고 있다고 발표한 것은 국민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행위란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적과 상관없이 고용 규모만 늘었다는 발표는 ‘생색내기식’이라는 것이다. 30대 그룹 영업이익은 500대 기업의 총 영업이익에서 80%를 넘게 차지하고 있지만, 종업원수는 전체 임금 근로자 수의 7%대에 그치고 있다.

김한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팀장은 “대기업들의 현금보유액이 사상 최대에 달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에 상응하는 투자와 고용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사회적인 체감도와 다르게 통계만 갖고 기업이 일자리 창출에 적극적이라는 것은 자의적인 통계 해석”이라고 말했다.

30대 그룹의 영업이익이 500대 기업 영업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0%를 넘어갈 정도로 ‘부익부 빈익빈(富益富 貧益貧)’이 심각한 상황에서 이들의 고용이 여전히 부족하며,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매출액 증가율에 비해 고용 증가율이 낮다는 것은 재벌 중심으로 돌아가는 우리 경제의 성장 방식에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재벌 체제에 기대서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고용이 충분히 창출되지 않으므로 다른 성장체제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희 중앙대 산업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산업 구조 자체가 노동집약에서 자본집약으로 변하면서 고용 창출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며 “앞으로 대기업들의 매출액 증가율과 고용 증가율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질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에 재계와 정부는 고용을 늘릴 수 있는 방안을 찾는 등 근본적인 고용 창출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이번 조사는 30대 그룹의 실적과 상관없이 이들 기업의 일자리가 꾸준히 늘어났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실시한 조사였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