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화 지음|부키|280쪽|1만6000원

새로운 미래 화폐의 탄생일까, 지하 경제에서나 활용될 해커들의 놀잇감일까.

온라인 가상화폐 비트코인(Bitcoin)은 요즘 금융계의 뜨거운 감자다. 2009년 처음 등장한 이 화폐는 당초 반(反) 정부주의자나 지하 경제에서 주로 활용됐을 뿐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올 들어 비트코인 가치가 급등하며 투자자의 시선을 끌었다. 윙클보스 쌍둥이와 마이클 노보그라츠 포트리스그룹 최고투자책임자(CIO) 등 거물들이 비트코인 투자 사실을 공개했을 정도다. 세계 외신도 앞다퉈 비트코인 열풍을 소개했다. 각국 정부도 비트코인 규제 방안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독일 정부는 비트코인을 세금 납부에 사용할 수 있는 공식 화폐로 인정했다.

가상화폐 자체가 '뉴스'는 아니다. 한동안 인기를 끈 싸이월드의 '도토리'도 일종의 가상화폐다. 기존의 가상 화폐들과 비트코인의 차이는 뭘까. 세계적인 투자자들이 비트코인을 주목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 책은 국내에는 생소한 이 가상 화폐의 탄생부터 전 세계 거래 현황, 이 화폐를 통해 이뤄질 경제 혁신에 대한 전망까지 망라한다. 저자는 한국의 비트코인 거래소 '코빗(Korbit)'의 공동 설립자이자 이사로 활동 중이다. 비트코인의 작동 원리와 미래에 미칠 영향력을 조명하기에는 적임자라 할 수 있다.

비트코인은 2009년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자신을 소개한 익명의 개인, 혹은 단체가 만들어 내놓은 전자 금융 거래 시스템이다. 중앙 정부나 발행 기관의 통제 없이 이용자 간의 P2P(다자간 파일공유) 기술로 거래된다. 전 세계 어디에서든 다른 이용자와 돈을 주고받을 수 있다. 거래 내역이 가입자 간에 모두 공개되면서도 익명을 보장하고, 거래 수수료가 거의 없다는 점이 최대 장점으로 꼽힌다.

통화가 발행되는 방식도 독특하다. 중앙 정부나 발행 기관을 따로 두지 않는 대신, '노드(node)'라 불리는 이용자들이 참여하는 '마이닝(mining)'을 통해 비트코인이 발행된다. 이용자 간 거래가 쌓이면서 늘어나는 거래 내역 데이터를 정리하는 과정에 '노드'들이 참여해 복잡한 계산을 도맡는다. 여러 개인이 각자 컴퓨터의 계산 능력을 활용해 수식을 풀어내면, 그 대가로 비트코인이 발행된다. 통화의 발행량이 정해져 있어 매년 '마이닝'을 통한 발행량은 줄어든다. 2140년엔 통화 발행이 종료될 예정이다.

비트코인의 시작은 미미했다. 처음으로 한 개인이 비트코인의 미 달러 대비 환율이 공시한 2009년 10월 5일 당시 1비트코인의 가치는 0.0008달러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듬해 정식 거래소인 마운트곡스(Mt.Gox)가 탄생하고, 이용자가 늘어나며 성장세는 가팔라졌다. 2010년 11월 6일엔 1비트코인이 0.5달러, 2011년 2월엔 1달러에 거래됐다. 올해 2월 28일엔 1비트코인당 미 달러 환율 31.91달러, 4월엔 100달러를 돌파했고 10일엔 사상 최고치인 266달러까지 올랐다. 최근에는 200달러 초반에 거래되고 있다.

저자는 무분별한 발행으로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구매력이 줄어드는 기존 화폐의 한계를 극복하려면 화폐 자체는 물론, 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제3의 화폐'로 비트코인을 주목한다. 이미 한계가 드러난 상품 기반의 '금', 정치 기반의 '달러' 대신, 수학 기반의 '비트코인'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

그 특징으로는 쉽게 작은 단위로 나누고 결합할 수 있다는 점, 언제 어디서나 수수료가 거의 없이 거래할 수 있다는 점, 거래 내역이 공개돼 사기성 거래가 불가능하다는 점, 중앙 통제적 권력에 의한 조작이나 제한의 우려가 없다는 점, 희소성을 가지며 공급량과 공급 시기가 공개돼 있다는 점 등을 든다. 또 "비트코인 자체가 벽에 부딪히더라도 오픈 소스로 공개돼 있어 더 진보적 가상 화폐의 밑거름이 될 수도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책은 비트코인 입문자 수준의 눈높이에 맞췄다. 비트코인이 생소한 국내 독자라도 이 화폐 시스템의 작동 원리와 개념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썼다. 탄생 배경으로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 같은 글로벌 금융 자본주의의 한계에 대한 반발을 지목한 것도 흥미롭다.

다만 비트코인의 미래에 대한 저자의 낙관론에는 무작정 동조하기는 어렵다. 비트코인이 온라인을 중심으로 더 넓은 범위의 거래에서 활용되고 있지만, 불법 거래 확산에 대한 우려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미국 법무부는 지난달 비트코인을 통해 마약 등의 불법 거래가 이뤄져 온 온라인 시장 '실크로드'를 폐쇄하기도 했다. 가격 변동 폭이 크다는 점도 위험 요소 중 하나다.

저자 역시 현재 비트코인이 처한 현실의 벽을 인정한다. 더 많은 사람이 이용할 수 있게 해야 하고, 급격한 가격 변동 위험 때문에 불안이 커진 만큼 안정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또 국가 화폐로 바꾸지 않아도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완결적인 순환 구조가 필요하다는 말도 한다.

하지만 저자는 비트코인의 발전 가능성에 좀 더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트코인 결제망을 갖춘 웹브라우저가 개발되면 소액 결제 콘텐츠 시장이 활발해지고, 전 세계 어디에서나 환전이 필요없어, 크라우드 펀딩도 쉽고 편리해질 거란 전망에 방점을 찍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