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소득자의 신용대출 연체율이 사상 처음으로 자영업자 연체율을 추월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부진 장기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봉급생활자들이 늘고 있다는 의미다. 직장인 신용대출이나 카드론은 주택담보대출 등 일반 대출상품보다 대출 진행 과정이 간단한 점도 근로소득자들의 신용대출금액과 연체율에 영향을 미친 요인이다. 급전이 필요할 때 손쉽게 대출을 받았다가 제때 갚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23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기준 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6월말 기준 국내 18개 은행의 근로소득자 신용대출 연체율은 0.91%로 자영업자의 연체율(0.85%)을 처음으로 앞섰다. 이들 은행의 근로소득자 신용대출 연체율은 2010년 말 0.70%, 2011년 말 0.73%, 지난해 말 0.83%로 꾸준히 상승해왔다. 반면 자영업자의 대출 연체율은 2010년 말 0.86%, 2011년 말 0.80%, 작년 말 0.89%를 기록해 최근 3년 동안 0.8%대에 머무르고 있다.

근로소득자와 자영업자 신용대출 연체율 추이

김우진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직장인 신용대출은 용도에 따라 주택자금대출과 카드론으로 나뉘는데, 카드론의 경우 (신용)리스크(위험)가 높다”며 “(근로소득자의)연체율이 상승한다는 것은 카드론 용도로 대출받은 자금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신용카드사가 신용등급과 카드 이용실적 등에 따라 담보 없이 돈을 빌려주는 카드론은 금리가 연 6~30% 수준으로 높고, 연체이자율도 연 20~30%에 달한다.

◆ 시중銀, 직장인 신용대출 증가…“소득 제자리, 생활비 대출 많아”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신한·하나 등 주요 시중은행의 직장인 대상 신용대출 규모가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신한은행의 ‘신한 엘리트론’ 취급액은 지난해 6월말 3조3617억원에서 올해 6월 3조9239억으로 1년 새 약 17% 증가했고, 같은 기간 하나은행의 ‘하나 패밀리론’ 취급액은 3조647억원에서 3조6866억원으로 20% 늘었다. 우리은행의 ‘우리 직장인행복대출’의 취급액은 출시한 지 석 달이 채 안 된 올해 6월 말 1043억원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근로자들의 임금은 거의 늘지 않았지만 생활비·교육비 등 고정비용은 증가하면서 신용대출 자체가 늘어난 영향이 크다고 풀이했다. 고윤주 신한은행 개인금융부장은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교육비 등 고정지출을 감당하지 못해 급하게 돈을 빌릴 수 있는 신용대출에 손을 벌리는 경우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협약임금 인상률은 2010년 4.8%, 2011년 5.1%에서 2012년 4.7%, 2013년(9월 기준) 3.6%로 낮아지고 있다. 협약임금 인상률은 근로자 수가 100명 이상인 기업에서 임금협약을 통해 합의한 임금 인상률을 말한다.

◆ 금융당국, 가계부채 줄이기에 주력…“현황 파악부터”

금융당국은 일단 가계부채 규모를 안정적으로 줄이는 게 급선무라고 보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4월부터 금융감독원, 금융연구원, 신용정보회사 등과 함께 공동으로 ‘가계부채 미시분석 작업반’을 구성해 가계 대출자에 대한 심층분석을 진행하고 있다. 가계대출자의 소득별·연령대별 상환능력, 자영업자 대출의 부실 위험, 다중채무자의 부실 위험 등이 중점 분석 과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정부 차원에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에 대한 대출은 늘려왔지만, 가계대출에 대해서는 가계부채 연착륙 대책 등으로 관리를 강화해 근로소득자들이 대출할 수 있는 자금 규모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라며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관리를 강화하면서 주택담보대출이 어려워지자 신용대출이 늘어나고, 은행권이 대출에 대한 위험관리를 강화하면서 신규 대출을 자제하면 연체율이 상승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